[이슈 프리즘] '자본 없는 자본주의' 시대의 가치투자

입력 2020-11-30 18:00   수정 2020-12-01 00:16

직장인 A씨는 4년 전 확정기여형(DC) 퇴직연금에 가입했다. 그때까지 쌓인 목돈은 원금이 보장되는 예금에, 새로 적립되는 돈은 가치주 펀드에 넣었다. 2년 뒤 수익률을 보니 예금은 연환산 1.4%, 가치주 펀드는 18%였다. A씨는 목돈도 수익률 높은 펀드로 옮겼다. 이후 증시는 내리막을 탔다. 가치주 펀드도 예외는 아니었다.

올 들어 코로나19 이후 증시가 급등하자 기대하고 수익률을 확인해 봤다. 펀드 수익률은 여전히 마이너스였다. 안 되겠다고 판단한 A씨는 국내외 1등주에 투자하는 펀드로 갈아탔다. 수익률은 플러스로 돌아섰다.

그의 직장동료 B씨. 그는 처음 가입한 가치주 펀드에 돈을 ‘묻어두고’ 있다. 장기투자는 그래도 가치주라는 믿음 때문이다. 수익률은 지금도 마이너스다.

두 가지 투자 사례를 얘기한 것은 요즘 ‘가치주 논쟁’이 불거지고 있기 때문이다. 한편에선 가치주 투자 종말을 이야기하고, 다른 한편에선 놓치지 말아야 할 가치주 투자 기회라고 말한다.

코로나 확산 초기였던 올 3월 저점(1457.64)을 찍은 코스피지수는 지난 26일 사상 최고치(2625.91)를 기록했다. 비대면 시대, BBIG(바이오·배터리·인터넷·게임주)가 시장을 이끌었다. 미국 다우지수 역시 지난주 30,000 고지를 처음 찍었다. 미국 증시에선 지난 10년간 애플 알파벳(구글) 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아마존 같은 빅테크주들이 상승세를 주도해 왔다. 아마존은 주가수익비율(PER)이 100배다. 테슬라는 1000배에 달한다. PER이나 주가순자산비율(PBR)이 낮은 종목에 투자하는 가치투자자들은 쳐다보지도 않을 종목들이다.

최근 백신 개발 소식이 들리고, 내년부터 경제상황도 나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자 여행, 산업, 에너지 등 가치주들이 꿈틀거렸다. 골드만삭스는 백신 개발에 따른 랠리를 겨냥해 가치주 반등에 베팅할 것을 조언했다. 이채원 한국투자밸류자산운용 대표 같은 ‘가치주 전도사’는 “100년 만의 가치주 투자 기회”라고 말한다. 가치주와 성장주의 괴리가 이만큼 벌어진 적이 없다는 이유를 든다. 바꿔 말하면 가치주가 그만큼 지지부진했고, 가치투자자들도 속을 끓였다는 얘기다.

가치주 투자는 저평가된 종목에 투자하면 언젠가 오를 것이란 기대를 바탕으로 한다. 중요한 것은 ‘저평가’를 판단하는 기준이다. 20세기 산업화 초기에 탄생한 PER PBR 지표를 21세기 디지털 시대에 고집해선 안 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토지, 공장과 같은 유형자산보다 특허 디자인 브랜드 기업문화 노하우 등 회계상 반영되지 않는 ‘무형자산’ 이 중요해졌기 때문이다. 조너선 해스컬 영국 임페리얼칼리지 비즈니스스쿨 교수는 무형자본이 기업 경쟁력을 좌우하고, 나라 경제에 점점 더 기여하는 세상을 ‘자본 없는 자본주의(capitalism without capital)’라고 칭했다.

네트워크 효과와 규모의 경제가 특징인 무형자본 시대엔 잘나가는 기업이 더 잘나가는 승자독식 현상이 두드러진다. 주가가 많이 오른 기업이 더 오를 수 있다. 주가꿈비율(PDR)이란 개념이 등장하긴 했지만 아직까지 PER, PBR을 대체할 만한, 정교한 투자이론에 바탕을 둔 접근법이 없다. 그래서 기업의 무형가치를 제대로 평가하는 눈과 노하우를 가진 애널리스트와 펀드매니저의 역할이 커질 것이란 전망이 나온다.

1930년대 ‘가치투자의 아버지’ 벤저민 그레이엄으로부터 시작해 워런 버핏에 이르러 대중화된 가치 투자 방법도 이제 변화의 시기가 된 듯하다. 코로나 이후 ‘승자’는 코로나로 가속화된 비대면 확산이 곧 사업기회인 기업, 온라인으로 대체 불가능한 사업모델을 가진 기업, 디지털 혁신에 성공한 1등 기업일 것이다. 반대라면 주가가 아무리 싸도 미래가 아닌, 과거의 가치주일 뿐이다.

ps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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