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현실 칼럼] 규제공화국의 완성판인가

입력 2020-12-10 17:57   수정 2020-12-11 00:14

화학·소재산업의 주무부처는 어디인가? 기업들은 산업통상자원부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중소벤처기업부가 해줄 일도 없다. 이 산업에서 절대자는 화학물질 등록 및 평가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을 관장하는 환경부다. 산업을 이해하는 규제라면 혁신을 촉진할 수도 있겠지만 기업들은 언어 소통에서부터 막힌다고 호소한다. 기업마다 천차만별인 산업현장을 서류 위주 탁상행정의 획일적 잣대에 맞추라는, 그리고 책임은 모두 기업이 져야 한다는 식이다.

정부가 ‘탄소중립 2050’을 들고나왔다. 범부처 추진전략을 내놨지만 핵심부처 환경부가 온실가스 감축을 강제하는 방식을 너무 잘 아는 산업계는 깊은 한숨부터 내쉬고 있다. 발전·정유·철강산업만 발등에 불이 떨어진 게 아니다. 정부가 탄소중립을 재생에너지 100%와 동일시하는 극단적인 환경단체들에 휘둘리기 시작하면 이를 피해 나갈 산업이 없다.

미래자동차도 규제부처 손으로 들어가고 있다. 친환경차의 보급을 좌지우지하는 건 환경부다. 목표를 채우지 못하는 순간 처벌이 기다릴 게 뻔하다. 전기차의 전기, 수소차의 수소가 어디서 오는지 탄소중립을 기준으로 따지기 시작하는 순간, 이 또한 산업이나 에너지가 아니라 환경의 영역으로 넘어가게 됨은 물론이다.

미래차를 모빌리티산업으로 정의하면 국토교통부 소관이 된다. 타다 서비스가 논란이 됐을 때 택시업계 앞에서 국토부가 이해관계자 간 합의란 이름으로 어떻게 문제를 정리했는지 상기한다면 모빌리티의 미래도 불투명하다. 기존 사업자의 반발이 조금이라도 예상되면 아예 그들의 허락을 받아오라는 게 국토부 행정의 불문율이 되고 있다. 규제샌드박스조차 예외가 아니다. 모래 놀이를 하는 게 아니라 모래 벙커에 빠져 낭패를 당하고 있다는 하소연이 이어진다.

데이터경제 시대란 말도 무색해지긴 마찬가지다. 공공데이터는 정부 조직을 통제하는 행정안전부의 처분만 바라봐야 하고, 개인정보는 ‘데이터 3법’이 통과됐어도 곳곳이 지뢰밭이어서 개인정보보호위원회에 일일이 유권해석을 의뢰해야 할 판이다.

정부가 육성하겠다는 바이오헬스산업도 지금의 보건복지부 행정하에서는 규제산업의 한계를 벗어나기 어렵다. 인공지능(AI)도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 분야 통제만으론 성에 안 차는지 지난해 말 ‘이용자 중심의 AI 원칙’을 내놨다. 공정하고 책임 있는 AI 알고리즘으로 가야 한다며 일찌감치 규제 선점의 밑자락을 깔아놨다.

이어 질세라 연구개발 주무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도 국가 AI 윤리기준을 들고나왔다. ‘인간성’을 구현하기 위해 AI 개발 및 활용 과정에서 지켜야 한다는 3대 기본원칙과 10대 핵심요건이다. 이런 거창한 윤리기준이면 AI가 아니라 일반 기술조차 넘기 어려운 벽이다. AI에 윤리를 갖다붙이기 전에 우리 사회가 인간성을 어떻게 정의하고 있는지, AI 데이터와 알고리즘의 편향보다 심각한 진영 논리에 따른 우리 사회의 편향은 어떻게 해야 하는지 등에 대한 문제인식 따위는 찾아보기 어렵다. AI 개발자와 업체가 윤리 시험을 통과하지 못하면 비윤리로 낙인찍힐 날이 곧 들이닥칠 모양새다.

그동안 산업계를 대변한다던 산업부는 내부 무능력 탓도 있겠지만, 탈(脫)원전을 앞세운 정치에 초토화돼 버린 형국이다. 이런 가운데 상법·공정거래법 개정안, 금융그룹통합감독법 제정안 등으로 법무부·공정거래위원회·금융위원회 등 기존 규제당국의 권한은 더 세지게 생겼다. 게다가 고용노동부는 중대재해 발생 시 사업주를 형사처벌하고 기업 문을 닫게 할 수 있는 무소불위의 슈퍼 권력부처로 급부상 중이다.

산업계는 정부와 국회 어디에도 소통할 곳이 없다고 토로한다. 사면초가(四面楚歌)가 따로 없다. 문재인 정부가 신산업, 규제혁신을 외치는가 싶었더니 어느새 규제공화국이 눈앞에 나타났다.

ah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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