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조선 탈출 꿈꾸는 자들의 어설픈 도박장 털이…범죄의 기대이익과는 비교도 못할 목숨값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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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0-12-28 09:01  

헬조선 탈출 꿈꾸는 자들의 어설픈 도박장 털이…범죄의 기대이익과는 비교도 못할 목숨값 몰라


감옥에서 3년 만에 나온 준석(이제훈 분)이 절친인 기훈(최우식 분), 장호(안재홍 분) 등과 한탕을 꿈꾸며 범죄를 계획하는 내용을 다룬 영화 ‘사냥의 시간’. 헬조선을 떠날 자금 마련을 위해 불법 도박장을 털기로 한 것은 노벨경제학상 수상자인 미국의 게리 베커 교수가 설명한 대로 범죄의 기대이익과 기대비용을 따진 결과다. 체포돼 감옥에 가는 위험보다 해외의 한 섬에 가서 여유롭게 살자는 기대가 더 컸기 때문이다.
불완전 정보로 생명의 비용 몰랐다
베커의 범죄경제학은 획기적이라는 평가를 받았지만 비판도 만만치 않았다. 이 이론은 인간의 합리성을 전제로 하지만 인간은 때로 자신의 의도와 달리 비합리적인 존재가 된다는 것을 간과했다. 의사결정에 꼭 필요한 정보를 현실에서는 다 모으지 못하기도 한다. 일명 ‘정보의 불완전성’이다. 이 경우 개인이 합리적이라고 생각했던 결정은 결과적으로 실패한 결정이 될 수 있다.

현실을 몰랐던 준석 일행의 어설픈 불법 도박장 털기 계획도 처음에는 성공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곧바로 이들은 도박장 운영 조직의 킬러로 고용된 ‘한(박해수 분)’의 사냥감이 된다. 총 쏘는 법도 제대로 모르는 20대 청년들이 불법 영업장에 대해 아는 것이라곤 ‘털려도 신고할 수 없다’는 사실뿐이었다. 법 밖 세상의 잔혹성과 한에 대해 알 리가 없었다.

만약 한의 존재를 알았다면 준석 일행은 불법 도박장 대신 달러를 보관하고 있는 은행을 털었을 것이다. 그들을 사냥하는 한에게 준석은 “경찰에 자수하고 돈도 다 돌려주겠다”고 절규한다. 범죄 기대비용에 어떤 기대이익과도 비교할 수 없는 ‘생명의 위협’이 있다는 점을 뒤늦게 깨달은 것이다. 그러나 되돌리기에는 너무 늦었다.
유토피아 등지고 다시 한국으로
준석은 홀로 한국을 떠나는 데 성공한다. 그가 친구들에게 입이 닳도록 말했던 ‘하와이를 닮은 대만의 섬’에서의 일상은 꿈꾸던 것과 꼭 같다. 조그마한 자전거 수리점을 운영하고 바다가 정원처럼 눈앞에 펼쳐진 넓은 집에서 하루를 보낸다. 그림으로만 봤던 에메랄드빛 바다에 발도 담가 본다.

그러나 그의 영혼은 여전히 ‘지옥’에 있다. 함께 오지 못한 친구들의 모습이 끝없이 눈앞에 어른거린다. 밤이면 한이 나오는 악몽에 시달린다. 모든 것을 내주고 얻어낸 유토피아에 행복이 있을 수 없다.

결국 준석은 다시 한국으로 향한다. 돌아가는 배 안에서 그는 다짐한다. 한을 다시 찾아갈 것이며, 죽더라도 더는 도망치지 않고 싸우겠다고. 영화 내내 사회의 거대한 폭력으로부터 사냥당하던 청년이 마침내 주체가 돼 우뚝 일어서는 순간이다.

준석의 결말은 비극일지 모른다. 역설적이지만 그 속에는 희망이 있다. 공포와 무력함이 보편화돼 누구나 탈출을 꿈꾸는 사회일지라도, 개인이 남아 각자의 책임을 다해야 무언가 변화가 시작되지 않겠는가.
극장 공개 않고 넷플릭스에 독점 공개된 첫 영화
‘사냥의 시간’은 올해 한국 신작 영화 중 처음으로 극장에 개봉되지 않고 넷플릭스에 독점 공개된 영화다. 이 영화는 지난 2월 26일 국내 극장에서 개봉될 예정이었다. 그러나 2월 하순부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이 확산해 개봉이 잠정 연기됐다. 극장가는 코로나19로 직격탄을 맞았지만 집에서 혼자 영화를 볼 수 있는 넷플릭스 등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이용자가 급증했다. 코로나19 사태가 장기화하자 고심에 빠진 배급사가 향한 곳은 넷플릭스였다. 극장에서 개봉해봤자 관객을 충분히 끌어모을 수 없다고 판단한 것이다. 이 때문에 판매사가 배급사를 상대로 상영금지 가처분 신청을 제기하는 등 법정 공방까지 벌어졌다.

극장에서 ‘내 집 영화관’으로의 이동은 코로나19로 더 빨라졌다는 분석이다. 영화진흥위원회에 따르면 지난 5월 넷째주 주말(23~24일) 영화관 관객은 14만4218명으로 전년 동기(5월 25~26일) 대비 91.7% 감소했다. 지난 2월 코로나19가 국내에 확산되던 초기에 일부 확진자가 영화관을 다녀가 관객이 급감한 뒤 올해 하반기까지도 회복세가 더디다.

넷플릭스와 왓챠플레이 등 OTT는 말 그대로 ‘코로나 특수’를 누리고 있다. 사회적 거리두기로 외출하지 않고 집에 머무르는 ‘집콕족’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앱 분석업체 와이즈앱이 한국인의 넷플릭스 신용카드·체크카드 결제 내역을 집계한 결과 4월 국내 넷플릭스 카드 결제액은 439억원으로 추산됐다. 2016년 한국에 상륙한 뒤 최대다. 3월(362억원)에 비해서도 21.3% 증가했다. 이 같은 추세는 당분간 이어질 전망이다.

노유정 한국경제신문 기자 yjroh@hankyung.com
NIE 포인트
① ‘정보의 불완전성’은 시장이 합리적으로 운영되지 않는 ‘시장의 실패’로 봐야 할까, 아니면 기관과 개인의 정보 취득 역량이 차이 날 수밖에 없다는 나름의 합리성을 가진 것일까.

② 불법 취득한 범죄자의 재산을 사적으로 빼앗는 것은 정의의 실현일까, 정도의 차이만 다른 범죄일까.

③ 청년실업이 심각하고 ‘헬조선 탈출’을 꿈꾸는 젊은이가 적지 않은데 대한민국이 미래 세대에게 희망을 주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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