文 정부는 '생색'만 내고 '돈'은 다음 정부가 내는 5대 정책

입력 2020-12-28 08:30   수정 2020-12-28 17:19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한 지 3년 반 이상 지났다. 2017년 5월 임기를 시작한 뒤 여러 정책을 내놨다. 적폐청산을 이유로 이전 정부 인사들을 재판에 넘겼고 많은 반대에도 불구하고 최저임금 인상과 탈원전 정책을 밀어붙였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 대응을 이유로 올해에도 수많은 정책을 쏟아냈다. 고용보험의 사각지대를 해소한다며 전국민 고용보험제를 들고 나왔다. 코로나19 피해를 지원한다는 명목으로 각종 선심성 지출을 늘렸다.

중장기 과제에도 의욕을 보였다. 2050년까지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을 같게 하는 탄소중립을 달성하겠다고 선언하는가 하면 저출산 고령화 대책도 발표했다. 국민연금 개혁도 추진하겠다고 했다.

하지만 문재인 정부는 이런 문제들을 해결할 때마다 공통점을 보였다. 지지율을 끌어올릴만한 일은 먼저하고 표심에 도움이 되지 않는 난제는 뒤로 미루는 것이다. 포퓰리즘 성격의 예산은 임기 내에 당겨 쓰고 예산 구조조정은 다음 정권으로 넘기는 식이다. 돈 쓰는 일정은 서두르고 재원마련 계획 수립은 연기에 연기를 거듭하는 게 다반사다.

일례로 전국민 고용보험을 하겠다면서 최고 난제인 자영업자 고용보험 가입 문제는 2022년 이후에 논의하기로 했다. 매년 확장재정으로 적자예산을 편성하면서 재정준칙은 2025년부터 적용하기로 결정했다.

탄소중립의 핵심 사안인 기업과 소비자 부담 완화 방안은 다음 정부로 공을 넘겼다. 저출산 고령화 대책의 재원 마련도 차기 정부의 몫이 됐다. 국민연금 개혁에 대한 방향은 여전히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는 "생색만 내고 책임은 미룬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다. '꽃길'만 걷고 '가시밭길'은 다음으로 넘기는 문재인 정부의 5대 정책 사례를 짚어본다.
①전국민 고용보험…2022년부터 근로자 돈으로 특고 실업급여 지급하나

정부가 지난 23일 2025년까지 고용보험 적용 대상을 대폭 확대하는, 이른바 '전국민 고용보험제' 로드맵을 발표했다. 예술인, 특수고용직 종사자, 플랫폼 종사자, 자영업자 순으로 가입시켜 2025년에는 소득이 있는 모든 '일하는 사람'들이 고용보험 적용을 받게 하겠다는 것이다.

로드맵에 따른 약속이 지켜지려면 핵심은 소득파악 시스템 구축이다. 또 확대되는 적용 대상 중 가장 난제는 자영업자다. 예술인은 이미 지난 10일부터 고용보험 적용이 시작됐고, 특고 종사자도 법이 통과돼 내년 7월 시행이 확정된 상태다.

하지만 정부가 내놓은 로드맵을 보면 핵심과제와 최고 난제는 현 정부가 아닌 다음 정부의 과제로 돌렸다. 특고 종사자에 대한 고용보험 적용은 내년 7월부터 시작되는데, 국세청과 근로복지공단과의 실시간 소득정보 공유 시스템 마련은 2022년 7월에 구축하겠다고 했다.

자영업자에 대해서는 사실상 '무계획'에 가깝다. 400만명에 달하는 자영업자의 특성상 구체적인 적용 방안을 단기간에 마련하기 어려웠다는 설명이지만, 내년 상반기 사회적대화기구를 구성해 논의를 시작하겠다는 게 로드맵의 내용이다. 정부는 사회적대화를 통해 내년 하반기까지 가입방식을 논의하고 2022년 하반기에 가서야 단계별 계획을 수립하겠다는 계획이다. 현 정부에서는 자영업자 고용보험 적용과 관련해 어떤 것도 결정되지 않는다는 얘기다.

1995년 제도 도입 이래 임금근로자 중심이었던 고용보험 시스템을 소득 중심으로 바꿔 건강보험, 국민연금처럼 인별 관리체계로 전환하겠다는 계획도 내놨지만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고용보험 제도개선TF를 구성해 2024년 상반기까지 포괄 적용방안을 논의하고 같은 해 하반기에 가서야 관련 법 개정을 추진하기로 했다.

고용보험 적용 대상 확대에 따른 재정건전성 우려에 대한 대책도 마찬가지다. 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특고 고용보험이 시행되면 2025년 176억원의 적자가 날 것으로 전망된다. 하지만 정부는 2020~2025년 5년 간은 안정적 재정 운영이 가능하다고 강변하고 있다.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은 "적용대상이 확대될 때마다 일정 기간 운영 후 성과 평가와 재정 추계를 실시해 보완방안을 찾을 것"이라며 "평가 결과에 따라 가입자격 관리 및 실업급여 운영 방안 개선 등 재정 건전성을 관리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②재정건전성…지출은 늘리고 나랏빚 관리는 후순위

문재인 대통령 취임 이후 정부 예산은 확 늘었다. 2018년부터 매년 8~9%씩 예산 규모가 늘어났다. 특히 정부가 상대적으로 자유롭게 조정할 수 있는 재량지출이 급속도로 증가했다. 현 정부가 마지막 예산안을 짜는 2022년의 재량지출은 306조6000억원으로 2018년 212조4000억원에 비해 44.3% 증가한다.

그러면서 문재인 정부는 차기 대통령 임기 때부터 지출 증가율을 낮추겠다고 선언했다. 5년마다 정하는 중기재정운용계획을 통해서다. 기획재정부는 지난 9월 발표한 ‘2020~2024년 국가재정운용계획’을 통해 총 재정지출 증가율을 올해 9.1%에서 2021년 8.5%, 2022년 6.0%로 설계했다. 다음 정부 임기인 2023년과 2024년 재정지출 증가율은 각각 4.5%, 4.0%로 하향조정했다.

재량지출 증가폭은 더 크게 줄였다. 내년 12.4%인 재량지출의 증가율은 2022년 6.3%로 떨어지고 2023년 4.8%, 2024년 1.9%로 계획했다. 이 같은 계획은 비현실적이라는 지적이 많다. 2022년 새로운 대통령이 선출되면 새로운 주력 사업을 추진하기 위해 재량지출이 많이 발생할 수 있어서다.

정부 지출 증가로 재정건전성은 날로 악화하고 있다. 2017년 660조2000억원이던 국가채무는 내년까지 4년간 295조8000억원 늘어나게 된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도 2017년 36.0%에서 내년 47.3%로, 11.3%포인트 상승한다.

나랏빚 증가 속도가 빨라지자 정부는 뒤늦게 지난 10월 ‘한국형 재정준칙’을 도입하겠다고 발표했다. 재정준칙은 나랏빚이나 재정 적자 규모를 일정 수준 이상으로 늘리지 못하게 하는 법적 장치를 말한다. 하지만 시행시기를 2025년으로 못박았다. 재정건전성은 문재인 정부 이후인 4년 뒤부터 관리하겠다고 한 셈이다. 또 ‘재정건전화 대책’만 마련하면 재정준칙을 일시적으로 어겨도 되고 대규모 재해 및 경제위기 때는 재정준칙 적용을 면제하는 예외규정도 뒀다.
③ 탄소중립…기업 소비자 부담 지우는 것은 다음 정부부터

문 대통령이 지난 10월 선언한 '2050 탄소 중립'은 사실상 다음 정부의 숙제가 될 것으로 보인다. 목표만 제시됐을 뿐 구체적으로 어느 부분에서 얼마나, 어떻게 탄소를 줄여나갈지는 내년부터 논의하기로 해서다. 관련 법정계획 정비 등까지 마치려면 1~2년가량 시간이 소요된다. 탄소 중립을 이행하고 성과를 점검 받는 건 다음 정부의 몫인 셈이다. 탄소 중립은 탄소 배출량과 흡수량을 상계해 순배출량이 0이 되는 상태를 말한다.

정부는 내년 6월까지 탄소 중립 시나리오를 마련하고 2023년까지 각종 국가계획에 반영할 계획이다. 탄소중립을 위해 에너지·산업·수송·건축 등 부문별로 얼마나 탄소를 줄일 수 있는지 강·중·약 수준별 시나리오를 마련한다. 시나리오를 토대로 분야별 전략을 마련한다.

예컨대 에너지부분은 산업통상자원부에서 내년 4분기까지, 산림부문은 내년 3분기까지 산림청이 마련하는 식이다. 탄소 중립 실현의 핵심으로 꼽히는 고탄소 산업을 어떻게 전환할 것인지는 내년 4분기까지 ‘제조업 르네상스 2.0’ 전략을 수립할 계획이다. 탄소중립 전략을 본격적으로 이행하는 건 2022년 혹은 그 이후부터다.

정부는 경유세 인상이나 탄소세 도입과 같은 민감한 정책에 대해서는 “추후 논의하겠다”며 명확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지난 7일 정부는 2050 탄소중립 실현 추진전략을 관계부처 합동으로 발표하면서 “탄소가격 시그널을 강화하겠다”는 모호한 표현을 사용했다. 세제, 부담금, 배출권거래제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탄소가격체계를 재구축하겠다는 설명이다.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경유세 인상, 전기요금 인상 등의 가능성에 대해 “구체적 사안은 앞으로 추가로 검토할 과제”라며 “현 단계에서 탄소세 도입 여부와 경유세 인상 여부에 대해 말하기는 적절하지 않다”고 했다.
④ 저출산 고령화 대책…영아수당 지급은 다음 정부부터
지난 15일 국무회의에서 심의·확정된 ‘제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도 비용 떠넘기기의 전형적인 예다. 대통령 직속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에서 안을 만드는 기본계획은 2005년 이후 5년에 한번씩 만들어진다. 이번 계획 역시 2021년부터 2025년까지의 저출산·고령화 대책이다. 지난해 30만명 수준으로 떨어진 출생아 수가 올해 27만명 안팎까지 다시 급감하면서 시급한 대책이 요구되는 분야다.

하지만 이번 대책으로 시행되는 주요 정책은 모두 2022년부터 시작된다. 만 2세 미만 아기에게 지급하는 영아수당과 임신·출산 관련 의료비 지원을 40만원 늘리는 것은 2022년 출생아부터 적용된다. 부모가 동시에 출산휴직을 신청할 경우 받는 통상임금을 3개월간 최대 1200만원에서 1500만원으로 상향하는 것 역시 2022년 출생아부터다.

이같은 신규 사업 추가에 따른 재정소요는 9조5000억원이다. 2022년부터 해당 사업이 시행되면서 관련 부담은 고스란히 다음 정부의 몫이 된다. 원칙적으로는 4차 저출산·고령사회 기본계획의 적용 대상인 2021년 출생아와 부모들이 정책에서 소외되는 문제도 생긴다.

이같은 문제의 원인에 대해서는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내에서도 의견이 엇갈린다. 한 관계자는 “2022년 3월 대선전까지는 문재인 정부 집권 시기이므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다”며 “내년은 뉴딜 정책 시행에 따른 돈이 풀리므로 2022년부터 시행에도 괜찮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저출산·고령화 대책과는 관계 없는 뉴딜정책을 들어 정책 시행 지연을 설명한 것이다.

하지만 다른 관계자는 “정책을 늦게 확정해 이미 국회에서 확정된 내년 예산안에 반영할 수 없었다”고 털어놨다. 서형수 저출산고령사회위원회 부위원장은 “위원회 활동에 대한 아쉬움은 겸허하게 받아들인다"며 "법령개정, 예비타당성 검토 등을 위해 내년 한해 준비기간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야권에서는 “저출산 대책에 신규로 투입될 재원 부담은 줄이고, 그만큼 뉴딜 정책에 더 많은 재정을 투입하기 위해 미룬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는 부분이다.
⑤ 국민연금 개혁…국민 부담 증가 예상되자 무작정 미뤄

문재인 정부가 다음 정부의 몫으로 떠넘긴 국민연금 개혁은 미래 세대의 짐을 키우는 결과로 작용한다. 문 대통령은 2017년 대선에서 2028년 40%를 목표로 하향중인 국민연금의 소득대체율(소득 대비 연금 수령액)을 50%까지 높이겠다고 공약했다. 이를 위해서는 국민연금 납입액을 올려야 했다. 국민연금제도발전위원회에서는 현재 9%인 보험료율을 11%로 즉각 올리는 개혁안을 제시했지만 국민 반발을 이유로 2018년 11월 문 대통령이 직접 재검토 지시했다.

이후 경제사회노동위원회 등에서 논의했지만 합의점 도달에는 실패했다. 국회와 보건복지부는 서로 “제대로된 단일안을 만들라”고 책임을 떠넘기고 있는 실정이다. 국민 노후 생활에 막대한 영향을 주는 연금제도 개혁은 지도자가 책임을 지고 풀어야하지만 문 대통령은 2019년 이후 연금개혁과 관련해 뚜렷한 방향을 제시하지 않았다.

2015년 박근혜 전 대통령은 공무원 노조 등의 거센 반발 속에서도 더내고 덜 받는 공무원연금 개혁을 성공시킨 바 있다. 당시 국회이원이던 문 대통령은 “재정절감을 위해 공무원 연금개혁이 필요하다”면서도 정부안에 반대했다.

국민연금 개혁이 다음 정부로 미뤄지면서 청년 세대의 부담은 가중될 전망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 등의 예측에 따르면 현재의 소득 대체율은 유지하면서 기금 고갈 시점까지 보험료율을 올리지 않을 경우 미래 세대가 부담해야할 보험료 부담이 소득의 30% 이상으로 높아지는 것으로 나타났다. 국회 예산정책처는 국민연금 기금이 2057년이면 고갈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이마저도 저출산·고령화에 따른 충격이 온전히 반영되지 않은 것이다.

정인설/백승현/노경목/구은서 기자 surisur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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