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3대 차 부품업체는 왜 LG전자에 5000억을 투자했나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1-01-02 17:49   수정 2021-01-02 19:17

LG그룹은 빈번하게 구광모 LG 회장의 동정이나 사진을 공개하지 않는다. 드러나지 않게, 묵묵하게 일하는 걸 선호하는 구 회장의 성품 영향이 있다고 한다.

이런 LG가 외부에 알려 주목받은 구 회장의 행보가 있다. 구 회장의 '자동차 전장(전기·전자 장치)' 관련 경영 활동이다. 지난해 2월 구 회장이 서울 양재동 LG전자 디자인센터를 방문했을 때가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구 회장은 LG전자의 스마트 도어, 벽밀착 OLED(유기발광다이오드) TV, 커넥티드카, 디지털콕핏(계기판) 등 다양한 제품을 살펴봤다고한다. LG가 언론에 콕 찝어 배포한 사진은 구 회장이 '커넥티드카'에 설치된 의류관리기를 점검하고 있는 사진이었다. 산업계에선 "구 회장과 LG그룹의 자동차 전장(전기·전자 장치)에 대한 관심이 대단하다"는 얘기가 나왔다.

자동차 전장 사업에 대해 구 회장과 LG그룹이 그리고 있는 그림을 보여준 사례가 최근 있었다. LG전자가 지난달 23일 '세계 3대 부품업체'로 꼽히는 캐나다 마그나 인터내셔널과 손잡고 전기차 파워트레인 분야 합작법인 'LG마그나 E파워트레인'을 설립하기로 한 것이다. LG전자는 자동차 부품을 담당하는 VS사업본부에서 구동시스템(모터, 인버터, 감속기 등)을 담당하는 그린사업을 물적분할한다. 그리고 분할법인 지분의 49%를 4억5300만달러(약 5000억원)에 마그나에 넘길 예정이다.

마그나는 B2B(기업 간 거래)업체로 일반인들에게 널리 알려져 있지 않다. BMW 등에 납품을 하는 것은 물론 글로벌 정보기술(IT)업체와 수 차례 협업을 진행할 정도로 기술력을 인정받고 있는 자동차 부품업체다. 익스테리어 시스템, 파워트레인, 좌석 시스템, 거울, 조명 등 사업 분야가 다양하다. BMW, 다임러, 재규어 랜드로버, 도요타 등의 차를 수탁생산(OEM)하기도 한다. 마그나는 홈페이지에 "39년 간 차량 29종을 위탁생산했다"고 밝히고 있다.

기술력을 인정 받아 대만 훙하이와 함께 애플의 전기차 수탁 생산을 놓고 경쟁할 것이란 얘기가 나올 정도다. 일본 소니가 지난해 1월 'CES2020'에서 공개한 전기차 콘셉트카 '비전S'의 차체 등도 마그나가 만들었다. 이런 마그나가 LG전자에 5000억원을 투자하고 합작사를 설립한 이유가 무엇일까.
LG전자의 '60년 모터' 자부심
LG전자의 '모터' 경쟁력이 꼽힌다. LG 임직원들의 '모터'에 대한 자부심은 대단하다. 1년 8개월 전 전자업계를 처음 취재할 때 만난 LG전자 고위 임원은 기자에게 "LG전자 가전의 가장 큰 경쟁력이 뭐 같냐"고 물었다. 머뭇거리는 기자에게 그 임원은 "LG 가전의 힘은 모터에서 나온다"고 강조했다. LG 스타일러와 경쟁사 제품을 언급하며 "스타일러는 모터가 직접 움직여서 옷의 먼지를 털기 때문에 공기를 뿌리는 방식의 경쟁사 제품과는 비교할 수 없는 성능을 갖고 있다"고 강조했다.

LG전자가 모터를 처음 개발한 건 60년 전인 1962년이다. 이 때 금성사 선풍기용 모터를 생산했을 때다. 이후 LG전자는 1998년 세계 최초로 인버터 기술 기반 ‘DD모터’를 선보이며 기술력을 인정 받는다. DD모터는 세탁통과 모터가 벨트없이 직접 연결돼있는 구조로, 중간에 힘을 전달하는 구조물이 없어 에너지손실, 소음,진동이 적은 게 특징이다. 세탁기용 DD모터는 유럽에서 업계 최초로 22년 수명을 인증받기도 했다.

2000년엔 세계 최초로 리니어 컴프레서 개발하고 2001년 이를 탑재한 냉장고를 양산한다. ‘인버터 리니어 컴프레서’는 회전운동을 하던 기존 압축기와 달리 직선 운동을 하게 함으로써 소비전력을 절감한다. 일반 컴프레서는 모터의 회전운동을 직선운동으로 바꾸어 냉매를 압축하기 때문에 에너지 변환 손실이 발생하나, 리니어 컴프레서는 모터 자체가 직선 운동을 하기 때문에 에너지 손실이 없고, 마찰 및 마모가 발생하는 연결부위가 없어 소음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게 LG전자의 설명이다. LG전자는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A사업본부 안에 전력전자연구소를 두고 모터, 컴프레서 개발에 주력하고 있다.

이같은 LG전자의 '모터 기술력'이 이식된 사업이 전기차 모터 사업이다. LG전자는 2011년 8월 에너지컴포넌트(EC)사업부를 만들고 대표이사(CEO) 직속으로 둔다. EC사업부는 당시 H&A사업본부와 AE(에어컨·에너지)사업본부 등에 흩어져 있던 부품 관련 조직을 하나로 합친 것이었다. 전기차 모터 개발 조직도 EC사업부에 흡수된다. '완제품의 경쟁력은 모터에서 나온다'는 LG 경영진의 철학이 반영된 것이다. 2000년대 후반부터 간헐적으로 진행됐던 전기차 모터 연구개발이 본격화된 것이다.
GM, 재규어 등에 전기차 모터 납품
2013년 7월 LG전자에 자동차 전장 사업을 담당하는 'VC사업본부'(현재는 VS사업본부)가 출범했다. 전기차 부품을 담당하는 EC사업부는 차량용 인포테인먼트 부품을 맡은 '카(car) 사업부', LG CNS 산하 자동차 부품 설계 기업 'V ENS'와 함께 VC사업본부에 들어간다. 그리고 VS사업본부로 이름이 바뀐 뒤에도 '그린사업담당' 조직에 속해 있던 전기차 구동장치(모터, 인버터 등) 조직은 이번 물적분할을 통해 마그나와 손을 잡게 됐다.

LG전자는 2010년께부터 전기차용 모터를 완성차 업체에 꾸준히 납품했다. 2010년 GM대우가 처음 개발한 '라세티 프리미어' 전기차에 전기모터를 공급했다. 2015년엔 미국 GM의 쉐보레 볼트 전기차용 구동모터 공급사로 선정되며 기술력을 인정 받는다. 이후에도 LG전자는 재규어 I-PACE 전기차용 구동모터 등을 납품하며 실적을 쌓는다.
마그나도 LG의 전기차 구동모터에 관심
마그나는 이같은 LG전자의 전기차용 모터 경쟁력을 염두에 두고 5000억원 규모 지분투자를 결정했다. 업계의 반응은 '긍정적'이다. 전기차 대중화 시대의 핵심 경쟁력으로 △전기차 연비 △초기 가속성, 정숙성, 부드러운 감속 △전기차 원가의 가장 큰 비중인 파워트레인(모터, 인버터 등을 모듈화한 시스템)의 내구성 등이 꼽힌다. 이는 개별 부품의 기술력 뿐만 아니라 파워트레인 시스템 전체 관점의 성능이 조화를 이뤄야한다. LG전자의 부품 경쟁력에 파워트레인에 강점이 있는 마그나의 역량이 합치면 시너지를 낼 수 있을 것이란 판단이다.

자동차업체들은 '안전' 때문에 부품업체의 '납품 실적'과 '업력'을 중시한다. LG전자는 마그나와 합작법인 설립을 계기로 외국 완성차업체에 보다 쉽게 접근할 수 있는 길이 열렸다는 평가도 나온다.

일본 노무라증권은 지난달 29일 "빠르게 성장 중인 전장사업에서 LG전자가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며 목표주가를 기존 11만원에서 20만원으로 올렸다.(현재 주가는 13만5000원)

VS사업본부 실적에 대한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LG전자 안팎에선 지난해 5조5000억원 안팎으로 추정되는 VS사업본부 매출이 올해 7조원, 내년엔 10조원을 달성할 수 있다는 얘기가 나온다. 영업이익도 올해는 흑자전환할 전망이다.
LG, 자동차 전장업체 M&A 시도 전망
LG전자와 마그나의 '전기차 파워트레인' 합작사 설립은 LG 전장 사업 확장의 서막에 불과하다는 전망이 나온다. LG 고위 관계자들이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수차례 전장 사업의 중요성을 언급하며 대형 인수합병(M&A)에 대한 의지를 숨기지 않고 있어서다. LG는 2018년 8월 오스트리아 차량용 헤드램프 기업 ZKW를 인수한 경험도 있다.(LG전자 지분율 70%, ㈜LG 지분율 30%)

실탄은 부족하진 않은 상황이다. LG는 구 회장 취임 이후 '선택과 집중' 전략을 본격적으로 실행에 옮기며 일부 사업부와 지문 매각을 단행했다. 이번 마그나 대상 지분 매각 자금 5000억원이 내년 7월께 들어오면 LG의 보유 현금은 약 11조원 수준을 기록하게 될 전망이다.


LG가 전장사업에 대한 M&A를 시도한다면 대상은 '자동차용 반도체 업체'가 될 것이란 얘기도 나온다. 가능성이 작지 않다. 하지만 유럽에 있는 NXP, ST마이크로일렉트로닉스 등 차량용 반도체 대어(大魚)들을 잡기엔 LG가 보유한 현금이 부족하다. 2016년 10월 미국 통신용 반도체업체 퀄컴은 NXP 인수를 추진했는데 이때 매수금액이 470억달러(약 51조원)였다. 이 딜은 2018년 중국에서 공정거래위원회 역할을 하는 '국가시장감독관리총국'이 인수를 승인하지 않으면서 결국 깨졌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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