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세 유럽에서 맥주 제조를 권장한 이유

입력 2021-01-11 09:00  


독일 남부 바이에른주 뮌헨에서는 해마다 9월 말~10월 초에 2주간 옥토버페스트가 열린다. 옥토버페스트는 독일어로 ‘10월의 축제’라는 의미다. 1810년에 시작된 세계 최대의 민속 축제이자 맥주 축제로 유명하다. 맥주 종주국답게 독일의 옥토버페스트를 즐기기 위해 세계 각지에서 한 해에 600만~700만 명이 몰려든다.

옥토버페스트는 독일 연방에 속하는 바이에른 왕국의 루트비히 왕자와 작센 공국의 테레제 공주가 1810년 10월 12일 뮌헨에서 결혼식을 올리고 1주일간 축하연을 연 것이 그 유래다. 나폴레옹전쟁 시기에 띄엄띄엄 열리다 1819년부터 뮌헨시 주최로 연례행사가 됐다. 200년 동안 1·2차 세계대전 등 전쟁과 전염병 확산 등으로 24차례 열리지 못했고, 1980년에는 폭탄테러로 수많은 사상자를 내기도 했다. 그러나 이제는 빼놓을 수 없는 독일의 관광 명물로 자리잡았다.
‘즐거움 그것은 맥주, 괴로움 그것은 원정’
맥주는 영어로 beer다. 독일어 Bier, 프랑스어 biere, 이탈리아어 birra와 비슷하다. 맥주의 어원에는 세 가지 설이 있다. 첫째, 문명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수메르 언어로 빵죽을 뜻하는 바피르(bappir). 둘째, 고대 게르만족 언어로 보리 곡물을 가리키는 베레(bere). 셋째, 라틴어로 마신다는 의미의 비베레(bibere)가 그것이다. 라틴어로 맥주는 ‘케르비시아’이다. 케르비시아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곡물, 대지의 여신 케레스에서 온 명칭이다. 중세에 갈리아인이 집집마다 만든 곡주인 세르부아즈, 스페인어로 맥주를 뜻하는 ‘세르베사’에 그 흔적이 남아있다.

맥주를 보리로 만들었고 고대부터 즐겨 마셨으니 어원이 이해가 되지만 수메르어로 빵죽이란 의미는 낯설다. 하지만 맥주가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유래한 점을 알면 납득이 된다. 보리, 밀 등 곡물을 물에 불리면 공기 중 효모에 의해 자연 발효가 일어난다. 쌀을 발효시키면 걸죽한 막걸리가 되듯이 발효된 보리도 음료라기보다는 죽에 가까웠다. 이렇게 만들어진 보리죽은 기분이 좋을 정도의 알코올과 영양을 갖춰 ‘액체 빵’이란 별칭으로 불렸다. ‘액체 빵’은 전쟁이나 토목공사 등 사역이 잦았던 고대의 일꾼들에게 배급된 필수 식량이기도 했다. ‘즐거움 그것은 맥주, 괴로움 그것은 원정’이라는 고대 수메르의 기록이 맥주의 위상을 짐작하게 한다.

최초의 맥주는 BC 4000년쯤 보리빵이 주식이던 수메르에서 생겨났다는 게 정설이다. 맥주 양조장을 운영했고 지푸라기 빨대로 맥주를 마시는 모습이 유적에 새겨져 있다. BC 3000년쯤 이집트로 전해진 맥주는 신에게 바치는 음료이자, 노동자에게 지급되는 임금이었다. 이집트의 유물 중에는 맥주를 만드는 형상도 있다. 바빌로니아의 함무라비법전에는 맥주와 관련된 조항들이 여럿 있다. 이를테면 맥주를 사고팔 때는 값을 곡물로 치르지만, 외상 술값은 은으로만 받도록 했다.

하지만 그리스·로마 시대에는 맥주가 홀대받았다. 와인은 ‘신의 음료’라며 최상으로 쳤지만, 맥주는 야만족의 역겨운 발효 음료로 낮춰봤다. 그러다가 카이사르의 갈리아 원정 때 맥주가 병사들의 영양 공급원으로 각광받으면서 대중적인 음료로 널리 퍼졌다.

중세에는 수도원을 중심으로 맥주 양조법이 발전했다. 수도사의 빈약한 식단을 메우는 영양 보충용이자 주된 수입원으로 맥주를 제조했다. 특히 맥주 맛을 높이는 방법을 연구하던 수도사들이 홉(hop)을 첨가하면 풍미가 높아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이를 계기로 걸쭉하고 뿌연 고대 맥주에서 투명한 중세 맥주로 변신한 것이다. 맥주의 품질이 높아지고 값도 싸지면서 도시 서민에게도 맥주가 널리 퍼졌다. 그러자 1220년 독일의 자유도시 울름에서 최초로 맥주세를 물린 것을 시작으로, 각국은 세금 수입을 위해 납세 의무가 없는 수도원 대신 민간의 전문 양조업자들에게 맥주 제조를 권장했다.
맥주하면 독일을 떠올리게 한 맥주순수령
독일이 맥주 종주국이 된 것은 흔히 물이 나빠 물 대신 맥주를 많이 마신 것 때문이라고 알려졌다. 하지만 진짜 이유는 따로 있다. 상쾌하고 신선한 맥주의 기원이 바로 독일이기 때문이다. 그 계기가 1516년 반포된 ‘맥주순수령’이다. 바이에른 공국의 빌헬름 4세가 맥주 원료를 보리, 홉, 물로만 제한한 법이다. 한마디로 맥주에 이것저것 섞지 말라고 제조방식을 규제한 것이다.

맥주순수령의 목적은 세 가지였다. 밀, 호밀 등의 사용을 억제해 식량을 확보하고, 맥주 품질을 높여 맥주세 수입을 올리며, 저질 맥주를 만드는 악덕업자들을 도태시키려는 것이다. 이 법은 갑자기 등장한 것이 아니다. 맥주에 홉을 첨가하면서 독일 각지에서 기술 경쟁이 벌어졌다. 맥주에 약초, 향신료 등 이것저것 첨가되고, 심지어는 독초를 넣어 빨리 취하게 만드는 등 폐해가 컸다. 일부 수도원에서 생겨난 밀 맥주가 널리 퍼지면서 식량이 부족해지는 문제도 생겼다. 이 때문에 12세기 이후 바이에른 공국에 속하는 도시들은 저질 맥주를 만들면 벌금을 물렸다. 또한 밀 대신 보리로만 맥주를 만들게 했고 소나무 껍질, 열매 등 다른 재료를 넣는 것을 금지하는 법령도 시행했다. 맥주순수령은 맥주 제조의 표준이 됐다. 19세기 초에는 밀로 맥주를 만드는 것도 허용됐다. 그리고 맥주순수령이 독일 전역으로 퍼진 것은 20세기 초에 이르러서다.

맥주 양조방식이 다른 여타 지역들이 이를 기피했기 때문이다. 유럽연합(EU) 출범에 앞서 프랑스 벨기에 등이 독일의 맥주순수령을 비관세장벽이라고 반대해 1987년부터 수출입맥주에는 허용되지 않는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소비자 욕구를 감안하여 맛과 풍미를 다양화한 음식들이 만들어지는 요즘에도 독일 양조업체들이 유서 깊은 맥주순수령에 따라 제조하고 있다고 홍보하는 이유는 왜일까.

② 음식 첨가물을 규제하는 것은 일종의 보호무역 조치라며 유럽연합(EU) 회원국들이 독일의 맥주순수령에 반대하는 이유는 왜일까.

③ 독일의 옥토버페스트처럼 세계적 관광상품이 될 수 있는 한국의 축제는 무엇이며 어떻게 해야 세계인의 관심을 끌어모을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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