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도 만난 적이 없는 사람에게 돈을 선뜻 맡기기란 쉽지 않습니다. 아껴서 모은 돈이라면 더하겠지요. 그런데 17세기 초 생판 남한테 기꺼이 돈을 맡기려는 사람들이 등장했습니다. 돈을 맡긴 사람이 받은 것이라곤 ‘종이’ 한 장이 전부였습니다. ‘나는 당신을 믿는다’는 거지요. 1602년 네덜란드 사람들 이야기입니다. 네덜란드 사람들은 일찌감치 묘한 비즈니스에 눈을 떴습니다. ‘내가 인도에 가서 후추, 정향, 육두구 등 향신료를 싼값에 사와서 높은 가격에 판 뒤 몇 배로 돌려주겠으니 지금 나에게 투자하라.’ 듣기에 따라서는 사기 같은 비즈니스였습니다. 향신료는 고기를 덜 부패하게 하고, 오래 저장할 수 있게 하고, 요리할 때 향을 좋게 하기 때문에 금처럼 비쌌습니다.
동인도회사는 또 다른 ‘신의 한 수’를 선보였습니다. 바로 유한책임제였습니다. 투자자들로부터 자금을 받은 뒤 사업성과를 배당으로 나누되 책임은 투자금만큼만 진다는 것이었습니다. 사업자가 사업에 실패하면 자신이 투자한 금액만 날리면 되었습니다. 이전에는 손실이 나면 재산을 다 날려서 빚을 갚아야 했는데 투자자가 분산될 수 있게 됐으니, 위험도 분산된 셈이었어요. 오늘날 주식회사의 유한책임제가 이미 네덜란드에 등장한 것이죠.
그런데 동인도회사 배가 돌아오기도 전에 묘한 일이 벌어졌습니다. ‘증서’가 나중에 더 큰 돈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것을 안 사람들이 증서를 거래하기 시작했습니다. 1613년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 증서를 사고파는 증권거래소가 생겼습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날 증권거래소의 시작입니다. 암스테르담 거래소 이후 뉴욕증권거래소와 런던거래소의 전신들이 잇따라 생겼습니다. 1956년 드디어 한국에서도 한국증권거래소가 생겼습니다.
주식에 투자했다가 낭패를 본 유명인이 바로 아이작 뉴턴입니다. 그는 1720년 영국 남해(South Sea)주식회사에 투자했다가 재산의 약 90%(50억원 규모)를 날렸다고 합니다. 수학 천재였던 그는 ‘사람의 광기는 측정할 수 없다’는 말을 남기기도 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소설가 마크 트웨인도 폭망한 사례입니다. 반면 유명한 경제학자 데이비드 리카도 같은 사람은 주식 투자로 큰돈을 벌기도 했습니다. 열한 살 때 주식을 처음 거래했다는 워런 버핏은 좋은 기업에 장기투자해 부자가 된 사람입니다.
주식회사는 일면식도 없는 사람끼리 돈을 투자하는 구조입니다. 신뢰 없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인간적 관계없이 오로지 물적 신뢰 위에서도 고도의 문명체가 탄생할 수 있다는 것을 주식회사는 잘 보여주었습니다. 주식은 그 신뢰의 ‘증서’입니다.
고기완 한경경제교육연구소 연구위원 dadad@hankyung.com
② 네덜란드에서 주식회사와 주식거래소가 태동한 이유를 더 조사해보자
③ 워런 버핏과 아이작 뉴턴이 주식에 투자한 방식에 어떤 차이가 있는지를 알아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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