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매도 논란'…"기울어진 운동장 여전" vs "금지 명분 약해져"

입력 2021-01-11 15:43   수정 2021-01-11 15:55


코스피지수가 사상 처음 3000선을 돌파하면서 공매도를 둘러싼 논란이 다시 달아오르고 있다. 지난해 공매도 금지 연장과 제도개선을 이끌어 낸 ‘동학개미’들은 금지 연장은 물론 완전 폐지를 주장하고 나섰다.

정치권도 금지 여론에 힘을 보태고 있다. 하지만 시장 불안이 해소된 데다 대부분 국가에서 공매도가 재개된 상황을 고려하면 금지 연장은 명분이 약하다는 반론도 만만치 않다.
"공매도 재개되면 코스피 3000 무너져"
국내 주식시장에서 모든 상장종목에 대한 공매도는 지난해 3월16일부터 전면 금지됐다. 당시 금융위원회는 코로나19 대확산(팬데믹) 영향으로 증시가 급락하자 시장안정을 위해 6개월간 한시적으로 공매도를 금지했다. 이 조치는 작년 9월 한 차례 연장됐다. 추가연장이 이뤄지지 않는다면 오는 3월15일 만료될 예정이다.

공매도가 금지된 지난 10개월 간 한국 증시는 유례없는 상승곡선을 그렸다. 작년 3월19일 1457.64까지 밀렸던 코스피지수는 지난 7일 3031.68을 기록하며 ‘코스피 3000’ 시대를 열었다.

일부 개인투자자 사이에선 “이런 급반등이 가능했던 건 그동안 증시를 억눌러왔던 공매도가 사라졌기 때문”이라며 “이참에 공매도를 완전히 없애자”는 주장도 나왔다.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영원한 공매도 금지를 청원한다’는 글이 걸렸다. 동의한 인원은 6만명을 넘어섰다.

이들은 공매도가 외국인과 기관투자가에 지나치게 유리한 ‘기울어진 운동장’이란 점을 내세우고 있다. 매도가 재개될 경우 시장이 급락할 것이라는 위기감도 반영됐다.

정의정 한국주식투자자연합회 대표는 “공매도가 재개되면 투기세력이 물량을 쏟아내 코스피지수가 2000 초반으로 추락할 가능성이 있다”고 우려했다. 정 대표는 금융위가 추진하는 개인 공매도 활성화 방안에 대해서는 “도둑을 잡아달라고 했더니 ‘같이 도둑질하라’고 부추기는 것과 다르지 않다”며 반대의사를 밝혔다.

정치권에서도 공매도를 둘러싼 논란에 민감하게 반응하고 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지난해 시장조성을 맡은 일부 증권사들의 불법 공매도 행위가 확인됐다”며 “이런 상태로 공매도가 재개되면 심각한 불법·반칙 행위가 판을 치게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양향자 민주당 최고위원도 “지난 1년간 정부와 여당이 공매도의 역기능을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해 왔지만 이에 대한 설명이 부족하다면 시장 불안을 잠재울 수 없다”며 공매도 금지 연장을 주장했다.
주요국 중 한국만 공매도 금지 유지
금융투자업계에서는 공매도 금지를 둘러싼 논의가 과학적 검증 없이 지나치게 인기영합주의(포퓰리즘)로 흐른다는 우려가 나온다. 학계에 따르면 국내·외를 막론하고 공매도가 반드시 주가하락을 유발한다는 연구결과는 거의 없다. 오히려 공매도의 적정 시장가격 발견과 거품(버블) 억제 등 순기능을 강조하는 의견이 대세를 이루고 있다.

금융당국도 주가지수가 사상 최고점을 경신하는 등 공매도 재개를 위한 여건이 성숙된 상황에서 논란이 불거져 당혹스럽다는 반응이다. 금융위는 지난해 공매도 한시적 금지조치를 두 차례 실시한데 이어 불법 공매도 처벌 강화, 공매도 투자자의 유상증자 참여 금지, 개인 공매도 확대, 시장조정자 공매도 규제 등 관련 대책을 쏟아냈다.

애초에 공매도를 금지하지 않은 미국과 일본은 물론, 유럽과 아시아 국가들에서 공매도가 대부분 재개된 상황에서 한국만 공매도 금지를 이어가는 건 ‘글로벌 스탠더드’에 역행하는 처사라는 지적도 나온다.

당국 관계자는 “지금까지 공매도 금지조치는 코로나19 금융지원 대책의 일환으로 추진했지만 코스피가 3000을 넘어선 지금은 그런 명분이 부족한 게 사실”이라며 “공매도 금지를 또 다시 연장할 경우 글로벌 투자자들에 ‘한국 경제에 여전히 불안요소가 남아있다’는 신호를 줄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한 증권사 최고경영자(CEO)도 “주요국 중 거의 1년 동안 공매도를 허용하지 않은 시장은 우리 밖에 없다”며 “글로벌 스탠더드를 지켜야 외국인도 우리 자본시장을 신뢰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오형주 기자 ohj@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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