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색케이블카 40년 잔혹사 끝내달라…대통령이 결단해야"

입력 2021-01-17 11:57   수정 2021-01-17 13:14


“한국 경제가 제조업 의존형 경제에서 탈피하려면 관광을 포함한 서비스산업을 적극 육성해야 한다. 산악관광 규제도 과감히 풀겠다."

2014년 8월 정부가 ‘설악산 오색케이블카 사업’ 추진을 천명하며 강조한 말이다. 좁은 영토의 한계 등으로 성장이 지지부진한 관광산업은 케이블카와 같은 새로운 관광 인프라 개발이 시급하다는 얘기였다. 1982년부터 설악산 제2케이블카를 추진해온 강원도 양양군 주민들은 이때만 해도 “희망고문이 끝났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현 정부 들어 ‘적폐사업’으로 몰리며 다시 삐거덕거렸다. 2019년 환경부가 이 사업의 환경영향평가에 ‘부동의’ 결정을 내리면서 사실상의 ‘사형 선고’를 받았다. 그렇게 끝나는 줄 알았던 사업은 지난달 극적으로 기사회생했다. 국민권익위원회 소속 중앙행정심판위원회(중앙행심위)가 “환경부의 부동의 통보가 잘못됐다”는 결정을 내린 것.

양양군 주민 대표로 이 사업을 추진해온 정준화 친환경설악산오색케이블카 추진위원장(사진)은 “현 정부가 사업을 억지로 무산시키려 했던 게 부당하다는 판정을 받은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더 이상 정치 논리로 지역 경제를 살리려는 주민들의 노력을 짓밟지 말라”며 “대통령이 직접 40년 케이블카 잔혹사를 끝내달라”고 호소했다.

▷양양군이 “환경부의 환경영향평가 부동의 통보를 취소해달라”며 청구한 행정심판에서 인용 결정을 받았다.

“정말 다행이다. 환경부가 이 사업을 무산시키려고 했던 행동들이 무리한 것이었음이 증명돼 그간의 마음 고생을 조금이나마 보상 받는 기분이다. 중앙행심위 인용 결정은 환경부 처분에 절차적 하자가 있다는 것이었다. 현 정부가 그렇게 강조하는 ‘과정의 공정성’이 무시됐다는 것이다. 오색케이블카 사업 계획은 2015년 국립공원위원회에서 조건부 승인을 받았다. 이때 계획의 적정성과 입지의 타당성 등 사업의 큰 줄기는 합격 판정을 받은 것이었다. 그런데 환경부는 환경 영향에 초점을 맞춰야 할 환경영향평가에서 사업의 적정성, 타당성 등 근본적인 문제에 다시 딴지를 걸어 부동의 처분을 내렸다.”

▷왜 그랬을까.

“오색케이블카 사업은 적폐 사업이라고 틀을 짜놓고 그 결론에 맞추려다 보니 무리수를 둔 것이다. 현 정부 들어서 환경부가 제일 먼저 한 일 중에 하나가 ‘환경정책제도개선위원회’라는 내부 조직을 만들어서 오색케이블카 사업을 적폐로 규정한 것이다. 이전 정부에서 사업을 추진했던 환경부 실무자들도 다 옷 벗었다. 그리고선 환경부 장관이나 청와대 요직에 환경단체 출신들을 앉혔다. 그러니 어떤 공무원이 이걸 긍정적으로 추진하려 하겠나. 주민 대표로서 환경부와 수차례 협의를 했지만 어떻게든 사업을 무산시키려는 모습밖에 안 보이더라.”

▷뭘 보고 그렇게 느꼈나.

“원주지방환경청은 환경영형평가 과정에서 찬반 측 갈등을 해소한다고 ‘환경영향갈등조정협의회’란 걸 만들었다. 협의회에서도 계속 협의가 지지부진했다. 그래서 내가 ‘정말 케이블카를 깔면 산이 망가지는지 다 같이 외국 현장 방문을 가보자’고 제안했다. 환경단체는 국립공원은 케이블카를 절대 놓으면 안 된다는데 일본이나 호주는 국립공원에도 케이블카가 많다. 그런데 원주환경청이 제안을 거절하면서 댄다는 이유가 '시간이 없어서'였다. 지극히 상식적인 요구인데 그냥 사업을 하고 싶은 마음이 없던 것이다.”

▷환경단체들은 오색케이블카 사업 구역이 멸종위기종인 산양의 주요 서식지라는 이유로 반대한다.

“객관적 근거가 없는 주장이다. 국립공원관리공단 산하 연구소(국립공원공단종복원기술원)에서 설악산의 산양 실태를 5년간 조사했는데, 케이블카 설치 지역은 주요 서식지가 아니라는 결과가 나왔다. 산양이 그 지역을 가끔 왔다 갔다 하기는 해도 주 서식지는 아니라는 것이다. 그런데 환경단체는 몰라도 정부마저 국책연구소 연구 결과를 부정하더라. 갈등조정협의회에 당시 연구를 수행했던 연구원들을 증인으로 불러놓고 ‘잘 조사한거냐’고 다그쳤다.”

▷산양 이외에도 설악산의 우수한 환경 생태가 훼손될 것이란 우려도 있다.

“지금도 설악산은 환경 훼손이 심하다. 탐방로가 너무 많아서다. 사람들이 등산하면서 쓰레기를 버리고 나뭇가지도 꺾고 하는 걸 일일이 막기 힘들다. 케이블카를 놓으면 도보 등산이 줄어들어 환경 훼손이 오히려 줄어든다. 우리는 더 나아가 케이블카를 설치하는 대신 현재 탐방로 절반 이상을 폐쇄하자는 제안도 했다. 하지만 정부나 환경단체는 귓등으로 흘리더라. 하나 더 강조하고 싶은 건 설악산을 제일 사랑하는 건 지역 주민들이라는 것이다. 주민들이 설악산 쓰레기 줍기도 주기적으로 한다. 불이 나면 화재 진압에도 참여한다. 그렇게 설악산 자연 환경을 아끼는 주민들이 이 사업이 필요하다고 하는데, 불 한 번 안 꺼본 환경단체들이 무슨 권리로 반대하는 건지 이해할 수 없다.”

▷경제성은 어떤가. 케이블카 하나를 놓는다고 지역 경제가 살아날까.

“케이블카가 모든 걸 해결해준다고는 생각하진 않는다. 하지만 시도해볼 만한 가치는 있다. 전국민이 설악산을 두세번씩은 와 봤을 거다. 또 올 만한 유인이 없다. 실제로 설악산 탐방객은 해가 갈수록 줄고 있다. 그런데 한국 사람들은 새로운 것을 좋아하지 않나. 케이블카가 생기면 색다른 경험, 새로운 경관이 열리니 다들 한번씩은 와볼 거다. 또 고령화 추세가 빠르지 않나. 노인분들이 설악산 같이 높은 산을 걸어 올라가기 힘들다. 케이블카가 생기면 어르신들이 편하게 설악산을 즐길 수 있다. 그렇게 설악산을 찾는 발길이 많아지면 그냥 돌아가진 않을 것 아닌가. 양양 시내는 물론 속초도 가보고 강릉도 가볼 거다. 지역 경제 전반에 큰 도움이 될 거다.”

▷중앙행심위 결정으로 40년 숙원이 풀릴까.

"그렇게 기대하고 있지만 불안하다. 환경단체 반대가 여전히 심하다. 정부도 '산악관광 개발은 보수 정권이 추진하던 적폐 사업'이라는 입장이 여전한 것 같다. 그래도 이전보다는 한 단계 나아간 건 맞다. 환경단체와도 적극 소통해 타협점을 찾을 것이다."

▷정부에 하고 싶은 말이 있나.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모든 국민이 힘들다. 이 와중에 수출은 잘 된다는데 내수는 쑥대밭이 되지 않았나. 이럴 때 내수 경제를 살릴 수 있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한 것 아닌가. 특히 내수에 큰 영향을 주는 관광산업을 살려야 한다. 한국은 땅이 좁아서 사람들이 웬만한 관광지는 다 가봤고 뭔가 새로운 볼 거리, 즐길 거리가 생겨야 국내 관광이 활성화될 수 있다. 그런데 정부는 말로만 내수, 관광 살리겠다고 하면서 관광 자원 개발은 손을 묶어놓고 있다. 특히 현 정부 들어 케이블카 같은 사업은 정치 논리로 다 무산시키려 한다. 정치 논리를 떠나서 지역 주민, 지역 경제를 봐 달라. 대통령의 통 큰 결단이 필요하다.”

양양=서민준 기자 morando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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