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현승 KB자산운용 대표 "자산운용 본질은 위험 관리…묻고 또 물어라"

입력 2021-01-19 17:21   수정 2021-01-20 01:10


“안녕하십니까, 이현승입니다. 올 한 해도 건강하시길 기원합니다. 저희 회사에 대한 건의사항이 있으면 언제라도 제게 직접 연락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국내 주요 증권사와 은행의 상품 담당자들은 신축년 새해 첫날 깜짝 놀랐다. KB자산운용의 이현승 사장이 실무자들에게 문자도 아니고 직접 전화를 걸어 안부를 물었기 때문이다.

자본시장을 대표하는 장수 최고경영자(CEO)로 꼽히는 이 사장의 꼼꼼함이 묻어난 일화다. 한 증권사 실무자는 “대형 운용사 CEO가 직접 주요 고객사의 실무자까지 챙기는 일은 드문 일”이라며 “여의도에서 10년 넘게 CEO로 활동한 내공이 느껴진다”고 전했다.
‘엘리트 관료’ 성공 신화
이 사장은 금융투자업계에서 보기 드문 관료 출신 CEO다. 행정고시 32회로 공직에 입문해 재정경제부(현 기획재정부) 경제정책국을 시작으로 예산실, 장관실 등을 거쳤다. 1998년에는 하버드대 케네디스쿨에서 행정학 석사를 취득했다. 그는 외환위기 시절 2년 반 동안 장관 비서실에서 네 명의 장관을 보좌한 이력도 있다.

‘엘리트 공무원’ 경력을 밟고 있던 이 서기관은 2001년 돌연 공직을 떠났다. 한국의 기업들이 외환위기 극복을 위해 고군분투하는 모습을 보고, 경제의 최전선에서 직접 뛰고 싶은 열망을 품었다고 한다. 당시 그의 행보는 과천 관가에서 큰 화제가 됐다.

그는 기업금융 전문 컨설턴트로 변신한다. 미국계 컨설팅 업체인 AT커니에서 우리금융지주의 탄생을 주도했다. 2002년에는 메릴린치 한국 지사로 옮겨 투자은행(IB)의 세계에 발을 디뎠다. 그가 본격적으로 금융투자업계 경력을 시작한 계기다. 당시 이사로 영입된 이 사장은 신입 직원들과 함께 교육을 받으며 인생에서 가장 치열한 한 달을 보냈다고 한다. 뒤늦게 자본시장에 뛰어든 만큼 주말도 없이 하루에 세 시간 이상 잠을 잔 적이 없었다.

그는 GE에너지코리아 사장을 거쳐 2008년 SK증권 사장으로 선임됐다. 당시 만 42세. 증권사 최연소 CEO 기록을 세웠다. 약 6년 동안 SK증권 CEO를 거쳐 코람코자산운용과 현대자산운용을 거쳤다. 자본시장 CEO 경력만 벌써 13년에 이른다. KB자산운용 각자 대표였던 그는 올해부터 단독 대표로 승격됐다.
대체투자 수탁액 16조원…3년 새 두 배
장수 CEO 비결은 무엇일까. 이 사장은 금융 경력이 짧은 핸디캡에도 관료 출신의 안목, 특유의 리더십을 갖췄다는 게 주변 평가다. 여의도에서 이 사장을 겪어본 이들은 이 사장을 ‘디테일에 강한 리더’라고 설명한다. 한 증권사 임원은 “이 사장은 지식이 풍부하고, 판단이 정확하다”며 “무엇이든 막힘이 없다”고 말한다.

이 사장은 임직원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진다. 그 질문을 통해 회사 리스크를 파악하려는 그만의 업무 스타일이 있다. 그는 올해 단독 대표로 취임한 이후 전 직원에게 자신의 업무 체크리스트를 제작하도록 지시했다. 이 사장은 각 본부의 체크리스트를 확인할 뿐, 개별 임직원의 체크리스트는 관여하지도, 확인하지도 않는다. 모든 임직원이 스스로에게 자신의 역할을 묻고 답하는 과정을 거쳐 업무 과정에서 생길 수 있는 리스크를 확인하도록 하려는 의도다. 리스크 관리를 자산운용 전략을 넘어 하나의 기업 문화로 정착시켜야 한다는 게 그의 경영 철학이다.

이 사장은 직원들과 회의할 때마다 “금융사가 빠질 수 있는 최대의 리스크는 기존에 잘하던 사업에 매몰되는 것”이라고 강조한다. 질문을 통해 리스크를 발견하고, 이를 관리하는 그의 전략은 KB자산운용에서도 결실을 봤다. 그가 대체투자 부문 대표로 부임하기 이전인 2017년 당시 KB자산운용 대체투자 사업은 전체 자산의 72%가 국내 인프라펀드인 자산구조를 갖고 있었다. 그는 사업영역 확대를 통해 국내 인프라 편중 구조를 벗어나는 것이 오히려 회사 전체의 리스크를 줄일 수 있다고 판단했다. 그 결과 KB자산운용의 대체투자 수탁액은 3년 사이에 8조원에서 16조원으로 급증했다. 신규사업으로 발굴한 부동산 대체투자 사업이 3조7000억원, 기업투자 사업이 1조8000억원의 수탁액을 올렸다. 주축이었던 인프라 부문도 9조9000억원까지 증가했다.

과거에도 그는 회사의 약점으로 평가받던 분야를 집중적으로 키워냈다. SK증권 시절에는 프라이빗에쿼티(PE) 사업부를 신설하고, 회사의 간판 사업으로 자리잡도록 지원했다. 코람코자산운용에선 직접 발표 자료를 만들고, 영업 인력들과 함께 판매사들을 만나가며 국내 최초로 국내 부동산 블라인드펀드를 발족시켰다.
국내 최대 ESG 운용사로 시동
이 사장이 올해 가장 많은 질문을 던지는 주제는 ESG(환경·사회·지배구조) 투자다. ESG는 코로나19 사태 이후 글로벌 금융업계 최대의 화두다. 펀드평가회사 모닝스타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ESG 관련 펀드에 신규 유입된 자금은 206억달러로 2018년(55억달러)의 네 배에 달한다. 반면 국내 자산운용업계에서 ESG 관련 투자는 아직 초기 단계다.

그의 올해 목표는 KB자산운용을 국내 최대 ESG 자산운용사로 탈바꿈하는 것이다. 이 사장은 “이미 ESG는 글로벌 투자업계의 거부할 수 없는 트렌드가 됐고, ESG 사업에 승부수를 던지지 않는 것 자체가 리스크인 상황”이라고 말했다.

KB자산운용은 올해부터 주식과 채권, 해외투자 등 모든 부문에 ESG 요소를 도입할 방침이다. 주식형 펀드는 ESG 평가에서 우수한 평가를 받은 기업을 중심으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채권 부문은 1분기 내로 자체 ESG 투자 지침 및 평가 방법을 구축하기로 했다. 해외투자 사업에서는 친환경 테마의 펀드를 상반기 내 신규 출시하고, 해외 운용사와 펀드를 선정할 때 ESG 요소를 평가 점수에 반영할 계획이다.

■ 이현승 대표는

△1966년 서울 출생
△1984년 서울고 졸업
△1988년 서울대 경영학과 졸업
△1988년 행정고시 합격(32회)
△1989년 재정경제부 사무관
△1991년 서울대 행정학 석사
△1997년 하버드대 로스쿨 국제조세과정
△1998년 하버드대 JF케네디스쿨 행정학 석사
△2000년 재정경제부 서기관
△2002년 메릴린치 서울지사 IB부문 이사
△2006년 GE 에너지코리아 사장
△2008년 SK증권 사장
△2015년 코람코자산운용 사장
△2017년 현대자산운용 사장
△2018년 KB자산운용 사장


전범진 기자 forward@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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