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자 칼럼] 도스토옙스키 200주년과 '죄와 벌'

입력 2021-01-21 17:58   수정 2021-01-22 00:16

러시아 문호 도스토옙스키(1821~1881)는 가난한 군의관의 아들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일하는 모스크바 빈민병원에서 극빈 가정의 환자들과 함께 자랐다. 그 속에서 가난과 증오의 밑바닥을 봤다. 공병학교 졸업 후 24세에 펴낸 첫 소설 제목은 《가난한 사람들》이었다.

27세 때는 유토피아 사회주의자들의 모임에 푹 빠졌다. ‘가난 없는 평등사회’라는 비현실적 이상에 환호하던 그와 동료들은 곧 니콜라이 1세에 의해 불온사상 유포 혐의로 체포돼 사형선고를 받았다. 총살형 직전에 집행정지로 목숨을 건진 그는 시베리아에서 4년간 감옥생활을 했고, 또 4년을 사병으로 복무했다. 10년에 가까운 유형지 시절에 그는 새로운 세계관에 눈을 떴다. 인간 본성과 삶의 의미를 깊이 성찰하는 눈빛도 날로 깊어졌다.

그가 《죄와 벌》을 발표한 것은 45세 때인 1866년이었다. 소설 무대는 ‘아무데도 갈 데 없는’ 사람들로 가득 찬 도시 뒷골목. 주인공인 가난한 대학생 라스콜리니코프는 불공평한 세상을 증오하며 전당포 노파를 살해하고 금품을 훔친다. ‘서민의 피를 빨아먹는 기생충’을 죽이고 부자 돈으로 가난한 사람들을 돕겠다는 게 표면적 이유였다. 하지만 내면에는 왜곡된 정의감과 타인을 심판하려는 권력욕이 잠재돼 있었다.

죄의식에 시달리던 그는 우여곡절 끝에 자신의 범죄를 자백하고 시베리아에 유형된다. 그곳에서 죄를 진심으로 뉘우친 뒤에 그는 극적으로 거듭난다. 소설은 그 순간을 “병들어 창백한 얼굴에서는 이미 새로워진 미래의 아침노을, 새로운 삶을 향한 완전한 부활의 서광이 빛나고 있었다”라고 묘사했다.

라스콜리니코프의 허황된 생각과 난폭한 행동은 오늘날 우리 안에도 잠재돼 있다. 좌우와 흑백을 가르는 이분법의 폭력, 이념 논쟁에 짓눌린 개인의 삶, 앞이 보이지 않는 감염병의 긴 터널이 우리를 고통스럽게 한다. 절망 속에서 비치는 서광의 빛줄기가 필요하다. 헤르만 헤세는 “더 이상 견딜 수 없을 만큼 고통스러울 때, 인생 전체가 타는 듯한 상처처럼 느껴질 때” 도스토옙스키를 읽으라고 말했다.

도스토옙스키 탄생 200주년 기념으로 나온 《죄와 벌》(지식을만드는지식) 한정판 100권이 1주일 만에 완판됐다고 한다. 가죽장정 하드커버로 고가(22만원)인데도 불티가 났다. 《백치》 《카라마조프가의 형제들》 《악령》도 곧 나올 모양이다. 요즘 같은 때일수록 문학의 위로가 더욱 절실하다.

고두현 논설위원 kd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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