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인은 오늘만 사는 사람 같다”는 은행들 [박종서의 금융형통]

입력 2021-01-26 07:30   수정 2021-01-26 07:32



“하는 이야기를 들어보면 다들 오늘만 사는 사람들 같습니다.”

오래 알고 지내온 은행권 지인이 한숨을 쉬며 한마디 했습니다. 정치권의 얼토당토 않은 압박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이자를 받지마라, 심지어 건물주한테까지 이자를 깎아줘라 같은 이야기까지 나오니 도대체 어떻게 반응을 해야할지 모르겠다고 합니다. 사회공헌 기금을 내라, 대출 만기를 늦춰달라는 요구는 양반이라는군요.

코로나19 확산으로 어려워진 소상공인들을 도와야 하는 것은 불가피한 일이겠지요. 은행들은 그나마 형편이 괜찮으니 손을 벌려 볼 만도 하겠습니다. 120조원이 넘는 대출금의 만기를 1년째 늦춰주고 추가 연장까지 기정사실화된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서민금융을 지원하기 위해 목돈을 걷겠다는 것도 은행권에서는 예상한 일이라고 합니다. 은행권 관계자는 “정권마다 있었던 일이고 돈을 주고 끝내는 게 오히려 깔끔하다”고까지 말합니다. 금융회사들에게 수천억원을 걷겠다는 말이 국회에서 나오지만 그렇게 놀라는 기색은 없습니다.

외부 압력에 어지간히 익숙해진 은행들이라도 견디지 못하는 것이 있습니다. 이자에 손을 대려고 하는 일입니다. 가격(이자)을 스스로 책정할 수 있는 권리를 보장해 달라는 요구입니다. 쉽게 말해서 신용과 담보가 부족한 사람들, 경영 사정이 어려워진 회사에게는 이자를 많이 받아야겠다는 것이지요.

금융위원회가 소상공인·중소기업에 대한 대출 만기 연장과 이자 상환 유예를 권유했을 때도 은행들은 마지막까지 이자는 받아야겠다며 저항했습니다. 이자조차 낼 수 없는 형편의 차입자를 골라내서 ‘조치’를 취하겠다는 의도입니다. 부실을 확정하고 채권 회수 가능성을 열어두겠다는 뜻으로 봐야 합니다. 어려울 때 자금을 회수하는 것, 이른바 ‘비 올 때 우산을 뺐겠다’는 얘기입니다.

비정한 은행들입니다. 하지만 금융부 기자로서 변호를 하게 됩니다. 은행을 위해서가 아닙니다. 은행이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은행들의 자율적 영업행위로 얻어지는 순기능을 위해서입니다. 은행들은 같은 이자라면 장사가 잘 되는 곳, 사업성이 좋은 곳에 돈을 꿔주려고 하겠지요. 돈을 떼이지 않고 안정적으로 이자를 받기 위해 안간힘을 쓰는 과정에서 전도가 유망한 곳에 돈이 모이게 됩니다.



만약 정치권이 은행을 강제해서 신용이 부실해진 사람들에게 이자를 깎아주면 어떻게 될까요. 사업성 좋은 곳으로 흘러야할 돈이 그렇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신용도가 좋은 사람과 회사들은 돈을 구하지 못해 피해를 보게 될 것입니다. 아무리 큰 은행이라도 해도 융통할 수 있는 자금은 한계가 있으니까요.

좁게는 은행 주주들의 권리가 침해되고 예금자들까지 피해를 볼 수 있습니다. 은행에 맡겨 놓은 돈이 부실한 곳으로 흘러가면 어떤 결과로 이어지겠습니까. 코스피지수가 40% 이상 상승한 지난 1년간 은행권 주가는 오히려 25%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정치권의 움직임에 ‘오늘만 사는 것 같다’는 말이 이해가 되는 대목입니다. 은행이 최선을 다해서 유망한 사업에 자금을 대줄 수 있도록 자율성을 줘야 하는 이유입니다. 금융이 규제산업이라는 특징을 감안하더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쉬움은 금융위원회에게도 듭니다. 정치권의 목소리에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지요. 누구보다 금융의 생리와 본질을 꿰뚫고 있는 관료들이 정치인들 눈치를 보느라 침묵을 하고 있습니다. 마무리는 금융위원회법으로 갈음하려고 합니다.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을 설치해 금융산업의 선진화와 금융시장의 안정을 도모하고 건전한 신용질서와 공정한 금융거래 관행을 확립해 예금자 및 투자자 등 금융 수요자를 보호함으로써 국민경제의 발전에 이바지함을 목적으로 한다(1조).”

“금융위원회와 금융감독원은 그 업무를 수행할 때 공정성을 유지하고 투명성을 확보하며 금융기관의 자율성을 해치지 아니하도록 노력해야 한다(2조).”



박종서 금융부 기자 cosmo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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