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재판 이후…'셀프 감시'에 힘쏟는 기업들

입력 2021-01-28 17:16   수정 2021-01-31 1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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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관이 없어 보이는 이들 기업에는 공통점이 있다. 최근 '컴플라이언스' 업무와 관련한 전문 인력을 뽑았거나 채용 중인 곳들이다.

컴플라이언스는 쉽게 말해 '자체적으로 실시하는 준법 감시 시스템'이다. 기업들이 나서서 자신들의 영업 행위에 위법한 사항이 없는지 '자가 검진'하겠다는 취지다. 최근 수 년 동안 컴플라이언스가 기업 경영의 중요 이슈로 떠오르면서 대기업부터 스타트업까지 이를 보강하는 곳이 늘었다.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에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지난 18일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국정농단 사건 파기환송심에서 2년6개월 실형을 받은 게 계기다. 비록 이 부회장의 경우 양형 요소로 인정받진 못했지만, '삼성 준법감시위원회'는 업계의 벤치마킹 대상이다. 기업에서는 법무팀을 중심으로 "보다 구체화된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구축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삼성 준법감시위 실효성 미흡" … 법원이 쏘아올린 공
28일 재계와 법조계에 따르면 국내 주요 기업들은 이 부회장의 파기환송심 선고 이후 컴플라이언스 보강에 관심을 두고 있다. 기업이 법률적 문제에 휘말렸을 때 보다 실질적으로 기능할 수 있는 시스템을 마련하는 데 눈을 돌리고 있다는 얘기다.

기업들이 컴플라이언스와 관련해 경각심을 높이게 된 데는 최근 이 부회장의 실형 선고 여파가 크다. 당초 재판부는 지난해 "삼성 준법감시위원회 활동을 양형에 반영할 수 있다"는 뜻을 내비친 바 있다. 이에 삼성은 지난해 2월 뇌물 등 불법적인 기업활동을 자체 감시하는 준법감시위를 설치해 운영하고 있다. 그러나 결국 재판부는 "삼성 준법감시위는 앞으로 발생 가능한 새로운 행동에 대해 선제적 감시 활동까지는 하지 못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양형 요소로 보지 않았다.

이에 따라 컴플라이언스의 '실효성'을 높이고 이를 증명하려는 움직임이 일어 나고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대기업 법무팀 사내변호사 A씨는 "이 부회장에 대한 판결이 기업의 준법 관련 활동에 '트리거'로 작용하게 됐다"며 "해당 판결이 나온 이후 '만약의 사태가 발생할 시 양형에 참작할 수 있도록 보다 구체적인 컴플라이언스 방안을 구상해보라'는 지시가 내려왔다"고 귀띔했다.
과징금·양형 참착 기준될까 … "판례 쌓여야 할 것"
기업들이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보강하려고 해도 제도적 한계점이 지적도 나온다. '컴플라이언스 체제의 실효성에 대한 명확한 기준이 없는 게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어느 수준에까지 도달해야 인정받을 수 있을 지 알 수 없다'는 것이다.

또다른 사내변호사 B씨는 "기업의 컴플라이언스 활동에 따라 과징금 산정이나 검찰의 기소 등이 고려되는 실질적 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말했다.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제대로 구축해 운영한다면, 행정부 조사와 과징금 등 행정벌, 법원의 양형, 민사상 손해배상책임의 범위 등을 결정할 때 고려 사항이 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의 경우 연방양형기준(제8항)에서 컴플라이언스 시스템을 미리 갖추고 열심히 활동한 기업에는 최대 95% 수준으로 벌금을 감경해주는 내용이 포함돼 있다. 미국 재판부가 기업의 준법 감시 시스템을 근거로 민사상 책임을 감면해준 사례도 자주 언급된다. 1996년 미국의 의료서비스 회사인 케어마크사가 불법 커미션 행위로 2억5000만 달러 규모의 벌금을 물게 되자 주주들로부터 소송을 당했다. 이 때 재판부가 내부 규제에 문제가 없었다는 이유로 화해로 재판을 종결한 게 대표적이다.

법조계에서는 기업들의 컴플라이언스 활동을 참작한 구체적인 판례들이 쌓여야 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사내변호사 C씨는 "정부 기조와 재판부에 따라 앞으로의 컴플라이언스 활동이 법정에서 어떻게 해석될 지 예측하기 어려운 게 사실"이라면서 "다양한 판례가 쌓인다면 기업 현장에서도 일정한 '기준'을 가늠할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준법 감시' 바라보는 내부 분위기 바뀌어야"
여전히 기업 내부의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있다. 컴플라이언스 활동이 '비용 지출'로 인식되는 곳이 있는 만큼, 준법 경영에 대한 내부적 공감대를 만들어가는 게 우선이라는 설명이다.

예방적 차원에서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투자가 더 늘어나야한다는 주장이 나온다. 당장의 성과로 돌아오는 상품 기획이나 기술 개발과 달리, 컴플라이언스의 경우 가시적인 결과물은 보이지 않지만 불필요한 비용 지출이나 위험 요소를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는 것이다.

대기업 법무팀장으로 근무하는 변호사 D씨는 "기업이 자체적으로 변호사를 뽑기 시작한 20년 전과 비교했을 때 컴플라이언스에 대한 경영진의 이해도가 점점 높아지고 있지만 아직은 갈 길이 멀다"고 했다. 그는 또 "최근 중대재해처벌법, 상법개정안 등을 두고서 기업 내부에서 법률적으로 검토할 사안이 늘어났다"며 "경영 환경이 급변하는 만큼, 컴플라이언스 관련 분야에 인력과 자원을 보충하는 등 투자를 선제적으로 더 늘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안효주 기자 joo@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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