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아의 독서공감] 내 일기장, 매년 백지로 끝나도…

입력 2021-01-28 17:39   수정 2021-01-29 02:44


올해에도 새 일기장을 준비했다. 하루 일정을 적는 다이어리도 있지만 왠지 그것만으로는 성에 차지 않는 것 같아서다. 1월에는 나름대로 열심히 써서 종이에 글씨가 빼곡하다. 2월이 되면 글씨 수가 조금씩 적어지고, 3월부턴 아예 안 쓰는 날이 점점 늘었다가 4월부턴 일기장이 백지가 된다. 매년 그런 과정을 되풀이하면서도 일기장을 포기하지 못하는 건 마치 “올해엔 꼭 다이어트에 성공하겠다”는 맹세의 되풀이 같다. 다짐의 순간은 행복하고, 결과를 보는 순간은 허탈하다.

하루하루의 기록을 놓치지 않은 사람을 다룬 신간 3권이 나왔다. 《몽당연필은 아직 심심해》(글항아리)는 1954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난 저자 이종옥이 초등학교 3학년 때부터 군에 입대한 1975년까지 쓴 일기 중 60편을 골라 담은 책이다. 기성회비를 가져가야 하는 아이와 그걸 못 주는 부모 사이의 실랑이에선 가난의 슬픔이 배어 나온다. 귀신 나올까봐 뒷간에 혼자 못 가서 용을 쓰다가 결국 뒷간에 빠지는 이야기를 읽다 보면 웃음이 나온다. 도시락을 싸 오지 못해 자존심이 상해서 수돗물로 배를 채웠다는 일기엔 배고픔의 서러움이 느껴진다. 저자는 68세가 되어 57년 전 일기를 공개한 데 대해 “일기가 평생 자신을 돌아보는 거울이자 살아갈 힘이 됐다”며 “동시대 보통 사람들의 일상이 차곡차곡 담겨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엄마의 마지막 말들》(창비)은 박희병 서울대 국문학과 교수가 말기 암과 알츠하이머성 인지저하증을 앓았던 어머니의 생애 마지막 307일을 기록한 책이다. 어머니의 병상을 지키며 들었던 어머니의 말씀 165개와 그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담았다. 어머니는 아들을 제대로 알아보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밥 묵었나” “공부하다 오나”라고 물어보고 어릴 적 간식 ‘박산’(뻥튀기)을 반긴다. 정신이 돌아오면 “우리 아들이 교수”라고 자랑하고 “오지 마라, 힘들다” “춥다. 옷 더 입어라” “피곤한데 또 왔나? 욕만 보인다”라고 손사래를 친다. 저자는 그런 어머니의 모습에서 지난날을 떠올리며 뭉클함과 서글픔을 함께 느낀다. 저자는 “의미 없어 보이는 ‘엄마의 말’들을 어머니의 의도와 뜻을 살펴 해석하는 것은 아들이기에 해야 했고 할 수 있는 일”이라고 말한다.

《서점 일기》(여름언덕)는 스코틀랜드의 책마을 위그타운에서 중고서점 ‘더 북숍’을 운영하는 숀 비텔이 쓴 일기다. 2001년 11월 이 서점을 인수한 저자는 “서점 사장으로 살기가 너무 힘들다”고 솔직하게 털어놓는다. “지적인 손님들이 줄줄이 들어와 흥미로운 대화를 청하고 책값으로 두둑한 현금을 놓고 나가는 곳 따윈 없다”며 서점에 대한 환상도 깨뜨린다. 하나같이 제멋대로인 직원들은 쓰레기통을 뒤져 먹을 것을 구해 오고, 서점 안의 금전등록기는 1년 내내 텅 비어 있다. 서점 구석구석 빼곡히 들어찬 10만 권의 책들 가운데는 16세기 가죽 제본 성경부터 애거사 크리스티의 초판본까지 없는 것이 없다. 하지만 손님들의 사진 촬영 1순위는 저자가 총으로 쏴서 벽 한쪽에 걸어 놓은 아마존 전자책 킨들이다. 냉소적인 괴짜 스타일이지만 책과 사람을 사랑하는 저자의 순수함이 느껴진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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