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점·토익 높은 '모범생'보다 한 분야 깊게 파는 '마니아' 돼라"

입력 2021-01-31 17:39   수정 2021-02-08 18:30


서울 명문 사립대 인문계열에 다니는 현모씨(25)는 지난해 졸업을 1년 유예하고 취업준비를 시작했다. 취업의 문턱은 너무 높았다. 학점 4.0에 토익 950점이 넘는 ‘고(高)스펙’을 갖추고도 수시채용에서 번번이 낙방했다. 그는 “저학년 때부터 기업 인턴십이나 직무 관련 경험을 쌓지 않은 게 후회된다”고 털어놨다.

대기업 인사팀에서 일하는 이모 차장은 취업준비생들의 입사지원서를 보면 입이 벌어진다. 학점과 영어점수는 과거 자신이 입사했을 때와 비교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높은데도 뽑을 수 없어 안타깝다고 한다. 이 차장은 “수시채용에선 ‘직무적합성’이 사실상 합격의 80%를 좌우한다”고 했다.
커지는 취준생의 고민과 좌절
국내 기업의 채용방식이 정기 공개채용에서 수시채용으로 바뀌고 있다. 기업들이 수시채용을 앞다퉈 도입하는 이유는 즉시 현업에 투입할 인력을 원하기 때문이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정기공채를 통해 신입사원을 뽑으면 처음부터 모든 것을 가르쳐야 한다”며 “첫 1년 동안엔 현업 투입은커녕 교육만 받는다”고 말했다. 수시채용이 확산되면서 취준생들의 고민은 깊어져 가고 있다. 가뜩이나 좁은 취업 문을 뚫기가 더 어려워진 데다 취업전략에도 큰 변화를 줘야 한다. 취준생들은 수시채용 선발 기준이 모호하고, 준비과정도 막연하다고 토로한다. 서울 소재 사립대에 다니는 문모씨는 “신입사원 대신 직장을 다녔던 ‘중고신입’을 뽑겠다는 취지로밖에 보이지 않는다”고 지적했다.

이공계에 비해 인문·상경 계열을 전공한 취준생들이 더 절박하다. 전공만으로도 직무적합성을 인정받을 수 있는 이공계와 달리 인문·상경 계열은 상당 기간 준비가 필요하다. 사회학을 전공한 한 취준생은 “대부분의 기업이 인사, 재무, 기획 등 분야에서도 이공계 전공자를 선호한다”며 “은행들도 요즘엔 인문·상경계열 학생들을 잘 뽑지 않는다”고 토로했다. 특히 문사철(문학·사학·철학) 전공자들은 수시채용에선 지원서를 낼 곳을 찾기조차 어렵다고 하소연한다. 로스쿨과 공기업 준비에 ‘올인’하는 취준생이 늘어나는 이유다.
“바늘구멍이지만…뚫을 수 있다”
수시채용으로 전환한 기업들은 과거 스펙 위주의 채용에서 ‘직무적합성’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패러다임이 변했다고 강조한다. 몇 년 전까지만 하더라도 직무적합성은 학벌이나 학점, 토익에 덧붙이는 ‘플러스알파’ 정도로 여겨졌다. 하지만 수시채용이 도입되면서 직무적합성은 채용의 핵심 기준이 됐다. 한 대기업 인사담당자는 “학점 4.0에 토익 900점의 ‘모범생형’ 인재보다는 기업이 원하는 분야에 정통한 ‘신(新)오타쿠형’ 인재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직무적합성은 뭘까. 2019년 10대그룹 중 가장 먼저 수시채용을 도입한 현대자동차 이윤준 책임매니저는 “직무적합성이란 지원자가 수강했던 과목이나 프로젝트 경험 및 해당 직무에 대한 태도 등 다양한 부분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그는 “수시채용에선 중고신입이 유리하다는 건 잘못된 오해”라며 “단순히 짧은 경력만으로 직무적합성을 온전히 평가하는 것은 아니다”고 덧붙였다.

최준희 LG전자 인재확보팀장은 “지원한 직무에 얼마나 관심이 있고, 어떤 준비를 해왔는지를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강력하게 보여줘야 한다”고 말했다. SK 관계자도 “다양한 기업에서 운영하는 인턴십이나 체험형 프로그램을 적극적으로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채용 과정에서 직무능력 보여줘야”
각 대학 취업지원팀은 ‘올 것이 왔다’는 반응을 보이고 있다. 김용석 서강대 취업지원팀장은 “중고신입과의 경쟁에서 이기기 위해선 저학년 때부터 인턴십이나 대외활동을 수시로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인용 동아대 취업지원팀장도 “학점과 영어점수는 3학년 전까지 반드시 준비를 마치고, 직무 관련 경험을 쌓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밝혔다.

다만 저학년 때 인턴십 등 직무 관련 경험을 미리 쌓지 못한 취준생들이라도 좌절할 필요는 없다고 했다. 배상훈 성균관대 학생인재개발원장은 “자기소개서와 면접에서 충분히 직무 역량이 있다는 점을 내세울 수 있다”며 “학교에서 제공하는 면접 관련 노하우가 담긴 프로그램을 적극 활용하라”고 조언했다.

해당 기업에 재직 중인 선배들과의 네트워크를 쌓는 것도 적극 추천했다. 이른바 ‘선배 찬스’다. 한 대학 취업팀 관계자는 “해당 회사에 대해 가장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재직자”라며 “학회나 동아리에서 취직에 성공한 선배들의 노하우를 듣거나 모의 면접을 경험해 보면 좋다”고 말했다.

강경민/공태윤/최다은 기자 kkm1026@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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