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버드대 교수 "위안부, 일본군 성노예 아니었다" 논문 발표 [정영효의 인사이드 재팬]

입력 2021-02-01 08:36   수정 2021-02-01 10:10

미국 하버드대 로스쿨 교수가 우리나라의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을 포함해 일본의 종군위안부는 성매매를 강제당한 성노예가 아니었다는 논문을 발표했다.

존 마크 램자이어 하버드대 교수(사진)는 3월 간행될 예정인 '인터내셔널 리뷰 오브 로 앤드 이코노믹스(International Review of Law and Economics)' 제65권에 '태평양전쟁 당시 성(性) 계약(Contracting for sex in the Pacific War)'이라는 제목의 논문을 게재했다.

종군 위안부는 당시 일본 정부의 허가제로 운영되던 매춘업의 연장선상이며 매춘업소와 매춘부는 각자 주어진 조건에서 자기의 이익을 추구하는 게임이론에 충실했다는 게 논문의 핵심이다.

그는 다른 연구자의 연구결과와 당시 일본 및 조선의 사료에 기초해 일본인과 조선인 위안부 모두 일본군에 납치돼 매춘을 강제당한 성노예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조선의 위안부 피해자 문제 역시 당시 조선에 흔했던 노동자모집업자의 기만 때문에 벌어진 일이라는 주장이다.

산케이신문이 램자이어 교수의 동의를 얻어 논문 요약본을 소개했다.

일본이 제2차 세계대전 중 전장 근처에 위안소를 설치한 것은 동아시아를 침략한 일본군 사이에서 현지 성병이 만연했기 때문이다. 일본군은 정기적으로 검진을 받는 매춘부로 구성된 반(半)공식 매춘업소를 설치하는 대신 병사들이 다른 매춘업소를 이용하는 것을 금지했다. 위안부는 주로 일본과 조선에서 모집됐다.

램자이어 교수는 "위안소는 당시 일본과 조선에 있었던 공인 매춘업소의 해외 군대 버전"이라고 진단했다.

당시 일본에서 매춘업은 합법이었다. 1924년 5만1000명의 공인 매춘부가 1만1500개 공인 매춘업소에서 일했다. 매춘업을 하려는 여성이 많아 1920~1927년 도쿄에서 희망자의 62%만 공인 매춘부가 됐다는 통계도 있다. 그 결과 정부의 인가를 받지 않은 비합법 매춘부가 공인 매춘부 만큼 많았을 것으로 램자이어 교수는 추정했다.

매춘업소와 공인 매춘부는 계약관계였다. 거액의 가불금을 본인이나 부모에게 지급하는 대신 전액 상환하거나 계약기간까지 일해야 했다. 1920년대 중반 가불금은 1000엔~1200엔으로 무이자였다. 계약기간은 일반적으로 6년이었지만 3년여 만에 가불금을 모두 갚는 경우가 일반적이었다. 숙식은 매춘업자가 무료로 제공했다.

화대의 3분의 2에서 4분의 3은 매춘업자가 갖고 나머지를 매춘부가 받았다. 매춘부 몫의 60%는 가불금 상환으로 공제되고, 나머지 40%가 본인에게 전해졌다.

1925년 도쿄 매춘부의 연간 평균급여는 가불금 상환 금액 393엔, 본인 수령액 262엔을 합쳐 655엔이었다. 1926년 여성 직공의 연간 평균임금(312엔)의 두 배가 넘는다.

램자이어 교수는 당시 일본의 매춘계약 역시 게임이론의 예외가 아니라고 봤다. 여성에게는 위험하고 가혹한 일인데다 단기간 일하더라도 평판에 손실을 입는데 대한 보상이 주어졌다. 매춘업자는 거액의 가불금, 계약기간 설정 등 매춘부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방식의 계약을 맺는 등 양자의 이해관계가 일치했다는게 이 교수의 주장이다.

당시에도 매춘을 금지해야 한다는 움직임이 있었다. 하지만 매춘금지론자의 비난도 주로 딸을 매춘업소에 팔아넘기는 부모에게 향했다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일제강점기 조선에서도 일본과 같은 시스템이 도입됐다. 조선에서는 상대적으로 비공인 매춘부가 많아 위안소가 생기기 전부터 조선인 여성이 해외에서 매춘부로 일했다고 램자이어 교수는 설명했다.

해외의 전장에 위안소를 설치할 때 일본 정부도 정치적 리스크를 인식했다. 일본 내에서 수십년째 매춘금지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었기 때문에 순박한 젊은 여성이 악덕업자에 속아 성매매를 강제당하는 일을 피하려 했다고 이 교수는 분석했다.

이 때문에 내무성은 위안부를 모집할 때 이미 매춘부로 일하던 여성만 고용하도록 했다. 소관 경찰에는 여성이 자신의 의지로 응모했는지 본인에게 직접 확인하고 계약이 끝나면 즉시 귀국하도록 전달할 것을 지시했다.



다만 조선에는 일본과 다른 문제가 있었다. 전문 노동자모집업자가 난립해 사기행각을 벌이는 것이었다. 위안부 피해자 뿐 아니라 징용공 피해자도 노동자모집업자로부터 피해를 당했다고 램자이어 교수는 설명했다. 당시 신문에도 여성을 속여 해외의 매춘업소에 보내는 성산업에 관한 문제가 보도됐다.

이러한 사실을 토대로 이 교수는 일본 정부와 조선총독부가 여성에 매춘을 강제한 것도, 일본군이 부정한 모집업자에 협력한 것도 사실이 아니라고 주장했다. 수십년째 여성을 속여 매춘업소에 일하도록 한 조선 내 모집업자가 문제라는게 그의 시각이다.

위안부는 본국에서 멀리 떨어진 전장에서 일하는 위험을 반영해 계약기간은 짧고 보수는 더 높았다고 램자이어 교수는 설명했다.

전쟁 말기 위안부 모집이 더욱 성행했다는 일부 연구자의 연구결과도 사실이 아니라고 그는 주장했다. 전황 악화로 남성들이 징병되면서 매춘부를 포함한 여성이 남성 대신 대거 군수동장에 동원됐다는 것이다.

조선의 모집업자들이 문제라는 램자이어 교수의 주장은 우리나라 위안부 피해자 할머니들이 공장에서 일하게 해준다는 말에 속았다는 증언과 일치한다. 다만 모집업자에게 책임을 전가한 그의 주장은 '일본 정부와 일본군은 위안부 문제의 책임이 없다'는 식으로 악용될 우려가 있어 보인다.

램자이어 교수는 사회법학 전문가인 동시에 지일파 학자로 통한다. 1954년 미국 시카고에서 태어나자마자 일본 미야자키현으로 이주해 18세까지 살았다. 일본어에 능통해 일본 학자와 공동저작도 다수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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