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하준 "세계경제질서, 구조적 재편 진행중…일시적 상황 아냐"

입력 2026-04-20 02:05  

장하준 "세계경제질서, 구조적 재편 진행중…일시적 상황 아냐"
아르헨매체 인터뷰…트럼프 관세와 미중전략경쟁, '구조적 재편과정' 규정
"아르헨티나는 '원자재 함정' 벗어나야"



(부에노스아이레스=연합뉴스) 김선정 통신원 = 한국 출신 경제학자 장하준 런던대 교수는 미국의 보호무역 강화와 미중 전략 경쟁이 맞물리며 세계 경제 질서가 단순한 경기 변동이 아닌 구조적 전환 국면에 진입했다고 진단했다.
그는 자유무역의 한계를 지적해온 대표적 학자로, 저서 '사다리 걷어차기'와 '그들이 말하지 않은 23가지' 등을 통해 국가 주도의 산업정책 필요성을 강조해왔다.
장 교수는 18일(현지시간) 보도된 아르헨티나 매체 페르필과의 인터뷰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관세 정책을 계기로 촉발된 긴장에 대해 "우리는 매우, 매우 중요한 구조 재편 과정을 겪고 있다"며 이를 일시적 충격이 아닌 장기적 변화로 규정했다.
이어 미국이 중국의 부상에 위협을 느끼고 있음에도 대응이 늦고 정책 추진 방식이 혼란스럽다는 점을 지적하며, 동맹과의 조율 부족이 국제 질서의 불확실성을 키우고 있다고 분석했다.
그는 미중 경쟁의 본질을 산업 구조 변화에서 찾았다. 과거 미국이 생산기지를 해외로 이전하고 중국산 저가 제품을 수입하며 이익을 얻었던 단계에서 벗어나, 이제는 중국이 조선·반도체·재생에너지·전기차 등 핵심 산업에서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태양광 패널과 풍력 터빈, 전기차 분야에서는 중국이 이미 선도적 위치를 점하고 있으며 인공지능 분야에서도 빠르게 추격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이러한 변화는 글로벌 교역 구조에도 직접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다. 장 교수는 "15년 전만 해도 아르헨티나의 최대 교역 상대는 미국이었지만 지금은 중국"이라며 "대부분의 개발도상국에서 중국은 1위 또는 2위 교역 상대국"이라고 설명했다.
그는 미국이 세계 생산의 약 25%를 차지하면서도 국제 무역 비중은 11% 수준에 머무르는 비교적 폐쇄적인 경제 구조를 갖고 있다는 점도 짚었다. 이어 일부 국가들이 미국 중심 질서에서 벗어난 새로운 경제 네트워크를 모색하고 있으며, 실제로 그러한 전환 가능성도 점차 현실적인 선택지로 부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장 교수는 자신의 대표 개념인 '사다리 걷어차기'를 다시 언급하며 현재 상황을 역사적 맥락 속에서 해석했다.
그는 "영국은 산업 강국이 된 이후에야 자유무역을 설파했고, 그 이전에는 강력한 보호주의 정책을 사용했다"며 "미국 역시 약 100년 동안 세계에서 가장 보호주의적인 국가였다"고 설명했다. 이어 현재 미국의 정책은 과거와 달리 자국 중심의 새로운 규칙을 요구하는 방향으로 변형된 보호주의라는 점을 지적했다.
미중 갈등이 촉발한 공급망 재편 논의에 대해서는 현실적 제약도 강조했다.
장 교수는 희토류 가공 분야에서 중국이 70~90%를 장악하고 있다는 점을 지적하며 "이러한 산업 구조는 수십 년에 걸쳐 형성된 것으로 단기간에 바꾸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분석했다. 또한 "트럼프식 보호주의는 모든 산업을 대상으로 하기 때문에 비효율적이며, 성공적인 산업정책은 선택적이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유럽에 대해서는 보다 강한 우려를 표했다. 그는 유럽이 기술력과 인재를 갖추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공동 산업 전략 부재로 경쟁력을 잃을 위험이 있다고 진단했다. 과거 항공기 제조사 에어버스와 같은 협력 모델이 필요하지만, 현재는 각국이 개별적으로 움직이며 전략적 통합이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장 교수는 아르헨티나와 중남미에 대해서는 기회와 위험이 동시에 존재한다고 평가했다.
미중 경쟁으로 일부 산업 이전 가능성이 생기고 있지만, 이를 활용하기 위한 산업 기반과 정책 역량이 부족할 경우 단순한 원자재 공급국에 머무를 수밖에 없다는 지적이다.
특히 아르헨티나 경제에 대해서는 구조적 문제를 직설적으로 지적했다. 장 교수는 "아르헨티나는 뛰어난 인재를 보유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두와 소고기 수출에 만족하고 있다"고 평가하며 산업 다각화 의지 부족을 문제로 꼽았다.



그는 반복적인 아르헨티나 외환위기의 원인으로 만성적인 환율 과대평가를 지목하며, 이는 수출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외채 의존도를 높이는 악순환을 초래한다고 설명했다.
자유무역협정(FTA)에 대해서도 신중한 접근을 주문했다. 미국과의 FTA는 단순한 관세 철폐를 넘어 투자 보호와 규제 체계까지 포함하는 만큼, 제조업 기반이 약한 국가에는 산업 재건을 더욱 어렵게 만들 수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에너지 자원 활용 전략과 관련해서는 아르헨티나의 셰일 자원 '바카 무에르타'(세계적인 규모의 셰일 가스 및 셰일 오일 매장지)를 언급하며, 화석연료 수출 자체는 단기적으로 필요하지만, 장기적으로는 산업화와 재생에너지 투자로 연결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렇지 않을 경우 원자재 의존 경제에서 벗어나지 못할 것이라는 진단이다.
장 교수는 하비에르 밀레이 정부의 국가 개입 축소 정책에 대해서는 비판적인 시각을 보였다.
그는 "강한 시장경제는 강한 국가 없이는 작동할 수 없다"며 인프라, 교육, 기술 투자 등 핵심 영역에서 국가 역할의 중요성을 강조했다. 역사적으로 국가 기능을 약화시켜 경제 발전에 성공한 사례는 없다는 점도 분명히 했다.
마지막으로 경제 이론에 대한 태도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장 교수는 오스트리아학파와 마르크스주의 모두 학문적으로 의미 있는 전통이지만, 현실에서는 지지자들이 종종 극단적인 해석으로 흐르는 경향이 있다고 평가했다. 이어 다양한 이론과 정책 경험을 종합하는 실용적 접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는 정책 판단의 기준과 관련해 덩샤오핑의 표현을 인용하며 "중요한 것은 고양이의 색이 아니라 쥐를 잡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는 이념보다 실제 성과와 실용성이 정책의 핵심 기준이 되어야 한다는 점을 시사한다.
sunniek8@yna.co.kr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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