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용진과 이해진 회동, 판 커지는 '데이터 동맹'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1-02-04 07:00   수정 2021-02-04 07:11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꽤 유명한 ‘얼리어답터’다. 디지털 기기에 관한 한 누구보다 빨리 섭렵해야만 직성이 풀린다고 말할 정도다. 요즘에도 그는 SSG닷컴을 테스트하는 차원에서 이것저것 구매를 하곤 하는데, 그 중엔 수백만원을 호가하는 최신 디지털 기기들도 꽤 많다고 한다.

동시에 정 부회장은 ‘28년차 이마트 직원’이기도 하다. 그는 처음부터 ‘CEO의 시각’에서 유통업을 공부하고, 실전에서 온갖 경험을 쌓아왔다. 정 부회장의 개인적 성향과 그만이 가질 수 있던 경영 이력은 그 동안 막강한 시너지 효과를 발휘해왔다. 그는 유통업계의 ‘트렌드세터(trend setter)’로서 사실상 국내 1위 유통기업을 일궜다.

얼리어답터이자 유통업계 ‘구루’라는 정 부회장의 장점은 역설적이게도 4,5년 전서부터 본격화된 글로벌 리테일(유통을 포함한 소비 전반) 산업의 격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한 장애물이 되고 말았다. 그의 발빠른 ‘디지털 습득’은 유통 외의 영역에 국한된 경향이 있었다. 유통 분야에선 여전히 ‘이마트가 최고’라는 인식에서 벗어나지 못했다. 그를 둘러싼 임직원 다수가 오프라인 매장을 중심으로 이해관계가 얽혀 있다는 점도 그의 감(感)과 눈을 가렸을 것이다.

정 부회장과 대화를 나눠본 이들을 통해서 추정할 수 있는 최근 그의 고민은 두 가지로 압축할 수 있다. 네이버, 카카오 등 IT 플랫폼의 위력을 과소평가했다는 것, 그리고 이마트의 미래 가치는 무엇으로 평가받을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다. 두 번째 질문은 쿠팡이 글로벌 투자자들로부터 30조원에 달하는 가치 평가를 받고 있는데 비해 신세계(이마트+신세계백화점)의 시가총액은 약 7조원 규모에 불과하다는 것과도 연관돼 있다.

정 부회장의 고민을 장황하게 추정한 것은 지난달 28일 정 부회장이 강희석 이마트 대표를 대동한 채 네이버 사옥을 찾아간 이유를 설명하기 위해서다. 판교에서 정 부회장은 이해진 창업자 및 한성숙 네이버쇼핑 대표와 회동했다.

사실 이 날의 회동에 관해선 다소 과장된 측면이 있다. 네이버와 이마트의 지분 교환 등 무언가 결론을 내기 위한 자리로 확대해석됐다. 네이버와 신세계 모두 서로를 겨냥해 “저쪽에서 얘기를 흘렸다”고 말하고 있는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상황을 종합해보면, 정용진과 이해진의 회동은 실무를 책임지고 있는 강희석, 한성숙 대표를 위한 ‘상견례’ 자리였다. 정 부회장과 이 창업자는 자주 만나는 사이다. 정 부회장의 집이 판교여서 교류가 잦은 편이라고 한다. 둘은 평소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다 이런 생각이 들었을 것이다. ‘협력할 분야가 분명 있겠구나. 대표들끼리 만나게 해서 무엇을 협력할 지를 구체화해봐야겠다’고 말이다.



이쯤에서 이해를 좀 더 쉽게 하려면, 이해진 창업자의 시점으로 돌아가야 한다. 네이버는 다소 극단적으로 표현하자면,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는 기업이다. 정보 검색 플랫폼으로서 네이버가 갖고 있던 독과점적인 지위가 흔들리고 있다는 점에서다.

이와 관련해선 오픈서베이가 지난해 내놓은 ‘소셜미디어와 검색포털에 관한 리포트’가 참조할 만하다. 보고서에 따르면 네이버는 다른 검색 포털과 SNS, 유튜브를 통틀어 정보탐색을 위한 이용 사이트 분야에서 1위를 유지하고 있다. 네이버를 주로 이용한다는 응답자 비중이 2020년 70.4%에 달했다. 하지만 1년 전 대비 이용량 변화에 관한 질문에선 유튜브가 1위를 차지했다. ‘매우 늘어났다’와 ‘늘어났다’를 합친 응답자 비중이 67%로 네이버를 포함한 포털 사이트(46.4%)를 앞질렀다.

네이버가 쇼핑 영역을 강화하기 시작한 것은 이런 위기 의식의 발로다. 네이버를 오랫동안 연구해 온 한 대학교수는 “스마트스토어를 비롯해 네이버의 쇼핑 콘텐츠 개발은 이해진 창업자가 0.1초 단위로 클릭 속도를 계산할 정도로 아주 공을 들였다”고 말했다. 지식 정보 뿐만 아니라 쇼핑을 통해서 이용자들을 ‘네이버 왕국’으로 끌어들일 수 있느냐, 없느냐는 네이버의 생존과도 직결된 사안이었다는 얘기다.

가정해볼 수 있는 두 기업의 연합 시나리오는 여러 가지다. K콘텐츠 전성시대를 활용해 해외 시장에 공동 진출하는 전략을 상상해볼 수 있다. 네이버는 빅히트와 제휴하며 글로벌 팬덤 플랫폼 구축에 상당한 공을 들이고 있다. 해외 시장에서 이렇다할 성과를 못 거두며 내수 기업이란 한계에 직면해 있는 이마트로서도 네이버와의 협력은 얻을 게 많다.

국내에서 유력한 연합 지점은 ‘데이터 동맹’이다. 네이버에서 신세계상품권을 사용할 수 있도록 한다거나, 네이버포인트를 신세계 계열사에서 활용할 수 있도록 함으로써 온·오프라인 데이터를 공유할 수 있다는 것이다.

데이터를 얻기 위한 네이버의 탐식은 잘 알려져 있다. 네이버는 일상 전 영역의 데이터를 결합하는데 혈안이 돼 있다. 네이버가 CJ그룹과 지분 교환 방식으로 피를 섞은 것도 이런 이유에서다. CJ ENM을 통해 콘텐츠 역량을 강화하려는 포석과 함께, CJ대한통운이 갖고 있는 물류 데이타를 쇼핑과 결합하려는 게 네이버의 목적이다. 최근엔 현대카드와 데이터 동맹 관계를 맺었다. 이런 측면에서 네이버는 오프라인 공간에서 나타나는 소비자 행태에 늘 관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

거꾸로 이마트에 네이버가 갖고 있는 온라인 데이터는 스스로 축적하기 어려운 ‘노다지’다. 어쩌면, 이마트와 네이버의 연합 시나리오는 ‘디지털에 대한 정용진의 자각’과 ‘쇼핑에 대한 이해진의 절박함’이 어느 정도 구체성을 띠고 결합될 것이냐에 진전 속도가 달려 있다고 봐야할 것이다. 다만, 한 가지 분명한 것은 국내 리테일 산업 강자들 간의 전선(戰線)이 분명해졌다는 점이다. 삼국지에 비유하자면 손권과 유비가 연합해 조조에 대항하는 형국이다. 현 시점에서 조조역(役)은 물론, 쿠팡이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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