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마을] 피카소 '입체주의' 작품엔 기하학이 숨쉰다

입력 2021-02-04 17:58   수정 2021-02-05 03:09


“적벽대전이 일어나기 전날 밤, 제갈량이 풀단을 실은 배 20척을 조조의 진영에 침투시켰다. 조조는 이 배들을 적군으로 착각하고 군사들로 하여금 화살을 쏘게 한다. 제갈량은 이 방법으로 화살 10만 개를 얻었다. 나관중이 쓴 삼국지연의에 실린 이 이야기가 과연 실제로도 맞을까?”

차이톈신 중국 저장대 수학과 교수는 《세계사가 재미있어지는 20가지 수학 이야기》에서 이렇게 묻는다. 삼국지연의를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든 이 ‘초선차전(草船借箭)’의 장면을 좋아한다. 하지만 이 책에선 수학적으로 따져 보면 이는 이치에 맞지 않는다고 지적한다. 화살이 배에 명중할 확률은 10%도 안 된다. 조조 군으로부터 화살을 많이 가져가려면 중간에 다른 쪽 병사들이 활을 쏠 수 있도록 배를 180도 돌리는 작업을 반복해야 한다. 당시 조조 군의 궁수는 1만 명 정도였으니 1명이 100발 넘게 쏴야 한다는 계산이 나온다. 화살통 하나에 들어가는 화살은 20~30개이고, 결국 궁수 1명이 100발을 쏘는 건 불가능하다. 저자는 “한마디로 제갈량의 초선차전 이야기는 허구에 가깝다”고 말한다.

저자는 수학과 세계사를 씨줄과 날줄처럼 엮어 풀어낸다. 정치, 군사, 예술, 철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수학 지식이 폭넓게 쓰였고 이는 세계에서 공통적으로 보이는 특징이라고 짚는다. 저자는 “인류의 발명품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은 수학과 시가(詩歌)”라고 정의한다. “수학은 양치기가 양이 몇 마리인지 세는 데서 시작됐고, 시가는 풍성한 수확을 비는 기도에서 비롯됐다”며 “수학과 시가는 인류의 생존과 밀접하게 연관된 것”이라고 설명한다.

수학이 미술에 끼친 지대한 영향에 대해서도 소개한다. 가장 대표적인 예가 추상화가 파블로 피카소다. 피카소의 예술적 영감은 4차원 기하학에서 비롯됐다. 피카소의 친구 중 수학을 사랑한 공인회계사가 있었다. 피카소는 그에게서 4차원 기하학 얘기를 듣고 상상의 나래를 펼쳤다. ‘회화는 3차원 공간의 물체를 2차원 평면에 표현하는 것이다. 만약 4차원 공간의 물체를 2차원 공간에 표현하면 어떻게 될까?’ 이런 생각에서 ‘아비뇽의 아가씨들’ 같은 최초의 입체주의 작품이 나왔다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르네상스시대 독일 화가 알브레히트 뒤러는 그의 저서 《컴퍼스와 자를 이용한 측정법》에서 기하학과 원근법을 언급했다. 뒤러는 자신이 관찰한 대상과 복잡한 구상을 선으로 세밀하게 표현했다. 그는 당대의 뛰어난 화가이자 수학자였다.

0(zero)의 개념을 탄생시킨 인도 수학에 대해서도 설명한다. 저자에 따르면 인도 수학은 일종의 종교적 의식이었다. 0은 무(無)를 의미하기도 하고 자리 표기법에서 빈자리를 나타내기도 한다. 또 수의 기본 단위로서 다른 수와 함께 계산할 수도 있다.

한 나라의 통치자들이 수학자들을 얼마나 존중했는지 보여주는 각종 에피소드도 등장한다. 프랑스 황제 나폴레옹은 수학자들을 총애했다. 조제프 루이 라그랑주, 피에르 시몽 드 라플라스 등이었다. 그는 수학자들에게 지혜를 빌리며 군사 운용법과 경제 정책을 짰다. ‘기하학 원론’을 통해 고대 그리스 기하학 이론을 집대성한 유클리드 역시 제왕들의 스승 역할을 했다. 이집트 국왕 프톨레마이오스 1세가 유클리드에게 기하학을 배우는 지름길을 물었을 때 그의 대답은 한마디였다. “기하학에는 왕도가 없습니다.”

저자는 “이 책의 목적은 더 많은 사람이 수학을 이해하고 좋아하도록 돕는 것”이라고 말한다. 일반 독자에게 익숙한 각종 역사 이야기를 수학과 접목해 수학에 대한 심리적 장벽을 낮추기 위한 노력이 엿보인다.

이미아 기자 mi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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