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수첩] 성년후견인 분쟁, 남의 일 아니다

입력 2021-02-08 17:48   수정 2021-02-09 00:17

고(故) 신격호 롯데그룹 명예회장과 조양래 한국테크놀로지그룹 회장, 최근 세간의 이목을 끈 원로 여배우 윤정희 씨까지. 이들을 한데 묶을 수 있는 단어가 ‘성년후견인 제도’다.

2013년 처음 도입된 성년후견인 제도는 말 그대로 성년인 자에게 그의 재산을 관리할 후견인을 지정해주는 것을 뜻한다. 피상속인(재산을 물려줄 사람)에게 정신질환이 발생해 재산 다툼이 이뤄질 때, 주로 재벌가 혹은 자산가 사이에서 등장하는 단어였다.

그렇다고 성년후견인이 ‘그들만의 세상’에 한정된 얘기는 아니다. 평균수명이 급속도로 늘어나고 뇌출혈, 치매 등의 질병이 언제 누구에게 찾아올지 모르는 현대사회에서 이 제도는 점차 일반인에게 친숙해지고 있다.

사전에 상속을 대비해놓지 않은 피상속인이 갑자기 쓰러지기라도 하면 재산 액수와 상관없이 그 누구든 성년후견을 생각하게 된다. 대법원에 접수된 성년후견 신청 건수는 2014년 2006건에서 2019년 6984건으로 5년간 세 배 이상 급증했다.

성년후견인 제도는 과정상 가족 간 분쟁이 잦다. 윤씨도 알츠하이머성 치매를 앓으면서 그 가족이 성년후견인 선임 문제를 놓고 다투게 됐다. 이런 갈등을 막을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사전’에, 즉 피상속인에게 정신질환이 발생하기 전 미리 정리하는 것이다. 법조계에선 “내가 정신을 잃는다면 누가 후견인이 돼 이런 권한을 행사하게 하라”고 미리 계약을 체결하는 방법을 조언한다. 이를 ‘임의후견’이라고 부른다.

사는 게 바빠 사전에 정리하지 못했다면 피후견인(후견을 받는 사람)에게 문제가 발생한 뒤 사후처방에 들어가야 한다. 성년후견 중에선 ‘법정후견’이라 부르는데, 고 신격호 회장과 조양래 회장이 밟고 있는 절차가 바로 이것이다.

후견 절차가 공식적으로 개시되려면 피후견인에게 정신적인 제약이 있다는 게 증명돼야 한다. 주로 신청한 쪽이 의사 소견서 등을 제출한다. 법원은 피후견인 본인과 가족 등의 의사를 함께 확인하는데, 이때 한쪽이 ‘우리 부모는 얼마든지 혼자 재산을 관리할 수 있다’며 다툰다.

후견인을 누구로 할지를 놓고서도 갈등이 깊어진다. 윤씨의 경우 파리고등법원이 남편 백씨의 손을 들어줬다. 한국 법원은 가족 간 합의가 이뤄지지 않으면 노골적으로 한쪽 편을 들어주기보다는 변호사나 법무사 등 전문가 후견인을 정해준다. 그 외 후견인을 다시 감독하는 문제도 분쟁의 빌미가 된다.

여러 분쟁 가능성에도 불구하고 성년후견인 제도는 더 확산될 가능성이 높다. 재산을 가진 사람과 이를 나눠 갖고자 하는 사람은 많아지고 고령화도 빠르게 진행되기 때문이다. 은막의 여배우 사례가 남의 일만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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