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천만원 '웃돈'까지…혼돈의 폐지시장 "종이대란 오나"

입력 2021-02-21 14:51   수정 2021-02-22 09:35


“100t 기준으로 웃돈 1000만원, ㎏당 20원 더 줄게요.”

지방 대형 폐지 압축장을 하는 이 모 대표는 요즘 계산기를 끼고 산다. 납품가에서 구매가를 빼면 얼마가 남는지 확인해야 해서다. 그만큼 폐지 가격이 변화무쌍해져서다. 그는 “웃돈을 주고 ㎏당 가격도 올리는 것으로 확답을 받았는데 가격을 좀 더 준다는 다른 곳에 폐지를 빼앗겼다”고 푸념했다. 그는 “폐지 공급이 갈수록 줄어들텐데 공장을 계속해야 할지 고민 중”이라고 했다.

폐지 재고가 사상 최저 수준으로 떨어지면서 수급난이 제지업계 전반으로 빠르게 확산되고 있다. 재고를 확보하기 위한 유통상 쟁탈전까지 벌어지면서 웃돈이 오가고 가격이 급등하는 등 시장이 혼탁해지고 있다는 지적이다.

폐지업계에 따르면 2월 현재 폐지 평균 재고는 약 3일로 사상 최저 수준이다. 평소 평균(7~8일)의 절반이 채 안 된다. 한 폐지 유통업체 대표는 “베이징올림픽(2008년) 당시 중국에서 폐지를 빨아들여 폐지 구하는 게 정말 힘들었던 때 재고가 4일이었는데 지금은 더 안 좋다”고 하소연했다. 평균은 3일이지만 가격 인상을 감당하기 힘든 영세한 업체들은 문 닫기 직전이라는 게 업계의 공통된 목소리다.

규제가 폐지 수급난을 심화시키는 주요 원인인 것으로 업계는 보고 있다. 환경부는 지난해 1분기 재고가 과잉이던 때 규제 입법에 착수한 이래 수입폐지 통관 전 전수조사(작년 3월), 폐지 수입신고제(7월), 종이제품 EPR 도입 근거 마련(9월), 혼합폐지 및 폐골판지 수입규제 포함(12월) 등 공급 축소에 초점을 둔 정책을 연이어 시행하거나 확정했다. 반면 폐지 재고는 작년 3월 약 11만 톤에서 6월 6만 톤 선으로 줄어들면서 수급 우려가 고개를 들었고 9월엔 4만 톤 선까지 더 떨어졌다.

업계 관계자는 “재고는 작년 1분기에만 과잉이었을 뿐, 수출이 늘어나고 코로나 영향에 상자 수요가 증가하면서 금새 제자리를 찾아갔다”고 돌아봤다. 이어 “여러 차례 수급난이 올 수 있다고 읍소했지만 환경부는 ‘폐지 과잉’ 프레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며 “10월 대양제지 화재는 불쏘시개였을 뿐”이라고 지적했다. 2분기부터 시장 원리에 따라 과잉이 해소되고 있었지만 정부가 과잉에 매몰돼 “수급난이 올 수 있다”는 업계에 귀를 기울이지 않았다는 얘기다. 2월 4000톤 정도였던 수출량은 3월 2만톤을 넘었고 6월엔 4만톤까지 불어났다.

쓰레기 대란 등을 막는다는 취지로 폐지 공급을 더 줄이는 정책이 추가로 예정된 게 더 큰 문제다. 당장 2분기부터 폐지 실수요자인 제지사는 폐지를 수입할 수 없다. 대신 폐기물처리업자만 폐지를 수입할 수 있는 법이 4월1일 시행된다. 제지업계 관계자는 “제지사가 아닌 폐기물처리업자만 폐지를 수입하게 하는 정책은 어느 나라에도 없다”고 반발했다.

내년 1월에는 분류되지 않은 혼합폐지의 수입을 제한하는 규제가 시행에 들어간다. 이런 규제들이 계속되면 폐지 부족에 따른 포장대란과 수출대란이 올 수도 있다는 게 업계의 하소연이다.

수요는 늘어나는데 수출은 가만히 둔 채 수입만 줄이는 정책이 수급난을 만성화·구조화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김형진 국민대학교 임산생명공학과 교수는 “종이는 계속 재활용해야 하는데 수입만 줄이면 재활용 가능 물량이 줄어 수급난이 심화하고 폐지의 질도 떨어질 것”이라고 우려했다. 이어 “폐지는 자원일 수도, 폐기물일 수도 있는데 그 기준을 정부 혼자가 아니라 업계와 머리를 맞대고 신중히 결정해야 한다”고 당부했다.

김병근 기자 bk11@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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