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리뷰] 화려한 기교·차분한 전개…러시아 피아니즘 정수 선보여

입력 2021-02-22 17:13   수정 2021-02-23 00:57

강렬하면서도 처연하고, 광기가 서린 가운데서도 부드럽다. 19세기 후반부터 이어져온 러시아 피아니즘의 특징이다. 연주자들은 뛰어난 기교를 갖췄지만 절제한다. 야코프 자크의 적통을 제자인 엘리소 비르살라제가 이어받았고, 그의 제자 예브게니 키신과 보리스 베레조프스키가 계보를 이어가는 중이다. 한국인 연주자로는 박종화, 김태형, 윤아인이 비르살라제를 스승으로 모셨다.

피아니스트 윤아인(24)이 비르살라제에게 배운 러시아 피아니즘을 온전히 구현했다. 지난 21일 서울 롯데콘서트홀에서 열린 독주회(사진)에서다. 그는 1부에서 모차르트의 ‘피아노 소나타 11번’(터키행진곡)을 시작으로 쇼팽의 왈츠 9번과 10번, 프란츠 리스트의 ‘위안’ 2번과 3번, 클로드 드뷔시의 ‘기쁨의 섬’을 들려줬다.

그의 왼손은 부드럽게, 오른손은 강렬하게 건반을 짚었다. 완숙한 강약 조절을 통해 선율을 또렷하게 객석에 전달했다. 잡음은 한 치도 섞이지 않았다. 허명현 음악평론가는 “윤아인은 악보에 담긴 서사를 적절하게 전개해 나갔고, 음악적으로 성부를 명확하게 이해하고 있었다”며 “연주에 몰입하게 해주는 모든 요소를 갖춘 셈”이라고 호평했다.

공연을 절정으로 이끈 곡은 라흐마니노프의 ‘6개의 악흥’. 국내에서 좀처럼 감상하기 어려운 작품이다. 양손이 다른 분위기에 맞춰 연주해야 돼서다. 왼손으로는 화음을 끊어 치는 아르페지오를, 오른손으론 강하게 주선율을 쳐야 한다.

윤아인의 연주에는 군더더기가 없었다. 기교는 화려했지만 곡 전개는 차분했다. 허 평론가는 “가식이나 허세를 찾기 어려웠다”며 “그가 준비한 음악적 기교는 선율에 집중됐다. 작곡가 의도에 정확히 방향을 맞춘 것”이라고 설명했다. 오만하거나 과장된 해석 없이, 욕심을 버리고 완숙하게 소화해낸 그의 솜씨는 비르살라제의 애제자다웠다.

윤아인은 여덟 살에 러시아로 건너가 열세 살이던 2011년 클래식 독집 음반을 냈다. 2014년 비르살라제가 그를 모스크바 국립음악원으로 데려갔다. 대학생만 제자로 받던 비르살라제가 불문율을 깬 것이다. 윤아인은 이듬해 불가리아 블라디게로프 콩쿠르에서 우승했다.

국내에선 SNS를 통해 이름을 알렸다. 지난해 3월 윤아인은 클래식 유튜브 채널 ‘또모’에 출연했다. 그가 피아니스트 드미트리 쉬시킨과 함께 나온 영상은 지금까지 조회 수가 약 1000만 회에 달한다. 이날 공연장에도 20대 관객이 많았다.

오현우 기자 ohw@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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