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영진 형사처벌 위험"…쿠팡 美신고서에 드러난 '韓 기업환경 민낯'

입력 2021-02-22 17:28   수정 2021-03-02 18:48


“한국 기업에 투자하는 데에는 특수한 위험(special risks)이 있습니다.”

미국 뉴욕증권거래소 상장을 결정한 쿠팡 증권신고서의 한 대목이다. 쿠팡은 이 신고서에 “긴급사태 발생 시 한국 정부의 규제가 있을 수 있다”며 “기업 경영진이 직접 또는 감독 책임에 따라 형사처벌을 받을 위험이 있다”고 적시했다. 한국의 법제를 잘 모르는 미국 투자자들에게 경영상 위험 요인을 사전에 경고한 것이다. 경제계에서는 한국 기업 환경의 ‘민낯’이 그대로 드러났다는 자조 섞인 평가가 나온다.
한국만의 ‘특수한 위험’ 언급
22일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에 제출한 증권신고서에 따르면 ‘한국에서의 기업 활동과 관련된 위험들’이 별도 항목으로 분류돼 명시돼 있다. 쿠팡은 이 항목에서 “기업 경영인들이 기업이나 소속 임직원의 (경영상 결정)행위로 수사를 받거나 형사처벌을 받게 될 위험이 있다”고 강조했다. 이어 “지식재산권 침해나 근로기준법,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고발, 제조물 관련 결함이 있으면 기업은 물론 경영진까지 기소되거나 수사를 받을 수 있다”며 “이런 위험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변한다”고 했다.

쿠팡은 “한국에서는 경영진 개인이 수사 대상이 되는 경우가 자주 발생한다”며 이 같은 처벌 가능성을 한국 내 특수한 경영 환경으로 꼽았다. 그러면서 “하지만 해당 경영진에게 책임이 없다고 인정되는 경우도 다수 발생한다”고 했다.


한국은 기업인에 대한 과도한 형사처벌 기준이 문제가 되고 있다. 한국경제연구원에 따르면 국내 285개 경제 법령 가운데 기업과 기업인에 대한 형사처벌 항목은 2657개(2019년 기준)에 이른다. 연장 근로, 성차별 등 최고경영자(CEO)가 현실적으로 통제하기 어려운 종업원의 불법 행위로 인한 처벌 조항도 상당하다.

최준선 성균관대 법학전문대학원 명예교수는 “한국에서는 기업인이 ‘교도소 담장 위를 걷는다’는 말이 생길 정도로 CEO 처벌법이 많다”며 “경제 범죄에 대해서는 과징금 처분이 대부분인 미국과는 다른 경영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중대재해법 부작용 상세히 언급
쿠팡은 여당인 더불어민주당이 대기업과 중소기업의 반대에도 밀어붙인 중대재해법(Serious Accidents Act)을 경영 위험 요인에 올리면서 상세히 언급했다. 중대재해법은 사업장 내에서 근로자가 한 명 이상 사망할 경우 경영 책임자를 1년 이상 징역에 처할 수 있도록 한 법이다. 중대재해 발생 원인은 다양한데 경영진에게만 책임을 돌리는 건 과하다는 지적이 있었지만, 여당은 법이 발의된 지 한 달 반 만에 강행 처리했다.

쿠팡은 “중대재해법이 지난 1월 8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다”며 “이 법에 따르면 사업장에서의 안전·보건 확보 또는 위험 방지 의무 위반으로 인명사고가 발생한 경우 회사나 경영책임자 등은 형사처벌을 포함한 강화된 책임을 부담하게 될 수 있다”고 했다. 이어 “중대재해법으로 인해 형사처벌, 처벌사실의 공표, 실제 손해의 5배 이내의 징벌적 손해배상책임을 포함한 금전책임 가능성이 있다”며 “책임주체도 기존 법보다 확대돼 안전·보건업무 감독자와 더불어 사업을 대표·총괄하는 권한·책임이 있는 자까지 책임을 질 수 있다”고 경고했다.
“규제 입법이 실적에 악영향” 경고
쿠팡은 온라인 유통업체를 규제하기 위한 온라인 플랫폼 중개거래의 공정화에 관한 법(온라인플랫폼법) 제정안, 전 분야의 징벌적 손해배상제 도입을 핵심으로 하는 상법 개정안 등 정부·여당이 추진하는 각종 규제도 ‘미래 위험 요인’으로 제시했다. 쿠팡은 “(새로운) 법률안들이 법제화되고 시행되면 쿠팡의 핵심 비즈니스 분야에 역량이 집중되지 못할 수 있다”며 “결국 이는 쿠팡의 사업이나 재정 상태, 실적에 대한 악영향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투자자들에게 경고했다.

재계 관계자는 “미국에서는 증권신고서상 경영 위험요인을 자세히 설명하지 않으면 향후 문제가 발생했을 때 투자자들로부터 소송 역풍을 맞을 수 있다”며 “역설적으로 쿠팡 상장이 한국 내 가혹한 기업 환경을 가감 없이 대외에 공개하는 계기가 돼버렸다”고 말했다.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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