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中도 섣부른 노동정책 자제하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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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2-22 17:54   수정 2021-02-23 00:52

[특파원 칼럼] 中도 섣부른 노동정책 자제하는데

“이젠 996이 아니라 715가 기본이다.”

중국에서 새해부터 장시간 근로 관행이 화두로 부상했다. ‘996’은 오전 9시부터 오후 9시까지, 1주일에 6일씩 일한다는 의미다. 2019년 마윈 알리바바 창업자가 “젊었을 때 996을 하지 않은 인생이 자랑스럽다고 할 수 있는가”라고 말하면서 널리 알려졌다. ‘715’는 이보다 더 나아가 하루에 15시간씩 1주일 내내 일한다는 뜻이다.

작년 말부터 중국에선 대형 정보기술(IT) 기업 직원들이 사망하는 사건이 잇따랐다. 전자상거래 업체 핀둬둬의 한 직원은 새벽 1시 넘어서 퇴근한 직후 쓰러졌다. 올초에는 이 회사 개발부문 직원이 자택에서 투신했다. 또 알리바바 계열 음식배달업체 어러머의 배달직원 두 명이 차례로 숨졌다. 모두 과로가 원인으로 지목됐다.
여전히 성장에 집중하는 중국
젊은이들의 연이은 사망은 기업에 대한 성토를 넘어 제도 개선을 요구하는 여론으로 확산하고 있다. 하지만 중국 정부의 대응은 미적지근하다. 해당 기업에 대한 근로감독을 철저히 하겠다는 정도다.

중국에서 장시간 근로가 논란이 된 것은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그때마다 중국 정부는 ‘996은 불법’이라는 원론적 입장을 내놓는 데 그쳤다. 체제 유지가 지상 과제인 중국 지도부는 여론을 민감하게 살핀다. 하지만 노동시장 제도 개선은 되도록 자제하고 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를 크게 두 가지로 분석한다. 하나는 중국 지도부가 여전히 성장에 방점을 두고 있다는 진단이다. 중국은 2019년에서야 1인당 국내총생산 1만달러를 돌파했다. 이제 겨우 중진국에 들어섰다는 얘기다.

더 직접적인 이유는 정부가 노동시장에 섣불리 개입했다가 나타날 수 있는 부작용을 경계하기 때문이라는 해석이 많다. 베이징에 있는 한 로펌의 노동전문 변호사는 “한 나라의 경제활동인구가 모두 참여하는 노동시장에선 사소한 제도 변화에도 수십만 개의 일자리가 사라질 수 있다”고 설명했다.

중국은 1994년 노동법을 제정하면서 주 40시간(주 5일) 근무제를 도입했다. 연장근로를 포함한 1주일 법정근로시간은 최대 66시간이다. 이 틀을 30년 가까이 유지하고 있다. 노동법 개정은 2008년과 2018년 단 두 차례 이뤄졌다.
노동시장 실험실로 만든 한국
장시간 근로가 성과를 높인다는 주장에는 동의하기 어렵다. 그러나 섣부른 제도 개선을 자제하는 중국 정부의 접근법에는 참고할 만한 부분이 있다.

한국도 예전엔 그랬다. 주 40시간(주 5일) 근로를 도입할 때를 보자. 1998년 노사정위원회에서 논의를 시작했고 2003년에 근로기준법을 개정했다. 2004년부터 기업 규모별로 적용해 2011년에야 마무리했다. 1주일 근로시간을 4시간 줄이는 데 도입에만 7년, 논의까지 합하면 13년이 걸렸다.

하지만 이후 충분한 완충장치 없이 내놓은 정책들은 어김없이 고용참사를 불러왔다. 박근혜 정부 시절인 2013년에는 노동계도 놀랄 정도로 전격적으로 정년 60세 연장법을 통과시켰다. 법 제정 당시 8%였던 청년실업률은 법 시행 시점인 2016년 10%대로 뛰었다.

문재인 정부는 노동시장을 실험실로 만들었다. 최저임금 1만원 공약은 취약계층 일자리만 날리고 3년 만에 엎어졌다. 1주일 법정근로시간을 16시간이나 줄이는 주 52시간 근로제에는 고작 3년의 유예기간을 뒀다. 최소 5년은 필요하다는 기업들의 호소는 철저히 묵살됐다.

이런 노동정책에 담긴 선의(善意)를 의심하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정책을 시행하기 전에 그 파급력을 고민하는지는 의심스럽다. 국민의 돈으로 국민 위로금을 준다는 발상을 하는 정부는 더욱 믿기 어렵다.

h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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