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 월가에 경고등이 켜졌다. 미 국채 금리가 가파르게 오르면서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여파로 지난해 8월 연 0.5%대 초반까지 떨어졌지만 올 1월 초 연 0.9%대로 오른 데 이어 22일(현지시간)에는 장중 연 1.39%까지 뛰었다. 월가에선 미 국채 금리 상승세가 당분간 더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확산하고 있다.
모하메드 엘 에리언 알리안츠 수석경제고문은 “시장 분위기가 바뀌었다”며 “시장의 관심은 금리가 더 오를 것이냐, 아니냐가 아니라 언제 과도하게 큰 움직임이 나오느냐다”고 말했다.
조 바이든 행정부와 집권 민주당의 ‘공격적 돈풀기’도 국채 금리 상승에 불을 지폈다. 미국은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지난해에만 총 다섯 차례 부양책을 통해 약 3조7000억달러를 쏟아부었다. 여기에 더해 다음달 14일까지 1조9000억달러 규모의 초대형 부양책 처리를 추진하고 있다. 민주당은 이를 위해 이날 하원 예산위원회에서 1조9000억달러 부양책을 통과시켰다. 재닛 옐런 재무장관은 이날 뉴욕타임스 주최 콘퍼런스에서 “더 많은 재정여력이 있다”며 과감한 부양책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1조9000억달러 부양책이 통과되면 미국이 코로나19 대응을 위해 투입한 재정은 총 5조6000억달러로 늘어난다. 지난해 미 연방정부 본예산(4조7900억달러)보다도 많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은 “더 많은 일자리를 만들기 위한 추가 법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1조9000억달러 부양책이 끝이 아니라는 것이다.
미 투자전략사 알파북의 마틴 멀론 수석경제학자는 블룸버그통신과의 인터뷰에서 “J·J쇼(재닛 옐런과 제롬 파월의 슈퍼 재정정책과 슈퍼 통화정책) 때문에 당분간 국채 금리 상승에 브레이크가 없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2%를 쉽게 넘어 올해 중반 연 3%를 웃돌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반면 뱅크오브아메리카는 투자 보고서에서 “10년 만기 국채 금리가 연 3%까지 오르는 건 Fed의 기준금리 인상 전까지는 힘들 것”이라고 내다봤다.
국채 금리 급등은 기업과 가계의 자금 조달 부담을 늘려 경기 회복에 타격을 줄 수 있다. 10년 만기 국채 금리는 미국에서 주택담보대출, 자동차담보대출, 학자금대출 등의 벤치마크 금리로 널리 쓰인다. 주식 대비 채권의 매력을 높여 증시와 신흥시장에서 자금 유출이 일어날 수도 있다.
일각에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의 양적완화와 현재의 상황은 사뭇 다르다는 지적도 나온다. 당시엔 풀린 유동성이 은행의 초과 지급 준비금으로 흡수돼 실제 시중에 흘러들어간 돈이 없었지만 현재는 코로나19 부양책을 통해 현금을 뿌리는 탓에 유동성이 넘쳐나면서 인플레 압력이 높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래리 서머스 전 미 재무장관은 “2008년 금융위기 당시의 경기부양책은 아웃풋 갭(output gap·잠재성장률과 실질성장률의 차이)의 절반 정도 수준이었으나 코로나 부양책은 그 당시의 6배 수준이라 감당하기 어려운 인플레이션이 나타날 수 있다”고 우려했다.
이와 관련, 시장에선 파월 의장의 ‘입’을 주목하고 있다. 그는 23, 24일 이틀간 상·하원 청문회에 출석한다. 파월 의장은 그동안 미국의 고용이 정상화되기 전까지는 성급하게 기준금리를 올리거나 양적 완화를 축소하지 않겠다는 견해를 밝혀왔다.
워싱턴=주용석 특파원 hohobo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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