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간) 살만 빈 압둘아지즈 사우디아라비아 국왕과 통화할 예정이라고 미국 정치 매체 악시오스가 보도했다. 통화 시점과 상대방 등을 두고 미국의 중동 정책에 변화가 일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바이든 대통령은 사우디 실권자로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과 친밀했던 무함마드 빈 살만 왕세자와는 통화하지 않기로 했다. 대신 로이드 오스틴 국방장관이 지난 18일 무함마드 왕세자와 통화했다. 빈 살만 왕세자는 사우디의 국방장관을 겸하고 있다.
사키 백악관 대변인은 "미국 대통령과 상대로서 이야기를 나눌 이는 살만 국왕"이라고 설명했다. 트럼프 전 대통령과는 달리 무함마드 왕세자를 미국 대통령과 '동급'인 협상 상대로 보지 않겠다는 의미다.
살만 국왕은 올해 나이가 85세로 수년 전부터 무함마드 왕세자에게 실권을 넘겨준 상태다. '비전 2030' 등 사우디 미래를 좌우하는 대규모 국가 프로젝트를 모두 살만 국왕이 아니라 무함마드 왕세자가 주도하고 있다. 무함마드 왕세자는 사우디 국부펀드(PIF) 이사회 의장도 맡고 있다.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 등 국제 행사에서도 사우디 대표로 참여해 세계 각국 정상들을 상대해왔다. 이를 잘 아는 바이든 대통령이 굳이 무함마드 왕세자와 직접 통화하지 않는 것은 사우디와의 관계를 조정하겠다는 외교적 신호라는게 주요 외신들의 평가다.
미국은 그간 카슈끄지 피살 사건에 대해 미온적인 태도를 보였다. 유엔 등 국제기구가 무함마드 왕세자에 대한 조사를 요구하자 트럼프 전 대통령은 언급을 회피했다.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부편집인은 작년 출간한 저서 '격노(Rage)'에서 트럼프 전 대통령이 "내가 그(빈 살만 왕세자)를 곤경에서 구했다. 미국 의회가 그를 공격하지 못하게 막았다"고 말했다고 썼다. 이런 분위기에 미국 정보기관들도 자체 보고서를 공개하지 않았다.
하지만 바이든 행정부 출범 이후 분위기가 바뀌었다. 지난달 취임한 에브릴 헤인스 DNI 국장은 미 상원 청문회에서 "정보공개법에 따를 것"이라며 카슈끄지 보고서를 공개하겠다고 공언했다. 이번 통화는 보고서 공개에 따라 미국과 사우디 간 관계 경색이 우려되는 만큼 갈등을 완화하기 위한 사전조치로도 풀이된다.
포린어페어스 등에 따르면 바이든 행정부는 중동에서 다자주의 기반 ‘균형잡기’에 나서고 있다. 확고하게 사우디 편만 들었던 과거와 달리 각국과 거리를 재조정한다는 설명이다. 미국은 이란과의 관계를 일부 회복해 이란의 핵 개발을 국제합의로 견제하려 한다. 2015 이란핵합의 복귀를 놓고 이란과 줄다리기를 하고 있다. 지난 18일엔 이란핵합의 복원을 위한 협상에 참여할 의사가 있음을 밝혔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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