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중국인" 쯔위 사과하게 만든 대만 국기가 中 대사관앞에?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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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2-27 13:00   수정 2021-03-29 00:02

"나는 중국인" 쯔위 사과하게 만든 대만 국기가 中 대사관앞에? [송영찬의 디플로마티크]


서울 명동 주한 중국대사관 앞 골목길을 걷다보면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는 고풍스러운 건물이 하나 나타납니다. 지금은 카페로 개조된 이 건물의 중앙 상단부에는 독특한 문양이 있습니다. 바로 대만 국기에 있는 ‘청천백일’ 문양입니다. 중국대사관 정문 바로 앞에 중국이 극도의 거부 반응을 보이는 대만 국기가 새겨진 건물이 떡하니 자리잡고 있는 것입니다.
○대사관까지 내어줘야 했던 옛 ‘자유중국’

이곳은 원래 ‘삼민주의대동맹’ 한국 지부로 쓰이던 건물입니다. 삼민주의는 중국과 대만 양국에서 국부(國父)로 추앙받는 쑨원이 제창한 민족·민권·민생을 뜻하는 정치 강령으로, 대만에서는 삼민주의가 헌법상의 국가강령일 정도로 절대적인 위상을 자랑합니다. 이 건물은 일제강점기 시절부터 중국 국민당의 지부로 쓰였습니다. 5·16 군사정변 이후 해외 정당의 국내 활동이 금지되며 소유주가 삼민주의대동맹이라는 반공 화교 단체의 핵심 건물로 사용됩니다.

중국대사관 정면에 반공, 정확히 말하면 ‘반(反)중공’ 건물이 있었다는 사실이 의아스럽지만, 당시에 맞은편에 위치했던 건물은 중화인민공화국(중국) 대사관이 아닌 중화민국(대만) 대사관이었고 이 건물도 중화민국 대사관의 별관 역할을 했습니다. 한국은 노태우 정부 당시인 1992년 북방외교의 일환으로 한·중 수교에 나섭니다. 이때 중국은 수교 조건을 내겁니다. 당시 한국의 최대 우방국 중 하나였던 중화민국(대만)과의 단교하고, 이 대사관을 자신들이 그대로 쓰게 해달라는 것이었습니다.

정부는 이 조건을 수용하고 대한민국의 첫 수교국이던 중화민국에 72시간 내로 국기와 현판을 내리고 철수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 1882년 청나라 군대의 주둔지에서 시작돼 일제강점기 시절 경성 주재 중화민국영사관을 거쳐 대한민국 최초 수교국이었던 중화민국의 대사관으로 이어졌던 이곳은 결국 고스란히 중화인민공화국에게 넘어갑니다. 마지막 주한 중화민국대사가 된 진수지 전 대사는 “오늘 우리가 대만 국기를 다시 내리지만 이 국기는 우리 마음 속에 건다”라고 말하고 떠났습니다.



중화민국과의 단교 당시 많은 화교들은 대사관 앞에서 단교 반대 시위를 열기도 했고, 한국을 떠나기도 했습니다. 한국에 거주하는 대다수 화교들은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중화민국 국적을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성화교협회에 따르면 현재 한국에 거주하는 화교는 2만여명으로 90% 이상이 중화민국 국적입니다. 중국대사관 남쪽에 붙어있는 한성화교소학교의 옛 건물에도 마찬가지로 청천백일 문양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국내 대부분의 화교학교는 지금도 대만식 학제를 따르기도 합니다.
○자국 국기 들었단 이유로 사과해야 했던 쯔위

한때 대만은 ‘자유중국’으로 불렸습니다. 한국은 국·공내전 끝에 대만으로 이전한 중화민국 정부를 유일한 ‘중국’으로 인정했고, 정작 내전에서 승리해 대륙을 차지한 중화인민공화국은 ‘중공’으로 불렀습니다. 한국 정부는 1988년부터 북방외교의 일환으로 중화인민공화국에 대한 공식 명칭을 ‘중공’에서 중국으로 바꿔 부릅니다. 이때 중화민국 정부는 크게 반발합니다. 중화민국만이 유일한 ‘중국’이라는 원칙을 훼손한다는 이유에서입니다. 지금 중화인민공화국의 입장과 다를 바 없습니다. 서로 자신만이 유일한 ‘중국’이라는 이른바 ‘하나의 중국’ 원칙입니다.

대만해협을 두고 있다고 해서 ‘양안’이라 불리는 두 자칭 ‘중국’은 1992년 “하나의 중국이라는 원칙을 견지하되, 그 표현은 양안 각자의 편의대로 한다”는 이른바 ‘92공식’에 합의합니다. 국공내전 이후 양안 고위급 간의 첫 합의였지만, 사실상 서로를 절대로 인정할 수 없다는 합의이기도 했습니다. 이는 서로를 중국으로서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 뿐만 아니라 서로의 국기나 상징에 대해서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뜻합니다.



‘하나의 중국’ 원칙을 놓고 양안 간 대결이 계속 되는 가운데 2015년 한 아이돌 멤버가 휘말리는 사건이 벌어집니다. 트와이스의 대만 국적 멤버 쯔위씨가 한 예능프로그램에 출연해 대만 국기(청천백일만지홍기)를 흔든 것이 발단이 됩니다. 당시 방송에 출연한 모든 외국인들이 모두 자국 국기와 태극기를 함께 들었는데 쯔위씨만 논란에 휩싸입니다. 중국에서 쯔위가 대만 국기를 들며 ‘하나의 중국’ 원칙을 훼손했다고 문제삼은 것입니다.

논란이 계속되자 2016년 쯔위씨의 소속사인 JYP엔터테인먼트는 두 차례에 걸쳐 사과합니다. 두번째 사과에는 하나의 중국 원칙을 인정한다는 말까지 담깁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중국 여론은 날로 악화되고 소속 연예인들의 중국 활동은 줄줄이 취소됩니다. 결국 당시 만 16세였던 쯔위씨는 카메라 앞에 서서 고개를 숙여 이렇게 사과해야 했습니다. “중국은 하나 뿐입니다. 해협 양안은 하나입니다. 저는 늘 제 자신이 중국인이라 생각하고 자부심을 느끼고 있습니다.”

이 사과 영상은 대만 여론에 기름을 붓습니다. 대만 내에서는 스스로를 ‘대만인’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고 ‘중국인(중화민국인)’이라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전자는 현 여당인 민주진보당(민진당)의 주요 지지 세력이고, 후자는 국민당의 주요 지지 세력입니다. 그런데 중국의 공격에 한 미성년자 연예인이 고개 숙여 사과해야 했던 이 사건이 ‘대만인’이라는 정체성을 자극한 것입니다. 같은해 열린 대만 총통 선거에서는 현 총통인 차이잉원 민진당 후보가 압승합니다. 당시 홍콩 언론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기권하려던 중도층이 하룻밤 사이에 적극적인 국민당 심판론자로 돌변했다”며 실제 투표율의 1~2%가 쯔위의 지분일 것이라는 분석 결과까지 냈습니다. 정권까지 바꾸는 나비효과를 불러온 것이죠.
○임시정부 도운 장개석은 ‘중국인’?
‘하나의 중국’ 원칙은 이제 더 이상 양안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우리 문화와 일상에도 깊숙이 들어오기 시작했습니다. 지난 국기 논란 이후 국내에서 활동하는 많은 대만 국적 아이돌들은 자신을 소개할 때 ‘중국인’이라 말하거나 ‘중국 대만 출신’이라 말합니다. 지난해 12월 SBS 예능프로그램 ‘런닝맨’에서는 출연진들이 ‘부루마불’ 게임을 하는 도중에 게임판에 타이베이와 함께 대만 국기가 나왔다고 중국 누리꾼들이 “런닝맨을 다시 보지 않겠다”며 보이콧 운동을 하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논란이 한국에서만 있는 건 아닙니다. 지난해 11월 레제프 타이이프 에르도안 터키 대통령은 자신의 트위터에 지진 피해 당시 지원해준 국가들의 국기가 그려진 사진을 올렸다가 하루만에 이 사진을 삭제합니다. 다음날 새로 올라온 사진에는 100여개국의 국기 중 대만 국기만 사라졌습니다. 대만에서는 “중국이 해당 글을 삭제하도록 압력을 가했다”고 즉각 반발했지만 다시 사진에 대만 국기가 올라가는 일은 없었습니다.

이처럼 국제 관계에서 철저히 소외된 대만은 여러 분야에서 설움을 겪고 있습니다. 2019년 전쟁기념관은 SNS에서 대만에서 국부로 추앙받는 장제스(장개석) 총통을 소개하며 중국 국기(오성홍기)를 걸었습니다. 상해, 충칭 등 중국 대륙 전역에서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과 광복군의 활동을 도왔던 ‘중국’은 중화민국이었습니다. 장제스는 그에 대한 공로로 건국훈장 대한민국장을 받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의 국적을 그가 일평생 싸운 ‘적국’인 중화인민공화국으로 표기한 것입니다. 논란이 일자 국기 사진은 금방 삭제됐지만 이는 우리 사회에서 ‘중국’이 시대에 따라 지칭하는 대상이 바뀌며 드러난 혼란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 중 하나였습니다.



‘쯔위 국기 사태’에서 드러났듯이 대만 사람들의 국가 정체성도 예전과 달라지고 있습니다. 스스로를 중국인이 아닌 대만인으로 여기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반중(反中) 정서도 커집니다. 많은 대만 사람들은 홍콩 우산혁명과 보안법 반대 시위를 지지하기도 했습니다. 자국민들이 해외 입출국시 중화인민공화국과 혼동으로 인해 불편함을 겪자 대만 외교부는 지난달 여권 도안도 바꿉니다. 정식 국명인 ‘중화민국’은 거의 줄이고 영문으로 ‘타이완’만 크게 부각되게 말이죠.

한때 미국, 영국, 소련과 함께 유엔의 4대 창립멤버였던 중화민국은 현재 전세계 15개 국가와만 수교하고 있습니다. 이마저도 남태평양, 중남미, 아프리카의 작은 도서국가들이 대부분입니다. 대한민국에게도 대만은 최초의 수교국이자, 이념 대립으로 인한 전쟁, 오랜 ‘개발독재’ 시기, 높은 경제성장 등 우리와 어찌보면 가장 비슷한 역사를 가진 국가였지만, 이제는 한국 땅에 대사관도 설치하지 못해 자국 국기도 게양하지 못하는 대표부만을 두고 있는 미수교국으로 남았습니다.



오랜 국제 고립 끝에 대만은 최근 미·중 패권 경쟁 국면을 활용하고 있습니다. 지난달 마이크 폼페이오 당시 미국 국무부 장관이 미국 정부 관계자들이 대만 당국자와 접촉하는 것을 제한하던 내부 규제를 해제한다고 공식 발표한 이후 세계 각지에서 미국 외교관들과 대만 외교관들의 접촉이 늘어나기 시작했습니다. 주유엔 미국대사는 차이잉원 대만 총통과 통화 사실을 공개하기도 했습니다. 1979년 단교한 두 나라가 급속도로 밀착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입니다. 경제와 안보 등 전방위적인 반중(反中) 전선 구축을 예고하고 있는 조 바이든 행정부에서 대만의 위상은 올라갈 가능성이 높습니다. 영원한 친구도, 영원한 적도 없다는 냉혹한 국제사회에서 우리는 어떤 선택을 할 수 있을까요.

송영찬 기자 0full@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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