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 전 행정부는 미국 정보기술(IT) 기업에 타격을 줄 수 있는 디지털세 도입에 부정적이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를 중심으로 IT 기업 과세를 위한 국제표준을 제정하기로 했다가 ‘미국 기업 차별’이라며 협상 중단을 일방적으로 선언한 일도 있었다. 또 지난해 말 프랑스 정부가 미국 IT 기업들에 디지털세를 부과하려 하자 프랑스산 제품에 보복 관세를 매기기도 했다.
올초 바이든 행정부가 들어서면서 분위기가 빠르게 바뀌었다. 바이든 대통령은 ‘다자주의’와 ‘동맹’을 중시하고, 국제합의 등을 존중하는 것이 미국에 유리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유럽 각국 재무장관들은 미국의 입장 변화로 7월까지 디지털세 협상을 타결하려는 G20의 목표가 실현 가능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G20 재무장관 회의를 주재했던 다니엘레 프랑코 이탈리아 재무장관은 “디지털세 논의가 막바지에 다다른 만큼 올해 중반까지 합의안을 도출할 수 있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7월 이탈리아 베네치아에서 열리는 G20 재무장관 회의에서 최종 합의에 이를 가능성이 있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다.
디지털세는 주로 IT 서비스 기업을 대상으로 했지만 미국이 “디지털 제조업체도 디지털 환경을 이용해 이익을 낸다”고 주장하면서 적용 범위가 소비자 대상 디지털 제조사 등으로 확대됐다. 삼성전자 현대자동차와 같은 국내 제조사도 적용 대상에 포함될 수 있다는 얘기다.
디지털세 합의를 위해선 넘어야 할 관문이 적지 않다. 디지털세는 일정 매출 이상 기업을 대상으로 각국에서 올리는 매출에 ‘과세소득 배분율’을 곱해서 정하는데, 매출과 배분율 기준 등이 아직 마련되지 않았다. 또 미국 정부가 합의에 동의한다고 하더라도 그동안 디지털세 도입에 반대해온 미 의회를 통과할지도 미지수다. 블룸버그통신은 “디지털세에 대한 글로벌 합의가 성사되려면 아직 갈 길이 멀다”며 “미국과 유럽은 새로운 규칙의 범위를 두고 갈등을 겪고 있고, 조세 관할권과 집행 방안 등 여러 미해결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안정락 기자 jra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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