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보라의 공간] 30만개 금연구역의 역설

입력 2021-03-01 18:20   수정 2021-03-02 00:05


담배를 피워 보았다. 핑계는 사소했다. 함박눈이 내린 어느 날 밤. 산책하러 나갔다 쭈그리고 앉아 연기를 뿜어대는 한 남자를 봤다. 세상이 유난히 하얗게 반짝이는 배경 때문이었을까. 추위에 떨며 ‘금연 아파트’ 아스팔트 바닥과 대화를 나누는 이의 마음이 궁금했다. 다수가 금연을 결심하는 새해 벽두, 나는 그렇게 100일간의 시한부 흡연을 결심했다. 전 세계 13억 명의 인구가 속해 있는 새로운 세계로의 탐험을 떠나는 마음으로.

담배는 원래 만병통치약이었다. 1492년 콜럼버스가 신세계에서 발견한 ‘신기한 잎’은 150년 동안 전 세계에 퍼졌다. 미국 대륙에서 유럽으로 담배를 전파한 사람은 프랑스 발루아 왕가의 외교관 장 니코. 그의 이름에서 담배의 중독성 물질인 ‘니코틴’이 유래했다. 담배는 상처나 종기 등에 효능이 있다고 알려지며 흡연자가 늘었다. 1800년대 유럽에선 콜레라 등 각종 전염병을 막는 방법으로 흡연이 권장되기도 했다. 니코틴이 ‘도파민’을 내뿜게 해 불안한 마음을 가라앉힌다는 사실도 더해졌다.
흡연 해롭다며 금연구역만 늘려
1614년 이수광이 펴낸 ‘지봉유설’에도 담배는 독이 있지만 술을 깨게 하고, 몸에 습한 기운을 없애는 식물로 표현된다. 조선시대 담배는 의약품이자 기호품으로 계급을 막론하고 급속히 퍼져 나갔다. 20세기 담배가 대량 생산되며 현재 세계 성인 인구의 3분의 1이 담배를 피운다.

흡연의 역사만큼이나 ‘혐연의 역사’도 길다. 담배의 중독성과 폐해에 대한 연구 역시 수백 년간 지속됐다. 어떤 의사도 공식적으로 흡연을 지지하지 않는다. 한국에선 연간 5만 명이 흡연으로 죽는다. 담배가 해롭다는 수천 개 연구 결과도 있다.

그럼에도 흡연 인구는 크게 줄지 않았다. 흡연은 합법이다. 그래서 금연 정책은 수백 년간 감정에 호소하는 캠페인, 담뱃값 경고 문구 강화 등에 의존했다. 1990년대 ‘금연 구역’이 등장하며 패러다임은 바뀌었다. 2013년부터 식당 카페 등도 금연 구역이 됐다. 현재 서울에만 30여 만 곳이 금연 구역이다. 반면 흡연 구역은 1만 곳에 불과하다. 흡연자들은 반문한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디서 담배를 피우란 말인가.’
흡연구역 충분해야 비흡연권 보호돼
역설적으로 이 질문은 ‘어떻게 비흡연자를 보호할 것인가’라는 질문과 연결된다. 금연 구역을 피해 떠도는 흡연자들은 길거리와 건물 담벼락, 주차장, 아파트 복도 등에서 남몰래 피운다. 코로나 팬데믹으로 길거리 흡연이 여러 차례 이슈가 되기도 했다. 금연 구역은 서울 전체 면적의 약 20%다. 이는 곧 나머지 80%는 흡연해도 된다는 뜻이다. 비흡연자들이 간접흡연의 피해를 볼 수 있는 공간이 그만큼 넓다는 뜻이기도 하다. 국민건강증진법은 금연 구역 지정 장소에 흡연실 설치도 권고하고 있다. 하위법은 흡연실 설치 가이드라인도 정하고 있다. 그러나 그뿐이다. 누구도 흡연 구역 설치 여부를 점검하지 않는다.

“여기서 피우지 마세요” 대신 “여기서 피우세요”라는 공간을 많이 만들었다면 어땠을까. 일본은 도보 5분 거리마다 실외 흡연실이 있다. 그 외 장소에서 흡연하면 높은 과태료를 부과한다. 정부는 영세 사업자가 흡연 시설을 설치하면 비용의 25%, 최대 약 2100만원을 지원한다. 싱가포르는 건물과 지하철 등 출입구로부터 10m, 도로로부터 5m 떨어진 곳에 흡연 구역을 만든다. 눈에 잘 띄게 이정표도 설치한다. 프랑스엔 두 사람이 들어가 냄새 방출 없이 담배를 피우는 벽면형 후드 ‘스모커 벨’이 있다. 첨단 필터가 담배 연기를 급속히 빨아들이는 우산 모양의 하이테크 흡연 공간 ‘스피로 시스템’도 나와 있다.

지금과 같은 네거티브 금연정책은 흡연자와 비흡연자 누구도 행복할 수 없다. ‘금연 아파트’ 대신 ‘최첨단 흡연실을 갖춘 아파트’라는 광고 문구가 더 높은 차원의 공익적 가치를 갖는 날을 기다려본다.

destinybr@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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