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론] 쿠팡 뉴욕증시 상장의 진짜 이유

입력 2021-03-03 17:22   수정 2021-03-04 00:16

# 1. 1997년 11월, 외환위기 사태가 일어나자 경제가 어려워지고 기업들이 줄도산했다. 민간화폐로서 지급결제 기능을 하고, 어음·수표를 이용한 결제 수단 중 64.4%를 차지하던 약속어음 부도율이 이전보다 5배 정도 급증했다(0.84% → 4.39%). 부도업체 수도 1997년의 1만7169개사에서 1998년 9월까지 2만6128개사로 60% 이상 늘었고, 약속어음의 부정적 기능이 강조되면서 제도 자체를 폐지하자는 주장이 나왔다. 결국 1998년 5월 어음의 만기를 60일로 제한하고, 약속어음의 폐지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어음법 개정안’이 의원입법으로 제출됐다. 하지만 정부 부처와 중소기업들의 반대로 이 개정안은 국회 임기만료로 폐기됐다.

# 2. 최근 쿠팡의 뉴욕 증권거래소 상장이 화제가 됐다. 한국에는 차등의결권이 없기 때문에 미국으로 갔다고 해서 우리나라도 제한적으로 차등의결권을 도입하겠다고 한다. 그러나 차등의결권은 문제의 핵심이 아니다. 미국 증권시장이 대규모 자본조달에서 한국보다 유리하다는 게 중요 요소일 것이다. 여기에 더해 미국에 상장하면 정부 간섭도 거의 없고, 이사회 운영, 주주총회, 주식과 사채발행, 이익배당 등에 거의 간섭이 없다. 게다가 기업규제 3법, 감사 선임 시 3%룰, 감사위원 분리선임, 이익공유, 국민연금의 경영간섭 등을 신경 쓸 필요도 없기 때문일 것이다.

두 사례의 공통점은 어떤 문제가 발생했을 때 겉으로 나타난 부작용만 보고 본질이 무엇인가를 파악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질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정확한 진단이 우선이듯 잘못된 현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본질적으로 무엇이 문제인지 알아야 한다. 외환위기 사태 이후 기업 연쇄 부도는 어음제도 자체의 문제가 아니라 기업들의 만성적인 자금부족, 물품대금지급에서 매수인의 우월적인 지위남용, 신용질서의 미정착과 외환위기 및 금융경색 등에 따른 기업의 자금부족 심화, 상호지급보증 등으로 중층화된 경제구조에 기인한 면이 더 컸다. 그런데 약속어음을 폐지하면 기업의 부도를 막을 수 있다며 문제의 본질을 잘못 파악했다.

쿠팡 사례에서 읽을 수 있는 문제는 미국 증권거래소 상장이 국내의 과도한 기업규제 때문이라는 점은 외면하고, 단지 차등의결권 때문이라고 여기면서 이 제도만 도입하면 모두 해결될 것처럼 본 것이다. 쿠팡이 미국 증권거래소에 제출한 증권신고서를 보면 △경영진의 직접 또는 감독책임에 따른 형사처벌 위험 △공정거래법상 계열사 간 거래 제한 가능성 △중대재해처벌법에 따른 형사처벌, 처벌사실 공표 및 금전손해배상책임 가능성 △근로기준법, 공정거래법 위반에 대한 고발 △제조물 관련 결함에 따른 경영진의 처벌 가능성 등을 들면서, 이런 위험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기업에 불리하게 작용할 것이라고 적고 있다. 또 도입을 추진 중인 온라인플랫폼법, 징벌적 손해배상제에 관한 상법 개정 등 각종 규제도 미래 위험요인으로 제시하고 있다. 차등의결권도 영향이 있었겠지만 문제의 본질은 아니다.

좋은 정책인가, 포퓰리즘 정책인가의 구분은 사실에 근거하고 본질을 제대로 봤는지, 단순히 일부 대중에게 인기를 얻기 위한 것인지를 따져보면 알 수 있다. 단순한 슬로건이나 정책의 유혹에 대해 의문을 제기하고, 기대한 효과가 있을지에 대해 치열하고 신중하게 검토해야 하는 책임은 정부와 관련 기관들의 몫이다. 어음부도율이 높아졌다고 해서 제도 자체를 없애겠다는 생각과 차등의결권만 도입하면 미국이 아니라 한국 증권시장을 선택할 것이라는 생각은 본질을 보지 못하고, 문제를 해결하는 데 필요한 핵심을 보지 못하는 것이다.

본질을 외면하고 일부 대중만을 의식해 법을 만드는 것은 포퓰리즘보다 더 위험한 ‘로퓰리즘(lawpulism)’이다. 문제의 본질을 봐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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