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험, 중세 해상무역 '모험대차'에서 진화

입력 2021-03-08 09:01  


영국 옥스퍼드대 앞에 처음 들어선 커피하우스가 17세기 후반 영국에서 대유행을 했다. 이 가운데 금융회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것이 템스강변에 들어선 로이즈 커피하우스다. 런던에는 왕립거래소가 있었지만 허가받은 소수의 중개인만 출입이 가능했다. 그렇지 못한 중개인은 왕립거래소 주변에 들어선 커피하우스로 모여들었다. 커피하우스가 보험, 증권거래의 중심이 된 배경이다. 로이즈 커피하우스는 선착장 근처여서 선주, 선원, 무역상, 보험업자, 조선업자 등이 모이기 쉬웠다. 정부기관도 부근에 즐비했다. 자연스레 무역과 항로, 선박과 유럽의 정치 상황 등 온갖 정보가 이곳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큰 수익을 거둔 로이즈 커피하우스의 주인 에드워드 로이드는 중심가인 롬바르드가의 훨씬 넓은 건물로 가게를 옮겼다. 그는 차별화된 서비스도 제공했다. 벽면 게시판에 선박의 출항·도착 시간, 화물 정보 등을 게시한 것이다. 로이드는 1696년부터 아예 로이즈 뉴스를 발행해 종합 정보를 제공했다. 이것이 1734년부터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는 ‘로이즈 리스트’의 전신이다.
보험과 유사한 중세 모험대차 거래
해상무역 발달과 궤를 같이하는 해상보험은 로이즈 커피하우스보다 훨씬 전부터 존재했다. 바다는 예측 불허다. 폭풍으로 배가 난파하고 역풍을 만나 표류하는 일이 다반사였다. 선주와 화주(화물 주인)는 전 재산을 날릴 위험을 방지하기 위한 방법을 궁리할 수밖에 없었다. 지중해 교역이 활발했던 고대 그리스에서 해상무역의 위험을 덜기 위한 수단으로 ‘모험대차’가 생겨났다. 모험대차란 선주와 화주가 항해에 앞서 배나 화물을 담보로 일정 기간 돈을 빌린 뒤 무사히 항해를 마치면 원금과 이자를 붙여 상환하고 사고가 나면 채무를 면제받는 거래였다. 위험을 채권자에게 넘긴다는 점에서 보험과 유사한 기능을 했지만 일반 대차거래보다 채권자가 돈을 떼일 위험이 크기 때문에 이자율은 매우 높았다.

그러나 1203년 교황 그레고리우스 9세가 이자금지령을 내림에 따라 모험대차로 이자를 주고받는 길이 막혔다. 유럽 상인들은 가장 매매계약을 맺고, 이자 대신 수수료를 받는 형태의 변형 모험대차를 고안했다. 대출금이 돈으로 오가지 않으므로 모험대차에서 위험 부담 기능만 살린 것이다. 변형 모험대차는 지중해 교역을 주도한 중세 이탈리아 베네치아, 제노바, 피사 등지에서 성행했다. 특히 14세기 중반에 나침반이 보급되고 선박 대형화, 등대 구축 등으로 해상무역이 비약적으로 발전하면서 근대 보험의 기원이 되는 순수한 보험계약으로 진화했다. 역시 해상무역이 활발했던 스페인에서는 세계 최초로 보험계약에 관한 규정인 바르셀로나법이 제정됐다.
보험의 대명사가 된 로이즈
17세기 해상무역의 중심이 된 런던에서도 보험업이 번성했다. 특정 분야의 종사자가 한곳에 모이면 그로 인한 시너지 효과가 나는데, 로이즈 커피하우스에 모인 이들의 관심사는 당연히 해상무역의 위험 분산으로 모여졌다. 그러나 로이즈 커피하우스가 번창하면서 도박 및 투기업자도 모여들었다. 로이즈 커피하우스가 도박의 온상이 된 데 반발한 보험업자들이 1769년 독립해 나왔다. 이들이 1771년 ‘로이즈협회’를 결성해 제대로 된 보험조합으로 발전시켰다.

로이즈협회는 큰 사고가 발생해도 보험금 지급 거절이나 지급 불능이 거의 없었다. 이 때문에 1720년 왕립 보험회사들이 등장했음에도 해상보험의 90%를 점유할 만큼 공신력이 높았다. 그러나 로이즈는 개인 보험업자 간 조합이기에 자금력에 한계가 있었다. 이를 극복하는 방법으로 신디케이트와 재보험을 발전시켰다. 대형 보험계약이 맺어지면 회원들이 미리 정한 비율로 나눠 인수하는 방식이었다. 재보험은 소규모 보험업자들의 위험을 다시 분산시키는 ‘보험의 보험’이다.
런던 대화재가 만들어 낸 화재보험
1666년 9월 빵공장에 치솟은 불길이 런던 중심가를 덮쳤다. 시 당국의 늑장대응으로 화재는 닷새간 이어졌다. 유서 깊은 세인트폴대성당을 비롯해 교회 87곳을 태웠고, 시내 가옥의 4분의 1이 소실돼 수만 명의 이재민을 냈다. 역사에 기록된 런던 대화재였다. 화재로 피해로 본 사람들은 보험의 필요성을 절감했다. 이듬해 치과의사 출신 니컬러스 바본이 화재에 대비하고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화재사무소를 열자 관심을 끌었다. 여기서 등장한 것이 화재보험이다. 바본의 사무소는 1705년 피닉스화재사무소로 발전해 100년 가까이 존속했다. 이어 1720년에는 당시 조지 1세의 특허를 받은 런던보험회사 등이 정식 보험회사로 설립됐다.

생명보험은 상대적으로 뒤늦게 생겨 ‘보험의 막내’로 불린다. 최초의 생명보험회사는 1706년 설립된 영국의 아미카블 소사이어티로 알려져 있다. 프랑스 루이 14세 때 이탈리아 금융가 로렌초 데 톤티의 건의에 따라 시행된 ‘톤틴연금’에 착안해 가입자들이 낸 돈을 사망자 가족에게 나눠 준 것이다. 2000명 단위로 구성된 톤틴연금은 가입자가 낸 돈으로 조성한 기금의 이자 수익을 매년 생존자에게 나눠 주는 방식이었다. 가입자는 오래 살수록 받는 돈이 커져 최후의 생존자는 로또 당첨과 같은 큰 수익을 올렸다.

근대적 체계를 갖춘 생명보험회사는 1762년 설립된 영국의 ‘에퀴터블생명보험’이다. 계약 전 신체검사, 가입한도 제한, 해지 환급금, 계약자 배당 등 현대 생명보험의 토대가 이때 만들어졌다. 이처럼 보험에는 해상무역, 런던 대화재 등의 역사가 고루 녹아 있다.

오형규 한국경제신문 논설실장
NIE 포인트
① 만일에 대비하기 위한 위험 회피 수단으로서 저축과 보험의 장단점은 각각 무엇일까.

② 가수 바다가 목소리 보험, 축구선수 크리스티아누 호날두가 다리 보험에 가입하는 등 유명인의 신체 보험이 잇따르는데, 보험의 범위는 어디까지 확장할 수 있을까.

③ 두레, 계(契), 향약(鄕約) 등 우리의 전통적인 상호부조(相互扶助) 조직과 서양이 발전시킨 보험을 비교하면 닮은 점과 다른 점은 각각 무엇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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