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사히가 '드라이'에 취한 사이…'라거病' 깬 기린, 20년 만에 1위로

입력 2021-03-07 17:23   수정 2021-03-15 18:11

기린은 지난해 일본 맥주시장에서 37.1% 점유율로 부동의 1위였던 아사히(35.2%)를 제쳤다. 2001년 이후 20년 만의 일이었다. 기린의 점유율은 전년보다 1.9%포인트 상승한 데 비해 아사히 점유율은 1.7%포인트 떨어졌다.
새로운 맥주로 1위 탈환한 기린
아사히는 가볍고 신맛으로 일본 맥주시장의 50% 이상을 차지하는 ‘슈퍼드라이’를 보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일본 주류업계에서 기린의 1위 탈환은 기적으로 평가받는다.

아사히가 점유율 50%인 브랜드를 보유하고도 1위 자리를 내준 것은 시장이 통째로 변했기 때문이다. 일본의 맥주시장은 맥주 외에 발포주와 다이산, 주하이(일본 소주를 탄산수로 희석한 음료) 등으로 구성된다. ‘신(新)장르’라고도 부르는 다이산은 맥주의 주원료인 맥아를 전혀 쓰지 않고 맥주맛을 내는 알코올음료다. 지난해 다이산은 2004년 출시된 이후 처음으로 맥주를 제치고 맥주계 음료시장 1위가 됐다. 원조보다 아류가 더 커지면서 아사히의 독무대였던 맥주시장은 쪼그라들었다. 다이산의 점유율은 46%로, 1년 새 6%포인트 늘어난 데 비해 일반 맥주 점유율은 41%로 7%포인트 줄었다.


일본 맥주시장의 판도가 바뀐 건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때문이다. 외출 제한과 휴업, 영업 단축으로 이자카야에 납품하는 업소용 맥주 판매가 급감했다. 맥주시장의 절반 이상은 업소용 맥주가 차지한다. 긴급사태가 선언된 작년 4~5월 4대 맥주회사의 업소용 맥주 매출은 80~90% 감소했다.

반면 맥주보다 알코올 도수는 0.5도가량 높으면서 가격은 100엔(약 1100원) 싼 다이산의 수요는 급증했다. 집에서 혼자 술을 마시는 사람이 늘면서 가성비가 중시됐기 때문이다.

기린은 주력 맥주 브랜드인 ‘이치방시보리’의 판매량이 24% 줄었다. 하지만 다이산 1위인 혼기린 덕분에 전체 매출량(1억3000만 상자) 감소폭을 전년 대비 5%로 막았다. 맥주 출하량(6517만 상자)이 22% 줄어든 아사히는 이를 만회할 상품이 부족했다. 전체 맥주 매출의 절반 이상을 슈퍼드라이에 의존하는 탓이었다.
잘나가던 ‘브랜드’에 취한 아사히
전문가들은 맥주시장의 판도 변화를 ‘슈퍼드라이병(病)’에 걸린 아사히가 ‘라거병’을 고친 기린에 패했다고 평가한다. 슈퍼드라이의 성공에 취해 사업 재편을 외면한 아사히가 끊임없이 사업을 재편한 기린에 졌다는 의미다.

1987년 출시한 슈퍼드라이가 시장점유율 70%를 달성하자 아사히는 ‘브랜드병’에 걸리고 말았다. 슈퍼드라이에만 회사의 전력을 의존하는 ‘외다리 경영’이 이어졌다. 주력 사업부인 슈퍼드라이의 책임자가 대대로 경영진을 장악하면서 슈퍼드라이에만 의존하는 전략을 수정하려 들지 않았다.

저출산·고령화의 급속한 진행으로 국내 시장이 위축되는 현실은 애써 외면했다. 지난해 일본 4대 맥주회사의 판매량은 16년 연속 감소했다. 현재 일본 맥주시장 규모는 1994년 전성기에 비해 40% 작고, 1970년대 후반과 비슷한 수준이다.

그런데도 아사히 내부에서는 미래를 대비해 다른 브랜드를 키우려는 시도를 ‘드라이 세력’이 견제하는 일마저 벌어졌다.
기린도 과거엔 ‘라거병’으로 고전
기린은 아사히와 반대의 길을 갔다. 역설적으로 맥주시장에서 슈퍼드라이를 이길 수 없었던 덕분에 발포주와 다이산 등 새로운 장르를 꾸준히 개발했다.

20여 년 만에 1위를 탈환한 기린도 ‘라거병’에 걸린 경험이 있다. 1970년대 ‘라거’ 브랜드가 일본 시장의 60%를 차지하자 변화를 거부했다. 시장 트렌드가 병맥주에서 캔맥주로 변하는데도 병맥주를 고집한 결과 아사히에 선두를 내줬다. 그런데도 2000년대까지 기린은 ‘매출 3조엔, 해외 매출 3할’이라는 목표 아래 해외기업을 인수해 덩치를 키우는 데만 주력했다. 이익보다 매출을 중시한 해외 인수합병(M&A)은 수익성에 기여하지 못했고, 2015년 상장 이후 처음으로 적자를 기록했다.

2015년 취임한 이소자키 요시노리 기린홀딩스 사장은 저수익사업을 과감하게 정리했다. 대신 유산균과 같은 건강식품사업을 주 수익원으로 키우고 있다. 2019년 교와발효바이오를 1300억엔에 인수하는 등 사업다각화에 나서고 있다. 2024년까지 건강사업 이익을 전체의 10%까지 늘린다는 목표를 세웠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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