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사꾼 대신 투기꾼 득실…'농지'는 왜 LH 직원 놀이터 됐나

입력 2021-03-10 09:41   수정 2021-03-10 13:24

농지(農地)는 농사를 짓는 땅이다. 벼를 심고, 콩을 심고, 감자를 심어 잘 키운 후 수확물을 거두는 것이 농지의 존재 이유다. 대한민국 건국 직후 제정된 농지개혁법에서 지난 1994년 만들어진 농지법에 이르기까지 농지의 소유와 이용은 식량 생산을 하는 농업인에게 한정적으로 허용돼왔다.

하지만 최근 한국주택토지공사(LH) 사태를 돌아보면 농지의 정의에 '막대한 개발 차익을 거둘 수 있는 투기의 대상'이라는 내용이 추가된 느낌을 지울 수 없다. 농지 보유에 각종 예외 조항이 생기면서 투기의 온상이 되고 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농지란 무엇인가
농지는 말 그대로 농작물을 경작하는 곳이다. 농지법 2조, 농지법 시행령 2조, 농지법 시행규칙 3조 등을 보면 '전·답·과수원, 그 밖에 법적 지목을 불문하고 실제로 농작물을 경작하는 곳'을 농지로 규정한다. 잔디 등 조림용 묘목을 심거나, 과수와 조경용 수목을 심어도 된다.

농지는 원칙적으로 농업인만 보유할 수 있다. 헌법 121조에 '농지는 경작자만이 소유할 수 있으며 농지의 소작제도는 금지된다'는 내용이 적시돼있다. 농지법에는 좀 더 구체적으로 '농업 경영'을 하는 농업인과 농업법인만 농지를 소유할 수 있다고 나와있다.

농업인은 1000㎡ 이상의 농지에서 농작물 또는 다년생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거나 1년 중 90일 이상 농업에 종사하는 자, 농지에 330㎡ 이상의 고정식온실·버섯재배사·비닐하우스, 그 밖에 농업생산에 필요한 시설을 설치해 농작물 또는 다년생식물을 경작 또는 재배하는 자를 의미한다.

농업인이 아니어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예외 조항은 있다. 상속으로 농지를 취득하는 경우, 8년 이상 농업경영을 하던 자가 이농한 경우, 담보물로 농지를 취득하는 경우, 농지 전용 예정인 농지를 소유하는 경우 등이다.

농지의 명확한 정의와 소유 및 이용에 대한 규정은 대한민국 정부 수립 직후 제정된 농지개혁법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무렵 대부분의 농지는 일제 강점기에 일본인이 취득했던 농지를 몰수한 미군정이 관리하고 있었다. 미군정이 지주가 돼 소작을 주는 형태였다.

정부 수립 후 토지개혁에 대한 목소리가 높아지면서 1950년 3월 농지개혁법이 공포됐다. 소작인에게 1년 소출의 1.5배를 매각 지가로 산정해 소작인에게 농지를 불하했다. 전국 농지의 15%가 이 농지개혁법을 통해 농민들에게 분배됐다.

농지개혁 후에는 목적에 따라 다양한 법률이 제정됐다. 1972년 '농지의 보전 및 이용에 관한 법률'에서 전체적인 틀이 마련됐다. 1986년엔 '농지 임대차 관리법'이 나왔다. 헌법에 있는 경자유전(耕者有田) 조항이 이 무렵 명기되는 동시에 불가피한 임대차는 허용하는 예외조항이 생겼다. 1990년에는 '농어촌발전특별조치법'의 제정에 의해 농업진흥지역제도와 농업법인제도가 도입되기도 했다. 1994년 농지에 관한 각종 법률을 포괄하는 농지법이 제정되면서 현재의 모습을 갖췄다.
투기 대상이 된 농지
공직자들의 농지 소유 문제가 불거진 것은 LH 사태 이전에도 수차례 있었다. 국회의원들 대다수가 농지를 소유하고 있다는 점은 공직자 재산공개 때마다 나오는 지적사항이다. 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이 지난달 발표한 '21대 국회의원 농지소유현황'에 따르면 전체 국회의원 3000명 가운데 25.3%인 76명이 농지를 소유한 것으로 나타난 바 있다. '여의도 농부'라는 신조어까지 나왔을 정도다.

문재인 대통령이 경남 양산에 사저를 매입하면서 영농 경력 11년의 농업인이라고 주장한 것도 논란이 됐다. 장관 후보자 청문회의 단골 주제이기도 하다. 현정부에서는 권덕철 보건복지부 장관이 아내의 농지 소유 문제가 논란이 됐다. 조동호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후보자는 농지법 위반 등의 이유로 낙마했다. 과거 이명박 정부 때는 청와대 수석의 영종도 농지 소유가 개발 차익을 노린 투기라는 지적이 나오기도 했다.

일반인이나 공무원들의 농지 투기 문제도 심심찮게 지적된다. 신도시 등 대규모 택지개발이 있는 경우는 특히 기승을 부린다. 2기 신도시를 조성하던 2003년엔 검찰 합동수사본부가 공무원 27명의 비위를 적발하기도 했다. 부동산 투기 세력과 유착해 허위로 농지취득자격증명을 발급해주는 등 농지법을 위반한 것으로 드러났다.

대규모 개발이 있는 경우가 아니라도 농지법 위반은 심심찮게 지적된다. 지난달 감사원 감사 결과에서도 이런 수법을 쓰는 이들이 적발된 바 있다. 경남 하동, 경기 평택, 전북 부안 등에선 농업법인이 허위로 농업경영계획서를 작성해 취득증명서를 받은 뒤 수십억의 매매 차익을 얻은 것으로 나타난 것이다.

농업인으로 가장하고 실제 경작을 하는 것처럼 꾸미는 수법이 가장 많이 사용된다. 이번 LH 직원의 사례처럼 나무를 심어놓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농지법상 농지에 조경수를 심는 것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이는 겉으로는 농지법상 농지 소유 조건을 모두 충족시키는 것으로 보이지만 실상은 농지를 제대로 이용하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다.

이번 LH 사태의 경우 희귀 묘목을, 나무가 잘 자라기도 어려운 형태로 촘촘히 식재한 것이 이같은 비판을 가능케하는 지점이다. 나무를 키우기 위한 목적은 보이지 않고 농지를 투기 목적으로 이용하는 노하우가 켜켜이 쌓인 결과라는 지적이다.

서류상으로 본인이 경작하는 것으로 해놓고 지역 주민과 불법 임대차 계약을 맺는 방법도 농지 투기꾼들의 주요 수법이다. 이같은 농지법 위반이 확인되는 경우 지자체장이 농지의 처분 명령을 할 수 있게 돼있다. 이번 LH 사태도 농지법상 처분 명령 대상인지 여부가 쟁점 중 하나로 떠오를 전망이다.

예외 조항을 이용해 느슨한 지점을 공략하는 경우도 있다. 특히 2003년 추가된 소규모 농지 소유의 예외조항이 투기를 부추긴다는 지적이다. 정부는 당시 주말농장 등의 수요가 늘어나는 것을 감안해 농업인이 아닌 경우에도 1000㎡ 이하 규모의 농지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농업경영계획서를 제출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매매가 수월하다.

일부 농민단체와 전문가들은 농지법의 제정 과정에서 이미 투기의 가능성이 공식화됐다고 지적하고 있다. 주말농장을 위한 예외조항 이외에도 농사를 짓지 않아도 농지를 소유할 수 있는 다양한 예외조항을 허용해 농지가 농업 생산의 대상이 아닌 소유와 자산의 대상이 됐다는 것이다.

농지 소유에 대한 예외조항을 모두 없애 투기의 가능성을 차단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전문가들도 있다. 주말농장 예외조항은 당장 없애고, 상속 농지는 영농 계획이 없다면 처분 의무를 부과해야한다는 주장이다.
보조금·수당 창구로 이용되기도
최근 농지에 대한 각종 보조금과 수당이 늘어나면서 이를 목적으로 농지를 사들이는 사례도 발생하고 있다.

전국 지방자치단체를 중심으로 확산하고 있는 농민수당이 대표적이다. 농민수당은 주로 농업인이 운영하는 농어업 경영체에 지급된다. 1000㎡ 이상의 농지를 취득해 소정의 농업 수입을 올리면 대체로 지급이 된다.

농촌 지역 부동산 등에선 이같은 수당을 받기 위해 농업인으로 등록하는 사례가 많이 나오고 있다고 지적하고 있다.

최근 금액이 증액된 직불금도 농지 매매를 부추기는 요인 중 하나로 지목된다. 지난해 농사를 짓는 농민에게 직불금 명목으로 지급한 현금은 2조3609억원에 이른다. 2019년보다 1조원 이상 증액됐다.

강진규 기자 jos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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