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읽는 명저] "분업은 생산력을 향상시키고 사회의 질적 발전에도 필수"

입력 2021-03-15 09:01  

‘분업’이라고 하면 ‘경제학의 아버지’ 애덤 스미스를 많이 떠올리지만, 에밀 뒤르켐(1858~1917)이 대표적인 분업 예찬론자다. 스미스는 “분업이 생산성 제고와 산업사회 도래의 원동력이 됐다”면서도 “노동자들의 정신적·문화적 쇠퇴를 야기할 수 있다”는 우려를 빼놓지 않았다.

프랑스 사회학자 뒤르켐은 스미스의 ‘경제적 관점’을 넘어 분업을 현대 산업사회 전반을 해석해 내는 키워드로 확장했다. 그는 《사회분업론》에서 “분업은 생산력을 향상시킬 뿐만 아니라 사회의 질적·물질적 발전에 필수적 요건”이라고 진단했다. “분업은 연대감을 높여 사회통합을 부른다”며 “분업이야말로 문명의 원천”이라고 강조했다. 당시 지식인들이 ‘분업은 원자화·고립화를 낳는다’고 한목소리로 우려할 때 “분업이 해방을 부른다”는 긍정적 관점을 제시했다. 《사회분업론》이 막스 베버의 《프로테스탄티즘의 윤리와 자본주의 정신》과 함께 새로운 산업문명의 등장을 읽어내고 이론화하는 데 기여한 저작으로 평가받는 이유다.
분업은 ‘소외’가 아닌 ‘유대’의 원천
《사회분업론》의 핵심적 주제는 아노미(anomie: 사회적 규범의 동요·이완·붕괴 등으로 일어나는 혼돈)의 극복과 사회 통합이다. 뒤르켐은 집필 당시인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급속한 산업화와 함께 개인주의가 발호하는 것을 목격했다. 이런 변화 속에서 ‘어떻게 사회적 결속력을 유지할 수 있을까’라는 문제에 천착한 그가 주목한 것이 분업이다.

스미스 이래로 경제학자들은 분업을 인간 사회의 최우선 법칙이자 진보의 조건으로 간주했다. “잘 통치된 사회에서는 분업의 결과로 생산물이 대폭 증가해 최저계층에까지 부(富)가 전파된다”고 봤다. 그러나 경제학의 경계를 벗어나면 분업에 대한 평가는 박했다. 카를 마르크스는 “분업이 인간의 소외를 초래한다”고 했고, 오귀스트 콩트는 “결속력을 약화시켜 사회 혼란의 원인이 된다”고 비판했다. 알렉시 토크빌도 “분업의 원리가 더 잘 적용될수록 기술은 진보하지만, 기술자는 퇴보할 것”이라며 우려를 보탰다.

뒤르켐은 “사회분업이 반드시 분열과 비일관성을 낳지는 않는다”고 강조했다. 오히려 구성원 간 경제적·정서적 상호 의존을 강화시켜 사회연대와 통합을 낳는다고 봤다. “분업의 기능은 경제적이기보다 사회적”이라며 사회적·도덕적 시각에서 광범위하게 접근할 것을 주문했다.

“분업은 동물계의 약육강식 투쟁원칙과 구분되는, 평화로운 공동체 생활을 위한 인간만의 지혜로운 해결책”이라는 게 뒤르켐의 분석이다. 결혼을 통한 이성과의 결합도 분업으로 이해했다. “남녀의 상이함에 기초한 분업이 결혼제도를 유지시키는 부부간 유대의 원천”이라고 봤다. “분업으로 형성된 연대감을 구체화해낸 것이 법률”이라고도 했다. 뒤집어 말하면 법치의 약화는 사회연대감 붕괴의 위험 신호라는 의미다. “우리는 분업이 발달할수록 거기에서 오는 이익이 더 많아진다는 것을 알고 있다. 분업 덕분에 경쟁자들은 서로 죽이도록 강요받지 않고 공존할 수 있게 된다.”

《사회분업론》은 중세 이후 사용하지 않던, 무법·무질서를 뜻하는 그리스어 아노미아(anomia)를 되살려냈다. 뒤르켐은 “분업으로 연결된 사회에서 개인적 이익만 추구할 경우 무규범 상태가 되고 혼란이 온다”며 구성원들의 행위를 규제하는 공통의 가치와 도덕적 규범이 상실된 상태를 ‘아노미’로 지칭했다. “아노미 상태 때문에 끊임없이 갈등이 일어나고 모든 무질서가 생겨난다”고 본 것이다. “이상(異常) 상태에서는 상호 의존관계가 교란돼 분업이 사회적 아노미의 원인이 된다”며 개인과 집단을 규제하는 새로운 도덕과 문화가 정착되지 못한 병리상태를 ‘아노미적 분업’이라고 불렀다.

뒤르켐은 현대산업사회를 통합하고 유지하기 위한 핵심 가치로 ‘도덕적 개인주의’를 제시했다. “자신의 행동과, 그 행동이 초래하는 의무를 떠맡는 것”이 도덕적 개인주의이며 자유의 진정한 의미라고 강조했다.
민주주의에는 ‘공정한 규칙·배려’ 필수
분업이 효율적으로 작동하려면 도덕적 공동체가 선행돼야 한다는 게 이 책의 결론이다. 전문화·다원화된 사회에서 타인을 존중하는 개인들이 모여 강력한 도덕공동체를 형성하면 아노미 현상은 자연히 사라질 것이라는 설명이다. “물질적인 결합이 아니라 신념과 감정을 공유하는 도덕적 연결관계가 있어야 분업이 성공적으로 이뤄질 수 있다.”

이런 논지는 그가 활동한 시대를 압도했던 공리주의에 반기를 든 것이었다. 공리주의자들은 ‘신념과 감정의 공동체’ 대신 ‘당사자 간의 계약’을 우선시했다. 뒤르켐은 “공리주의자들이 사회의 기원을 잘못 이해한다”고 비판했다. 산업사회의 문제를 자본주의 체제의 구조적 문제로 치환하고, 운명적 몰락이나 계급갈등 이론으로 설명하려는 시도도 거부했다. 그러면서 자유민주주의와 자본주의는 좁은 틀에 고정된 제도가 아니며 공정한 규칙, 자율적 통제, 배려하는 문화가 함께 가야 한다고 설명했다. ‘사회통합에는 도덕적 개인이 선행돼야 한다’는 뒤르켐의 메시지는 몰(沒)가치·탈(脫)진실이 득세하는 오늘 한국의 현실을 돌아보게 만든다.

백광엽 한국경제신문 논설위원 kecore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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