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트코인 뒤져보자" 공무원 말에…숨겨둔 366억 찾았다

입력 2021-03-19 08:08   수정 2021-03-19 13:26


지난 15일 국세청은 흥미로운 발표 자료 하나를 내놨다. 정부 부처 중에 최초로 비트코인 등 암호화폐에 대한 조사를 벌여 고액 체납자의 은닉 재산을 추적했다는 내용이다.

처음 한 암호화폐 은닉 재산 추적이지만 성과는 컸다. 암호화폐에 자산을 은닉한 체납자 2416명을 적발해 366억원을 거둬들이게 됐다. 이같은 작업을 주도한 황병광 국세청 국세조사관(사진)을 19일 만났다.


황 조사관은 2008년부터 국세청 공무원으로 근무하며 최근 4년간 체납 세금을 추적하는 일을 맡고 있다. 징세과(과장 박광종) 징세4팀에 속해 팀원들과 협업해 400억원에 가까운 체납세금을 징수하게 됐다.

비트코인 은닉자산을 추적해야겠다는 생각을 처음 하게 된 이유는 무엇일까. 여기에 황 조사관은 국세청 내부에서 운영하는 인터넷 커뮤니티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답했다.

"국세청은 직원들의 아이디어를 업무에 적극 반영하기 위해 인트라넷 안에서 각종 커뮤니티를 활성화시키고 있습니다. 그중에 전국 1800여명의 체납 추적요원들이 들어와 있는 '체납플러스'라는 커뮤니티가 있습니다.

여기에 작년부터 '비트코인에 자산을 은닉할 수 있다'는 의견이 올라오기 시작했습니다. 실제로 그럴 가능성이 꽤 있을 것 같아 본격적으로 조사에 돌입했습니다"

판례 및 제도 변화로 가상화폐에 대한 자산 압류 및 징세 조사가 가능해진 점도 도움이 됐다. 범죄에 이용된 비트코인을 정부가 압류할 수 있는지에 대한 소송에 대해 2018년 대법원이 비트코인을 압류 가능한 무형 자산으로 분류한 것이다.

지난해 3월에는 암호화폐 거래소가 고액 거래를 금융감독원에 신고하고 자금 세탁 방지를 위한 의무사항을 준수하도록 하는 특정금융정보법 개정안이 국회를 통과했다. 이런 가운데 지난해 하반기부터 가격이 급등하면서 재산 은닉 수단으로 암호화폐가 조명 받기 시작했다.

황 조사관은 "자금 은닉은 대부분 현금 등 가격이 안정된 자산으로 이뤄지는 경우가 많다"며 "비트코인은 상대적으로 변동성이 크지만 최근 가격이 꾸준히 오르고 모건스탠리 등 글로벌 금융사에서 투자 자산으로 인정 받으면서 새로운 은닉처가 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암호화페 조사 과정에서 가장 어려웠던 것은 여러 암호화폐 거래소를 설득하는 부분이었다. 조사 대상 고액체납자의 명단을 거래소에 전달했지만, 이들의 암호화폐 보유 현황은 거래소의 협조가 있어야 파악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거래소 입장에서도 처음하는 일이라 초기에는 난색을 표했습니다. 국세청 입장에서도 법적으로 요청은 가능하지만 자료 제출을 강제할 수는 없는 사안이었습니다.

당연히 거래소들은 대부분 부정적인 입장을 내놨지만 징세4팀 팀장과 함께 여러 차례 방문해 설득했습니다. 결국 거래소들도 자체 법무팀을 통해 법적인 검토를 거친 끝에 고액체납자들의 암호화폐 보유 현황 자료를 넘겨줬습니다."

황 조사관과 징세4팀 조사관들은 이같은 자료를 분석해 고액체납자들의 암호화폐 보유현황을 분석했다. 이후 이들의 계좌를 압류하고 2월말과 3월초 사이에 해당 내용을 통보했다. 비트코인 등을 처분하고 현금화할 수 있는 권한을 국세청이 가져왔으니 돌려 받고 싶으면 체납 세금을 내라는 것이다.

"통보를 받은 고액 체납자들이 놀라 문의하는 전화가 일선 세무서와 거래소 등에 쇄도했습니다. 처음 있는 일이다보니 계좌 압류 절차 등에 대한 질의가 많았습니다. 문의전화가 갑자기 늘어 일부 거래소에서는 상담 직원을 늘리기도 했다고 들었습니다."

비트코인 등의 가격이 한창 오르고 있는만큼 계좌 인출권을 돌려 받기 위해 다른 곳에 은닉했던 자금으로 체납 세금을 내는 이들도 있었다. 27억원을 체납했다 비트코인 계좌가 압류돼자 그만큼을 현금으로 내고 비트코인 계좌는 돌려 받은 A씨가 대표적이다.

"고액 체납자들을 조사하다보면 선량한 시민들은 모두 잘 내고 있는 세금을 어떻게든 내지 않으려고 하는 이들이 많습니다. 고개를 빳빳이 들고 목소리를 높이는 고액 체납자들을 만나는 것도 흔한 일입니다.

비트코인 조사에서 보듯 체납자들이 세무 당국의 손길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은 없습니다. 양파밭에 현금을 묻더라도 결국은 덜미가 잡힐 수 밖에 없습니다."

황 조사관은 "고액 체납자들이 그동안 내지 않은 세금을 모두 내는 정상적인 사회를 만들기 위해 국민들도 함께 노력해 달라"고 당부했다.

국세청이 운영하는 '고액 체납자 명단공개' 사이트에 접속하면 기초지방자치단체별로 고액의 세금을 체납한 이들의 실명과 거주지를 살펴볼 수 있다. 주변에서 고액 체납자들의 생활과 씀씀이를 살펴 자산 은닉 가능성을 국세청에 신고하면 포상금을 받을 수 있다.

포상금은 발견한 은닉 자금의 5~20%까지 지급된다. 최대 지급 금액은 20억원이다.

노경목 기자 autonomy@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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