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동료 성폭행' 인정한 前 서울시 직원 [남정민 기자의 서초동 일지]

입력 2021-03-19 05:00   수정 2021-03-19 08:59


지난해 4·15 총선 전날 동료 여성 직원을 성폭행한 혐의를 받는 전직 서울시장 비서실 직원 정모씨가 결국 자신의 혐의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1심에서는 '성추행만 했지 성폭행을 한 적은 없다'고 부인하더니 지난 18일 열린 2심 첫 재판에서 '혐의를 인정하고 피해자와 합의하고 싶다'며 입장을 바꿨습니다.

정씨는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의전 업무를 해오던 인물입니다. 그리고 이 사건의 피해자는 박 전 시장을 성추행 혐의로 고소한 동일인입니다.
法 "박 전 시장의 성추행, 정씨의 성범죄 모두 인정"
정씨에 대한 첫 재판은 지난해 10월 열렸습니다. 당시 1심을 맡았던 서울중앙지방법원 형사합의31부(부장판사 조성필)는 피해자를 직접 증인으로 부르기도 했습니다.

정씨는 계속해서 자신의 혐의를 부인했습니다. 술에 취한 피해자의 신체를 일부 만지긴 했으나 성폭력은 하지 않았다고 주장했습니다. 또 피해자가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PTSD)를 겪게 된 이유는 자신 때문이 아니라 박 전 시장 때문이라고도 했습니다.

이후 법원은 박 전 시장의 성추행과 정모씨의 성범죄가 모두 인정된다는 취지의 판단을 내놔 눈길을 끌었습니다. 재판부는 "피해자가 박 전 시장 밑에서 일하기 시작한 지 1년 반이 지난 시점부터 박 전 시장이 적절치 않은 문자와 사진을 보냈다"며 "피해자가 박 전 시장의 성추행으로 인해 상당한 정신적 고통을 받은 것은 사실"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정씨에 대해서도 "2020년 4월 술에 취해 몸을 가눌 수 없는 피해자를 대상으로 범행을 저질러 죄질이 매우 나쁘다"며 "피해자는 박 전 시장에 대한 성추행을 진술하기 전에도 오랫동안 신뢰했던 피고인으로부터 피해를 당한 것에 대해 배신감, 수치감 등을 느끼며 심한 정신적 스트레스를 겪었다"고 말했습니다.

정씨는 결국 1심에서 징역 3년 6개월의 실형을 선고받고 법정구속됐습니다.
檢 "1심 형량 너무 가벼워" … 2심 돌입
1심에서 징역 8년을 구형했던 검찰은 정씨의 형량이 너무 낮다며 항소했습니다. 그리고 정씨 항소심은 지난 18일 시작됐습니다.

서울고법 형사9부(부장판사 문광섭) 심리로 진행된 2심에선 1심과 비교해 두 가지가 달라졌습니다. 우선 앞에서 말했듯 정씨가 혐의를 모두 인정했습니다.

즉, 자신의 혐의가 모두 유죄로 인정된 1심 판단을 받아들인다는 뜻입니다. 다만 양형에 대해서는 다투겠다고 밝혔습니다. 3년 6개월의 실형이 너무 무겁다는 취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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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 피고인(정씨) 측에서는 당초에 항소장에 사실오인이나 법리오해에 관한 내용도 기재됐었던 것 같은데 그 이후에는 못봤거든요? 사실오인이나 법리오해가 항소이유에 해당하지 않는 것인지 그 점을 명확히 해주세요.
▶변호인 : 공소사실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재판부 : 양형부당으로만 다툰다는 취지신거죠?
▶변호인 : 네.

또 하나 달라진 점은 정씨의 직업입니다. 앞선 1심에서 정씨는 자신의 직업이 '공무원'이라고 답했습니다. 하지만 2심에서 그는 자신이 '무직'이라고 답했습니다. 지난달 16일 서울시 등에 따르면 시는 인사위원회를 열고 정씨의 파면을 결정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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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부 : 피고인 직업은 어떻게 되나요?
▶피고인 : 공무원이었는데 지금은 파면됐습니다.
▶재판부 : 파면이 확정된겁니까?
▶피고인 : 네.
▶재판부 : 그럼 무직입니까?
▶피고인 : 네.
▶재판부 : 무직으로 인정합니다

정씨는 피해자와 합의하고 싶다는 뜻도 밝혔습니다. 1심 재판 때의 정씨는 "피해자에게 사과할 생각이 없느냐"는 취재진의 질문에 묵묵부답으로 일관했습니다.

하지만 피해자 측은 합의할 뜻이 없어 보입니다. 지난 18일 법정에 직접 출석한 피해자측 김재련 변호사는 "피고인 측이 합의 의사를 전달해 피해자에게 알려줬는데, 피해자는 현재까지 합의할 의사가 없다고 한다"고 말했습니다.
'피해 호소인' 등 아직까지 계속되는 2차 가해

정씨는 본인의 혐의를 인정했습니다. 성폭행의 사실관계 자체를 인정했다는 뜻입니다. 하지만 아직까지 사과글이나 자신의 입장을 담은 편지 등을 피해자에게 전달한 행위는 없었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변호사를 통해 '합의하고 싶다'는 의견만 전달했다고 합니다.

법원이 인정했던 또 다른 사건, 고(故)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성추행 의혹에 대해선 아직도 논쟁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법원도, 국가인권위원회도 피해자 측 주장을 사실로 인정하면서 이를 ‘성희롱’으로 규정했음에도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 역시 계속되고 있습니다.

앞서 김 변호사는 "현재 피해자의 얼굴이 담긴 동영상과 실명, 전신사진이 인터넷에 광범위하게 유포된 상태"라며 "피해자는 평범하게 출근해서 주어진 일을 처리하고 동료들과 점심을 먹고 퇴근해 친구들과 시간을 보내는 보통의 삶을 잃었고, 피해자의 어머니는 혹시라도 딸이 나쁜 맘을 먹을까봐 하루도 편히 잠을 자지 못한다. 피해자가 다시 보통의 삶으로 돌아올 수 있도록 2차 가해를 중단해 달라"고 강조한 바 있습니다.

지난 18일 한 시민단체 대표는 "여비서와 그 일당들 공직선거법위반 다수 조항 위반해 법리 검토 중" 이라는 글을 SNS에 올렸습니다. 여권의 일부 인사들은 아직까지 '피해 호소인'이라는 명칭을 쓰고 있습니다.

지난 18일 김태년 더불어민주당 대표 직무대행이 피해자에게 “진심으로 사죄드린다. 당이 부족했다”고 사과했습니다. 하지만 기자회견 직후 취재진과 만난 자리에서 '피해 호소인' 발언으로 논란이 됐던 남인순 의원에 대한 징계 여부 등에 대한 질문이 나오자 "아무것도 모른다"고 말하며 입장 표명을 회피하기도 했습니다.

정씨는 '피해자에게 사죄하려고 노력하고 있다'고 하고, 여권도 '당이 부족했다'고는 하는데 피해자가 이를 진정한 사과로 받아들일 수 있을지에 대해 여전히 의문이 남습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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