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스크 칼럼] 기술패권 시대, 기업이 답이다

입력 2021-03-21 18:46   수정 2021-03-22 02:16

“아주 위험한 상황입니다.”

최근 만난 외국투자기업 최고경영자(CEO)는 한국의 경영 여건을 한마디로 정리했다. “한국 기업과 거래하기 위해 이곳에 투자했지만 언제까지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다”고 했다. 높은 법인세율, 주 52시간과 같은 불합리한 규제, 경직된 노사관계법 등…. 한국을 떠나야 할 이유는 많다고 했다. 오라는 곳도 있다고 했다.

그럼에도 아직 남아있는 이유는 단 하나. 한국의 글로벌 기업이 갖고 있는 서플라이체인(공급망)을 활용하기 위해서다. 대신 본사 지침은 확고하다고 했다. ‘더 이상 한국에 투자하지 않는다. 고용도 늘리지 않는다.’ 한마디로 언제든지 뜰 수 있게 몸집을 가볍게 유지한다는 얘기다.
기술이 안보까지 좌우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에 짓고 있는 반도체 클러스터에는 미국과 일본 기업들이 입주를 타진하고 있다. 세계 메모리 반도체 시장의 ‘큰손’을 고객으로 가까이 두기 위해서다. 일본 정부의 수출규제를 우회하려는 일본 기업도 있다고 한다. 이렇게 한국에 터를 잡는 기업이 늘수록 한국의 반도체 기술패권도 커지는 것이다.

한국 기업들이 수소와 배터리, 바이오, 로보틱스 등 신사업에 공격적인 투자를 하는 것도 긍정적이다. 해외기업 인수합병(M&A)과 지분투자, 전략적 제휴 등으로 촘촘히 글로벌 네트워크를 넓히면서 ‘제조업 코리아’의 위상 역시 확대되고 있다. 한 경제계 인사는 “그나마 기업 덕분에 열악한 경영 조건에도 외국 기업들이 한국을 선뜻 버리지 못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기업 단위에서 할 수 있는 일은 한계가 있다. 글로벌 기술패권 전쟁이 현실로 다가오면서 그간 미·중 갈등으로 ‘어부지리’를 누렸던 한국 기업들은 ‘선택의 시간’을 맞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달 반도체와 전기차 배터리 등을 미국 산업에 필요한 핵심 품목으로 정한 뒤 공급망 평가를 위한 행정명령을 발동했다. 최근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에 5조원을 훌쩍 넘는 대규모 투자를 하겠다고 발표한 배경에는 자국에서 생산하지 않은 제품은 채택하지 않는다는 바이든 정부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정책 영향도 크다. 삼성전자도 투자 규모가 최소 170억달러에 달하는 반도체 공장을 미국에 짓기로 하고 대상 지역을 물색 중이다.
두 발 묶고 뛰라는 정부
이에 맞서 리커창 중국 총리는 최근 열린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10년 동안 단 하나의 칼을 연마하는 정신으로 핵심 과학 기술 프로젝트에 매진할 것”이라며 미국에 날을 세웠다. 전문가들은 “이제는 기술이 경제는 물론 안보까지 좌우하는 시대가 됐다”고 지적했다.

주요 2개국(G2)이 기술패권 전쟁을 예고하자 기업들도 긴장하고 있다. 미국과 중국, 유럽연합(EU) 등이 정부 차원에서 핵심 기술 확보에 나설 경우 경쟁 수준 자체가 달라지기 때문이다.

하지만 기업을 대하는 정부의 시각은 여전히 근시안적이고, 규제 일변도다. 중대재해처벌법처럼 CEO를 형사처벌할 수 있는 법조항이 수두룩하고, 해고자의 노조 가입과 활동을 허용한 노조법 개정안은 그 자체로 ‘기울어진 운동장’이다. 조만간 불어닥칠 정치권의 이익공유제 법안 등은 기업의 존립 기반 자체를 흔들지 모른다.

기업인들은 “여전히 정부의 기업에 대한 시각은 ‘과거’와 ‘국내’에 머물러 있다”고 지적한다. 기술과 과학의 영역엔 ‘정치적 잣대’가 아니라 국제 정세에 대한 냉정한 분석을 토대로 경제적 대응을 하는 게 필요하다. 기술 패권 전쟁에서 살아남기 위해선 기업에서 해답을 찾아야 한다.

sgle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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