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2살 최연소 임원…17년 글로벌 기업 인사총괄 비결

입력 2021-03-23 20:42   수정 2021-05-13 22:11



지난달 26일 오전 7시 서울 성수동 '리박스 컨설팅' 회사에선 '목표·핵심결과 지표(OKR)'의 창시자 브렛 놀즈(Brett Knowles)의 화상강의가 있었다. 참석자는 매출 100억원에서 1000억원에 이르는 국내 중소기업 대표(CEO) 12명. 중기 대표들의 고민인 '한 단계 점프업을 위한 해결책'을 제시하는 시간이었다.

이 강연을 기획한 사람은 다름 아닌 리박스 컨설팅의 정태희 대표(50)다. 정 대표는 "중소기업 대표들의 가려운 곳을 긁어 주기 위해 글로벌 기업 인사담당 임원 17년을 지내면서 쌓은 인맥을 통해 브렛을 초청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정 대표는 글로벌 기업 HR임원을 지내면서 만난 GE의 전 최고 인사책임자(CHO) 수잔 피터스(Susan Peters), 알리바바 CHO였던 루시아 입(Lucia Yip), 아도비 아태총괄 인사담당자였던 사라 커닝햄(Sarah Cunningham), 전 GE 크로톤빌 연수원 임원육성 총괄 킴벌리 클라이만(Kimberly Kleiman), 전 넷플릭스 CHO 패디맥커디(Patty McCord),미국의 여성 리더십 전문가 킴벌리 페이스(Kimberly Faith) 등 5개국 HR전문가들과 수시로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해결책을 얻는다. 정 대표는 "사내 멤버들에게서 해결 할 수 없는 문제는 왓츠앱(WhatsApp), 위 챗(WeChat)톡을 통해 물어보고 있다"며 "앞으로 시대는 네트워크의 싸움"이라고 했다.

올해 초 성수동에 리박스 컨설팅 본사를 런칭한 정 대표를 만났다. 리박스 컨설팅 본사는 직원들의 근무공간이면서 기업 교육장소로도 활용되고 있다. 사무실을 '일할 맛'나는 카페 같은 공간으로 꾸몄다. 정 대표는 함께 일하는 직원을 '휴먼 리스펙트(Human Respect)'하기 때문이라고 했다. 정 대표의 HR 철학이 물씬 묻어났다.


▶리박스 컨설팅(re:BOX )에 대해 소개를 좀 해주세요.
"독일계 자동차 부품기업 콘티넨탈 코리아 HR 부사장을 끝으로 2018년에 창업했어요. 다양한 HR 이슈를 글로벌 네트워크로 해결해 줄 수 있지 않을까 싶어서였죠. 창의적이고 혁신적인 학습 플랫폼과 글로벌 솔루션을 통해 성공적인 리더, 초일류 조직이 되도록 돕는 게 목적입니다. 내가 누구이고, 우리 회사가 어떤 회사인지를 아는게 중요해요. 그래서 우리 회사 슬로건이 '틀을 깨는 솔루션으로 리더와 조직을 트랜스포머하자'에요."(리박스는 한마디로 조직 설계, 교육 컨설팅 전문회사다.)

▶어떤 분들과 함께 일하고 계신가요?

"함께 일하는 13명은 국내 최고 HR 컨설턴트입니다. 삼성 등 국내 대기업, 중소기업, 스타트업에서 HR을 하신 분들이죠. 전략, 미래설계, 리더십, 회복 탄력성, 디자인 등의 분야를 다룹니다."

▶리박스라고 하니까 외국계 기업 한국지사 같기도 합니다.

"제 꿈은 HR 분야의 한국형 맥킨지를 만드는 겁니다. 한국에서 만든 글로벌 기업이 되는 것이죠. HR 컨설팅도 이젠 글로벌 플랫폼이 나와야 합니다. 리박스 사무실엔 누구든 오셔서 아이디어를 나누고 만나는 공간이 되었으면 해서 창의적으로 디자인 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떠한 HR컨설팅이 있나요
"채용부터 퇴사까지 직장인의 A~Z를 컨설팅하는 인사전략, 임원·여성·팀장 등 리더십 교육, 가치창출 성과주의 프로젝트, 미래 트렌드 분석 세미나, 무의식적 편견 극복 워크샵 등을 하고 있습니다."


정 대표는 2000년초 썬마이크로시스템 최연소 인사상무로 재직할 때 다면평가에서 최하등급을 받은 것을 이야기 했다. "저는 최고의 리더인 줄 알았는데 최하등급에 충격을 받았죠. 그때 상사가 혼자 일은 잘했지만 리더십은 바닥이었다고 조언을 해 주더군요." 정 대표는 그동안 정신없이 성과중심으로 달려온 삶을 돌아보게 됐다. 삶의 방향을 바꿨다. "일보다 사람 중심, Doing에서 Being으로 생각을 바꾸게 된 것 같아요."

▶25년 직장생활을 외국계 기업에서만 일하셨습니다.
"미국계 글로벌 건설사 벡텔(Bechtel:1993년~95년)에서 인턴으로 시작했습니다. 외국계 회사였지만 비서는 커피를 타고 복사를 하는게 주된 업무였죠. 커피 하나를 타도 다르게 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커피잔 밑에 형형색색의 색종이를 깔았습니다. 그랬더니, 보스가 나를 다르게 봤습니다. 복사를 할때도 그 당시 복사기가 안 좋아 흐릿하게 나오거나 중간중간에 글자가 안 나오기도 했는데, 그때는 일일이 손으로 글씨를 써서 완성본을 갖다드렸죠. 후에 제가 휴가중 다른 인턴이 그걸 모르고 미완성 복사본을 갖다드렸다가 제가 하나하나 글씨를 써서 갖다 드렸다는 사실이 알려지기도 했습니다."

▶인턴은 그래도 '미생'아니던가요?

"제 인생을 바꾼 사건이 있었습니다. 벡텔의 한국지사장 서재가 너무 지저분해서 출장중이셨을때 서재의 책을 분류해서 정리했습니다. 그렇게 정리를 다 했더니 새벽2시가 됐어요. 다음날 출근을 했더니 지사장께서 저를 임원실로 부르더니 모든 임원들이 기립해서 박수를 치는 겁니다. '지난 7년간 그 어떤 비서도 이 서재정리를 안했는데 우리 인턴이 바꿨다'면서 저를 정규직으로 뽑아주셨습니다. 그 자리에 있던 임원들은 다른 기업 임원들을 만날 때마다 '우리 회사에 이런 인턴이 있어'하고 이야기를 하곤 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스카웃 제의라도 왔던가요

"그 이후 미국계 디젤엔진 기업 커민스(Cummins:1995년~97년)에서 스카웃 제의가 왔습니다. 그곳에는 인사팀이 없어서 HRD(인적자원개발), HRM(인적자원관리)을 새롭게 구성했어요. HR담당자는 무에서 유를 만드는 사람이라는 것을 그때 알았습니다. 당시 보스가 평가시스템을 새롭게 만들 것을 요청했는데, 얼굴도 모르는 3M 인사상무를 찾아가 평가제도를 좀 달라고 당돌하게 부탁하기도 했었죠."


캐나다에서 공부를 한 정 대표는 HR이 홈룸(Home room)의 약자인 줄 알았다고 했다. 'HR의 H도 제대로 몰랐던' 정 대표는 인턴시절 HR을 제대로 알기위해 대한상공회의소에서 진행한 월 40만원(그 당시 연봉이 1400만원)강의를 수강했다. 사원, 대리, 과장, 부장, 임원이 되는 직무기술서를 배우는 과정이었다. "그 직무기술 커리어북에는 '대리가 되려면 대학원을 나와야 하고, HR 매니저가 되려면 노동법을 알아야 한다' 등의 내용이 담겨 있었죠. 그 과정 덕분에 대학원에서 HR의 깊이있는 공부를 할 수 있는 계기가 됐어요."

▶썬에는 어떻게 입사하게 됐나요
"인터넷 붐이 일던 1990년대 말 어느날 썬에서 과장급 입사 제안을 해 왔어요. 직장생활 3년만의 일이죠. 비행기 티켓을 줄테니 금요일 저녁 홍콩 아·태사무소에 가서 면접을 보고 오라는 거예요. 이후 썬에서 일하는 도중 HR팀 상사가 퇴사를 하면서 혼자서 일을 다 도맡아야 했죠. 근데 때마침 BAT(British American Tobacco)에서 또 입사 제의가 들어왔어요. 거기선 새벽 2시까지 일하면서 보상 업무를 배우게 됐습니다. BAT에서 6개월 정도 근무했는데 썬에서 다시 연락이 왔습니다."

▶제발로 나간 사람에게 연락이 왔다고요
"썬에서 공석인 상무로 입사할 것을 제안했어요. 빅 점프를 한거죠. 그때 나이가 32살이었어요. 이후 185개국 서비스 사업본부 인사총괄까지 맡게 됐죠."(썬에서 정 대표는 다른 글로벌 IT기업보다 낮았던 임금인상을 미국 본사에 제안했다. 기업문화 관련해서는 선택적 복지제도, 대학생 육성 프로그램 '썬스타', 밀레니엄 탤런트 신입사원 육성제도 등의 틀을 만들었다.)

▶썬도 글로벌 기업인데, GE에는 어떻게 들어갔나요
"2010년 썬이 오라클에 합병됐다는 소식을 호주에서 들었어요. 오랜 해외생활로 몸도 마음도 지쳤고, 어머니께서 암에 걸리셔서 한국에서 잡(job)을 잡고 싶었죠. 어머니 치료를 위해서 찾은 곳에서 GE코리아 인사관계자를 만나게 된 게 계기였습니다. 금요일 인터뷰를 했는데 다음주 월요일부터 출근을 하라는 거예요. 그만큼 GE는 엄격했습니다. 7년간 GE에서 일하면서 한국식 인사제도를 만들었죠. GE는 성과중심의 회사였기에 입사 6개월만에 전무로 승진할 수 있었습니다. GE의 인재연수원이라 할 수 있는 크로톤빌에서 열리는 인재 육성 프로그램 세션C(Session C)를 이멜트 회장 앞에서 7번이나 하고 퇴사했죠."

▶GE출신이라 다른 곳에서도 콜이 왔을 것 같은데
"독일의 자동차부품회사 컨티넨탈 코리아(Continental Korea)에서 입사 제안을 했습니다. 하지만, 그 당시 몸과 마음이 너무 지쳐서 좀 쉬고 싶었죠. 그런데, 컨티넨탈에선 '쉴만큼 쉬고 오라'는 거예요. 확실히 미국 회사와는 달랐어요. 8개월간 스위스 알프스를 오르고 여행을 하면서 일을 멈췄죠. 멈추니까 비로소 보이더라구요. 일 잘하는 리더보다 좋은 리더가 되고 싶었어요. 두번째 제 삶이 시작된 겁니다. 컨티넨탈 차이나에서 90분간 면접을 봤는데, 면접관 명함에 HR을 휴먼 리스펙트로 표현해 놨더라구요. 바로 이 회사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동안 미국계 회사만 경험했던 정 대표는 독일계 회사를 알 수 있었던 기회였다고 했다. 특히 노조가 있는 회사에서 HR 부사장을 하면서 노동조합에 대한 공부를 할수 있었던 것이 행운이라고 했다.)


25년간 HR을 했던 정 대표에게 최근 HR 트렌드를 물었다. 그는 "최근에는 인사담당자의 역할이 데이터 관리자(people data officer), CCO(chief culture officer), 혁신전문가(Innovation officer) 등으로 세분화 되고 있다"며 "과거 직급 중심에서 일하는 직책 중심으로 바뀌고 있다"고 전했다. HR을 하고 싶은 대학생들에게는 채용, 온보딩, 평가, 육성, 승진, 교육 등의 인사 사이클 기본기를 익혀두는 것이 필요하다고 했다. 특히 코로나19시대 온라인 회의가 보편화 되면서 말하기와 쓰기의 역량이 더욱 중요해지고 있다고 강조했다.

인생 2막을 살고 있는 정 대표의 인생 롤모델은 유원식 기아대책(국제구호개발 NGO) 회장이다. "유 회장은 썬, 오라클, HP코리아 대표로 임원만 30년을 지냈던 분이신데 은퇴 후엔 가난하고 약한 이들을 위해 험한 일도 마다하지 않고 하셔요. 정말 사람 중심의 리더죠, 업무적으로 훌륭한 업적을 이룬 사람은 많지만 은퇴 후 근사하게 사는 사람은 드문 것 같아요. 인사를 했던 저도 그런 사람이 되고 싶어요."
공태윤 기자 true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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