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호사 3만명…법원 "연고 없는 판사 없소?"

입력 2021-03-25 17:50   수정 2021-04-05 16:50


변호사 수가 늘어나면서 법원이 재판부 재배당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법원에선 판사와 개인적인 연고가 있는 변호사가 선임되면 해당 사건을 다른 재판부로 보내는 것이 원칙이다. 그런데 변호사 수가 급증하면서 서로 얽히고설키는 경우가 많아져 재배당해야 하는 사례가 자주 발생하는 것이다. 특히 재판부가 많지 않은 민사소송의 경우 마땅한 재판부를 찾지 못해 재판이 늦어지는 사례까지 나오고 있다.
뒷말 나올까 재배당 요청

대법원의 공직자윤리위원회 권고의견(제8호)과 법관 등의 사무분담 및 사건배당에 관한 예규(제14조) 등에 따르면 법관과 개인적인 연고관계가 있는 변호사가 소송 당사자의 법률대리인으로 선임되면 재판장(판사)은 사건 재배당을 요청할 수 있다. 예규 등에선 연고관계의 범위를 ‘개인적 관계’라고만 적고 구체적으로 명시하진 않는다. 세세한 기준을 마련하면 ‘기재된 범위를 벗어난 사례는 괜찮다’는 인식을 바탕으로 오히려 악용될 우려가 있다고 판단해서다.

대법원은 사건을 재배당해야 하는 기준을 ‘2촌 이내 친족’으로 권고하고 있긴 하다. 업계에선 부부 법조인이나 부모·자식이 모두 법조인인 경우가 꽤 있다. 하지만 이는 최소한의 기준일 뿐 실제 소송 일선에선 배우자뿐 아니라 고등학교 동문과 대학교·사법연수원 동기, 같은 재판부에서 근무했던 전관 출신 변호사들까지 더욱 넓게 연고관계를 해석하고 재배당을 신청한다.

문제는 변호사 수가 지난 5년 사이에만 1만 명 가까이 급증하면서 재판부와 다양한 연고로 얽히는 사례가 많아졌다는 것이다. 서울고등법원의 한 부장판사는 “사건 재배당 요구가 많아 골머리를 앓는다는 말이 법원 여기저기서 나온다”며 “재배당을 안 하면 처벌하는 식의 법률 조항은 없지만 뒷말이 나오지 않기 위해 더 예민하게 사안을 본다”고 설명했다. 연고가 있는 전관 변호사의 선임으로 인한 공정성 논란과 함께 최근 법관 개인에 대한 인신공격이 심해지는 사회적 분위기도 영향을 미치는 것으로 풀이된다.

재배당 신청이 들어오면 각급 법원의 수석부장판사는 소송 사건을 맡을 재판부를 다시 찾는다. 컴퓨터 무작위 방식으로 재배당에 나서는데 만약 재배당 재판부가 또다시 재배당을 요청하면 고민이 깊어진다. 서울중앙지법의 한 판사도 “두 번, 세 번 재배당하느라 사건 진행이 너무 늦어지는 경우도 많다”며 “이럴 땐 어쩔 수 없이 고교 동문 정도는 넘어가기도 한다”고 말했다.
전담 재판부는 적어 재배당 더 어려워
최근에는 단일 소송에 여러 법무법인(로펌)을 한꺼번에 선임하는 사례도 많다. 그러다 보니 미처 파악하지 못했다가 나중에 연고가 드러나 중간에 재판부가 바뀌는 불상사도 발생한다. 서울 서초동의 한 변호사는 “우리 로펌은 문제가 없었는데 또 다른 로펌에 해당 재판장의 딸이 근무하고 있어 사건이 재배당된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그나마 형사재판은 상황이 낫다. 서울중앙지법에는 재정합의부와 항소부를 제외하고도 형사합의부가 14개 있다. 그러나 민사재판의 노동 전담 재판부처럼 재판부 수가 적으면 재배당 시 사건을 맡을 재판부가 결국 1~2곳으로 추려진다. 서울중앙지법에 노동 전담 재판부와 지식재산권 전담 재판부는 각기 3개, 부동산 전담 재판부는 단 2개뿐이다.

서울고등법원도 마찬가지다. 민사 노동 전담 재판부는 3개, 지식재산권 전담 재판부는 2개다. 한 노동 사건 전문 변호사는 “의뢰받은 사건이 연고관계에 걸려 재배당되면 대안이 마땅치 않을 때가 많다”고 말했다.

남정민 기자 peux@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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