크레디트스위스(CS), 노무라 등 글로벌 투자은행(IB)들이 지난 26일 뉴욕증시에서 발생한 블록딜(대량 매매) 사태로 비상이 걸렸다. 지난주 미국 월가를 발칵 뒤집어놓은 대규모 블록딜의 배후에는 한국계 펀드매니저 빌 황(사진)이 연루된 것으로 밝혀졌다. 빌 황은 2012년 내부자거래 혐의 등으로 월가의 ‘블랙리스트’에 올랐던 인물이지만 글로벌 IB들이 수수료 유혹을 못 이기고 시장 ‘큰손’인 그에게 대규모 차입 거래를 할 수 있게 해 줘 사달이 나고 말았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빌 황과 거래한 은행은 명성을 구긴 것은 물론 대형 손실도 피하기 어려울 전망이다.
미국 뉴욕증시에서는 지난 26일 대형 미디어와 중국 기술주 위주로 190억달러(약 21조5000억원) 규모의 블록딜이 쏟아져 나오면서 관련 기업의 시가총액이 350억달러가량 증발했다. 블록딜은 대량 주식을 시간외 등에서 매수자와 매도자가 서로 협정한 금액에 사고파는 거래를 뜻한다. 골드만삭스 창구에서 개장 전과 장 중을 포함해 총 세 차례에 걸쳐 106억달러의 블록딜이 발생했고, 모건스탠리 창구를 통해서도 장 중 40억달러씩 두 차례에 걸쳐 매매됐다.
미 증시는 이 대규모 매도세 영향으로 정규 시장까지 흔들렸다. 비아콤CBS와 디스커버리가 27% 폭락 마감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하루 최대 낙폭이었다. 주간 하락폭은 50%에 육박한다. 중국 기업인 바이두와 텐센트 등도 지난주 20~30% 급락했다.외신들은 이번 사태의 배후에 빌 황이 이끄는 아케고스캐피털이 있다고 지목했다. 아케고스는 골드만삭스 등 글로벌 IB로부터 레버리지를 일으켜 투자 원금의 몇 배에 달하는 돈을 주식에 투자했다. 중국 기술주 등이 급락하자 IB들은 마진콜을 요구했다. 주가 하락으로 원금 손실의 위험이 발생하자 아케고스에 증거금을 추가로 내라고 요구한 것. 하지만 아케고스는 이를 마련하지 못했다. 결국 IB들은 블록딜을 통해 아케고스가 보유한 주식을 강제로 처분했다. 주식은 싼 값에 팔렸다. 주식 매각 대금은 아케고스에 빌려준 금액에 못 미쳐 IB들은 대규모 손실을 떠앉게 됐다.
빌 황은 이후 아케고스캐피털매니지먼트로 이름을 바꿔 가족 자산 등을 투자하는 ‘패밀리 오피스’ 형태로 운용을 이어 나갔다. 주요 은행들이 막대한 수수료를 안겨주는 그와 거래를 재개하면서 블랙리스트 명단에서도 지워졌다.
그는 투자 원금보다 몇 배 많은 레버리지를 일으켜 롱쇼트 전략으로 펀드를 운용했다. 현재까지 아케고스 관련 매도 물량은 200억달러가 넘고, 300억달러에 달할 것이란 분석도 나오고 있다.
한편 이번 사태로 지난주 주가가 폭락한 중국 텐센트뮤직은 역대 최대 규모의 자사주 매입을 발표하기도 했다. 텐센트뮤직은 미국 예탁증서(ADS)를 대상으로 최대 10억달러 자사주를 매입하겠다고 발표했다. 텐센트 등 중국 기술주는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의 감사기준 강화에 블록딜까지 겹치며 추가 매도 리스크가 커지고 있다.
설지연 기자 sjy@hankyung.com
관련뉴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