美·日 반도체 M&A 무산시킨 中…제재 복수?

입력 2021-03-30 17:15   수정 2021-03-31 03:36


중국을 겨냥한 미국의 제재 불똥이 일본 기업으로 튀었다. 미국의 수출 규제에 중국이 심사를 지연하는 방식으로 맞서면서 일본 반도체기업의 대형 인수합병(M&A)이 끝내 무산됐다.

세계 최대 반도체 장비 회사인 미국 어플라이드머티리얼즈는 일본 고쿠사이일렉트릭 인수를 포기한다고 29일(현지시간) 발표했다. 어플라이드는 2019년 7월 세계 12위 업체인 고쿠사이를 글로벌 사모펀드(PEF) 운용사 콜버그크래비스로버츠(KKR)로부터 사들이기로 합의했다. 당시 2위 네덜란드 ASML과 매출 차이가 7억달러(약 7939억원)로 좁혀져 1위 유지를 위한 승부수란 분석이 나왔다.

일본 공정거래위원회는 “두 회사의 주력 분야가 다르기 때문에 경쟁을 실질적으로 제한할 가능성이 없다”며 일찌감치 합병을 승인했다. 한국과 미국, 유럽연합 등 다른 나라 반독점당국도 지난해 6월 이전에 같은 결론을 내렸다.

이해당사국의 당국이 모두 합병을 승인한 이후에도 중국 정부는 9개월 넘게 심사를 끌었다. 합병 절차가 길어지면서 어플라이드는 지난 1월 인수가격을 22억달러에서 35억달러(약 3조9638억원)로 50% 이상 올려줘야 했다. 코로나19 확산 이후 반도체 업황이 크게 호전됐기 때문이다.

인수 시한도 세 차례나 연장했다. 그런데도 중국 당국이 결론을 내지 않자 어플라이드는 거래를 마무리하고 KKR에 1억5400만달러의 위약금을 무는 쪽을 택했다.

중국이 승인 심사를 지연시킨 것은 미국산 반도체 제조장비의 중국 수출을 금지한 미국 정부의 수출 규제 때문이라고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분석했다. 고쿠사이가 어플라이드에 넘어가면 중국 기업의 반도체 장비 조달이 더 어려워질 것으로 우려했다는 것이다.

독점금지법 전문가인 가와지마 후지오 고베대 교수는 “중국이 순수한 경쟁 원리가 아니라 산업정책적인 고려를 내세워 어플라이드에 자산 매각 등 추가 조치를 요구하면서 거래를 장기화시켰다”고 지적했다.

중국의 승인 심사 지연으로 정보기술(IT) 기업의 대형 M&A가 좌초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미국 퀄컴은 2016년 세계 2위 자동차용 반도체기업인 네덜란드 NXP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440억달러에 달한 인수 금액은 당시 기준으로 반도체업계 사상 최대 규모였다. 하지만 중국 당국이 승인하지 않아 2018년 7월 거래가 무산됐다. NXP는 삼성전자의 글로벌 M&A 후보로 거론되고 있다.

미국 시스코도 2019년 7년 통신기기업체인 아카시아커뮤니케이션즈를 인수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중국의 승인 심사가 지연되면서 1년 반 만인 이달에야 인수 작업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그 사이 시스코는 인수가격을 45억달러로 70% 높여줘야 했다.

한편 세계 최대 차량용 반도체 회사인 일본 르네사스일렉트로닉은 기자회견을 통해 지난 19일 발생한 화재로 인한 생산 차질이 예상보다 길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회사 측은 한 달 이내로 예상했던 화재 수습 기간이 3~4개월로 길어질 것으로 내다봤다. 화재로 재가동이 불가능하게 된 장비가 애초 집계한 것보다 두 배 이상으로 늘었다는 이유에서다.

시바타 히데토시 르네사스 사장은 “생산은 예상한 대로 한 달 안에 재개할 가능성이 높아졌다”면서도 생산능력을 화재 이전 수준으로 회복하는 데는 3~4개월이 걸릴 것이라고 했다.

일본 정부는 대만 반도체업체에 SOS를 쳤다. 가지야마 히로시 경제산업성 장관은 내각회의 후 기자회견을 열어 “르네사스 공장 화재와 관련해 일부 대만 반도체기업에 대체 생산을 요청했다”고 밝혔다.

이번 화재로 르네사스 이바라키현 나카공장은 가동이 전면 중단됐다. 이곳은 르네사스 반도체의 40%를 생산하는 주력 공장이다. 생산하는 반도체의 60%가 차량용으로 도요타와 닛산자동차에 납품한다. 산케이신문은 자동차업체의 추가 감산이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했다.

도쿄=정영효 특파원 hugh@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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