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치 보는 엔터·방송가, 짜릿했던 '중국의 맛' 독 될까 [연계소문]

입력 2021-04-03 05:17  


'차이나 머니'에 웃던 연예 기획사, 콘텐츠 제작사들의 몸이 한껏 움츠러들었다. 중국의 무리한 문화 동북공정 시도에 들끓던 여론은 국내 대중문화계를 조금씩 잠식하려 들던 중국 자본에 완벽하게 등을 돌렸다. 업계에서는 중국 이슈에 극도로 말을 아끼고 있다. 단, 어느 때보다 날카롭게 촉을 세우고 있다. 짜릿했던 '중국의 맛'이 이제는 독이 되는 모양새다.

최근 방영 2회 만에 드라마가 폐지되는 방송사 초유의 사태가 벌어졌다. 이유는 역사 왜곡. 그간 역사를 기반으로 한 드라마나 영화는 수차례 왜곡 이슈에 부딪히곤 했다. '허구'라는 전제를 내세울지라도, 올바른 역사관을 해칠 수 있다는 점에서 충분한 문제의식을 갖고 창작자의 권리만큼이나 콘텐츠가 갖는 영향력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 따랐다.

논란이 된 SBS '조선구마사'는 실존 인물인 태종, 충녕대군(훗날 세종)을 그대로 드라마에 차용하면서 이들을 폄훼하는 연출로 뭇매를 맞았다. 태종을 폭군으로 묘사하는가 하면, 충녕대군이 서양 신부의 시중을 들게 하는 장면과 목조(이성계의 고조부)를 비하하는 대사를 삽입했다. 특히 분노를 산 것은 시대 배경이 조선임에도 불구하고 중국 소품과 음식을 대거 등장시켰다는 점이었다. 방영 중단을 요구하는 국민 청원이 등장했고, '조선구마사' 광고사들에 대한 불매 운동까지, 행동하는 시청자들의 힘은 결국 방송을 폐지시켰다.

'조선구마사'의 역사왜곡 및 중국풍 연출의 여진으로 민주화 운동 시기였던 1987년을 시대 배경으로 하는 JTBC '설강화', 중국 정부 선전 소설이라는 의혹이 제기된 작품을 원작으로 하는 '아침이 밝아올 때까지' 등 방송을 앞두고 있는 드라마들이 줄줄이 대중의 심판대에 오르고 있다.


최근 중국이 김치, 한복, 갓, 삼계탕 등 한국의 전통문화를 자국의 것이라 주장하는 이른바 '문화공정'을 지속적으로 시도하고 있는 바, 대중은 더욱 날카롭게 미디어를 감시하고 있다. 다수의 방송사가 미디어의 영향력을 간과한 채 중국 자본이 유입된 콘텐츠를 아무런 장치 없이 내보낸 것이 화근이 됐다. 막대한 제작비를 감수하기 위해 중국의 자본력에 기댈 수밖에 없는 드라마 업계의 사정을 감안하더라도, 중국 기업의 제품을 버젓이 PPL로 '홍보'해주는 수단으로 전락해서는 안 된다는 지적이다.

tvN '여신강림'에서는 주인공이 편의점에서 중국 기업의 인스턴트 훠궈를 먹었다. 편의점 유리창에는 중국어가 잔뜩 적힌 포스터들이 붙여져 있었다. 또 버스 정류장의 광고판에는 중국 이커머스 플랫폼인 징동닷컴의 광고가 내걸렸다. tvN '빈센조'에서는 송중기가 중국 기업의 즉석 비빔밥을 먹어 시청자들의 빈축을 샀다. 이는 곧 "한국 드라마는 중국 돈 없이 못 만든다", "비빔밥은 잔반 처리 음식" 등 중국 네티즌들의 조롱거리가 됐다.

치솟는 제작비를 감당해야 하는 콘텐츠 기업 및 글로벌 시장을 타깃으로 삼는 연예 기획사들에게 중국은 그야말로 '달콤한' 존재다. 거대한 규모의 투자를 유치할 수 있고, 막강한 소비력을 자랑하는 중국 시장을 토대로 해외 진출의 기반을 탄탄하게 다질 수도 있다.

중국의 3대 IT 기업 중 하나인 텐센트는 한국의 대중문화 영역에서 몸집을 불리고 있다. 텐센트는 지난해 JTBC 드라마를 제작하는 자회사 JTBC 스튜디오에 1000억 원을 투자했다. 한국의 주요 가요 기획사들과는 일찍이 협업 관계를 맺었다. YG엔터테인먼트가 중국 진출을 꿰하던 2014년 양사는 MOU를 체결했다. 이후 텐센트는 YG에 투자를 감행하며 주요 주주로 참여해왔다. 방탄소년단을 탄생시킨 빅히트엔터테인먼트의 2대 주주인 넷마블의 3대 주주 또한 텐센트다.

JYP는 중국법인 JYP 차이나를 통해 텐센트뮤직엔터테인먼트와 함께 6인조 현지화 그룹 보이스토리를 데뷔시켰고, 양사는 지난달 전략적 협업을 체결했다. 이보다 앞서 SM엔터테인먼트도 텐센트와 중국 음악 유통 및 마케팅 관련 파트너십을 체결한 바 있다.

특히 아이돌 산업을 하는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중국은 '큰 손' 소비 국가로 꼽혀 중요도가 높다. 관세청에 따르면 지난해 1~11월 음반 수출액은 1억7000만 달러(약 2030억 원)였다. 전년도보다 무려 94.9%나 증가한 수치였다. 일본, 미국에 이어 음반수출액이 세 번째로 높은 나라가 바로 중국이었다. 한한령 및 문화 동북공정 등의 이슈가 있다 하더라도 변함없는 K팝의 주요 소비 국가인 것이다.

이에 각 엔터사에서는 글로벌 진출 전략 상 중국인 멤버를 그룹에 포함시키곤 했다. 당장 올해 방송을 앞둔 Mnet의 새 걸그룹 오디션 '걸스플래닛999'만 해도 한국, 일본, 그리고 중국에서 참가자들을 받고 있다.


그러나 부작용 또한 만만치 않다. 중국과 관련한 사회적 문제가 불거질 때마다 중국 출신 K팝 아이돌들이 나서서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다. 현재 한국에서 활발히 활동하고 있는 이들도 예외는 없다.

최근에는 엑소 레이, 에프엑스 빅토리아, 에버글로우 왕이런 등이 강제노동 문제가 제기된 중국 신장 위구르자치구의 면화 생산을 지지한다고 밝혀 논란이 됐다. 현재 중국 내에서는 H&M, 나이키, 아디다스 등에 대한 불매 바람이 불고 있다. 이 브랜드들이 인권 탄압에 반대하며 해당 지역에서 생산한 면화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선언했기 때문. 그 가운데 갓세븐 잭슨은 아디다스와 협업 관계를 끊겠다는 성명을 발표했고, 빅토리아도 H&M과의 모든 계약을 종료했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는 레이, 빅토리아, 프리스틴 출신 주결경, 우주소녀 성소·미기·선의 등 중국 출신 아이돌들이 대거 '항미원조 작전 70주년을 기념한다'는 글을 SNS에 올리는 일도 있었다. 한국의 트레이닝 시스템 하에서 데뷔해 인기와 명성을 얻은 이들이 결국 중국 정부의 스피커 역할을 한다는 점에서 비난을 피하기 어려웠다.

현재 업계는 '중국'이라는 말에 잔뜩 긴장하고 있다. 마마무의 소속사 RBW는 지난달 공식 SNS에 중국어와 영어로 "우리 회사는 지속적으로 하나의 중국 원칙을 고수해왔다"며 '하나의 중국' 지지글을 올렸다가 논란이 일자 이를 급히 삭제하고 사과했다. 이후 개인 직원의 실수였다고 해명했지만 네티즌들은 여전히 불편함을 드러내고 있다.


급기야 '차이나 머니'를 거절했다고 자랑하는 사례도 등장했다. '쇼미더머니', '언프리티 랩스타', '프로듀스 101', '믹스나인' 등을 만든 Mnet, YG 출신 한동철 PD는 MBC와 새로운 아이돌을 제작한다고 전하며 중국의 100억 투자를 거절했다는 내용의 보도자료를 언론사에 뿌렸다. 한동철 PD 측은 "중국 투자사 측의 자본을 받아들이면 제작과 기획에 있어 그들의 적당한 요구를 들어줘야 한다. 사소하게는 PPL부터 시작해서 크게는 프로그램의 큰 맥락까지 그들의 의견을 반영해야 한다"고 설명했다.

'프로듀스 101'로 탄생한 프로젝트 그룹 아이오아이에도 중국 출신 멤버가 있었고, YG의 주요 주주엔 중국 텐센트가 있었다. 그러나 이제는 반대로 중국의 투자를 받지 않는다며 선을 긋고 홍보하는 꼴이라니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스리슬쩍 비빔밥 장면을 다시보기에서 삭제한 '빈센조'까지, '조선구마사' 사태의 학습 효과가 조심스레 하지만 어느 때보다 분주하게 퍼져나가고 있다. 언뜻 '나만 아니면 돼'라고 느껴지는 움직임이 안타깝기만 하다.

김수영 한경닷컴 기자 swimmingk@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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