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반도체 잡아야겠다"…美, '핵폭탄' 던졌다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1-04-03 16:32   수정 2021-04-03 17:22


지난 1일 미국의 유력 경제신문 '월스트리트저널(WSJ)'이 글로벌 반도체 산업에 핵폭탄급 뉴스를 던졌다. WSJ은 관계자들을 인용해 "미국 마이크론과 웨스턴디지털(WD)이 각각 일본 키옥시아 인수를 검토 중"이라고 보도했다. WSJ은 "늦은 봄엔 딜(deal)이 체결될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키옥시아는 세계 2위 낸드플래시 기업이다. 지난해 4분기 기준 점유율은 19.5%다. 미국 마이크론의 점유율은 11.2%로 세계 5위고 웨스턴디지털은 14.4%로 세계 3위다. 마이크론이나 웨스턴디지털 둘 중에 한 곳이 키옥시아를 가져가면 점유율은 단숨에 세계 1위 삼성전자(32.9%)와 비슷한 수준까지 올라간다.

이 때문에 국내 반도체 업계에선 "마이크론이나 웨스턴디지털이 키옥시아 인수를 추진하는 게 사실이라면, '반도체 패권'을 노리는 미국 정부의 입김이 작용했을 것"이란 분석이 나온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도 최근 미국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500억달러(약 56조원)를 투자하겠다고 발표했다. 한국이 1위를 지키고 있는 낸드플래시 산업도 예외가 될 수 없다는 분석이 나왔다.
국내 업계 "마이크론과 WD가 보유한 현금 적어서 인수 불가능"
하지만 글로벌 반도체업계에선 "미국 마이크론이나 웨스턴디지털이 키옥시아의 대규모 지분을 인수해 경영권을 가져가는 건 사실상 불가능하다"는 평가가 우세하다. 마이크론, 웨스턴디지털이 보유한 현금이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다.

WSJ에 따르면 키옥시아의 기업가치는 2018년 매각 당시에 180억달러(약 20조3000억원)였지만 현재 300억달러(약 33조9600억원)로 올랐다. 인수하는 데 300억달러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마이크론의 2020년회계연도말(2020년 10월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자산'(단기투자상품 포함)은 81억4200만달러(약 9조2000억원)다. 마이크론이 당장 동원할 수 있는 자금은 인수 예상금액(300억달러)의 27.1%에 불과하다.

웨스턴디지털이 가진 돈은 더 부족하다. 웨스턴디지털의 2020년회계연도말(2020년 6월말) 기준 '현금 및 현금성 자산'은 30억4800만달러(약 3조4400억원) 수준에 그친다. 키옥시아를 인수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수준이다.

물론 다수 투자자들과의 연합을 통해 지분 인수를 시도할 수 있지만 가능성은 높지 않다는 분석이 나온다. 일부 지분 인수 정도가 현실성 있는 시나리오로 거론된다. 국내 반도체기업 관계자는 "마이크론이나 웨스턴디지털은 돈이 충분하지 않은 기업"이라며 "지분 일부 인수를 타진할 가능성은 있지만 완전 인수를 추진하기엔 여력이 부족하다"고 밝혔다.
키옥시아는 일본 반도체의 '마지막 자존심'
키옥시아가 사실상 마지막 남은 일본의 메모리반도체업체라는 점에서도 미국 업체들의 인수는 쉽지 않을 전망이다. 2017년 경영난을 겪던 도시바는 메모리사업부 지분을 시장에 내놨다. 2018년 베인캐피털이 주도한 한·미·일 컨소시엄이 49.9%를 가져갔다. 이름도 키옥시아로 바꿨다. SK하이닉스가 한·미·일 컨소시엄에 참여했다. 현재 4조원 규모 키옥시아의 전환사채(지분 15% 상당)를 보유 중이다.

도시바가 지분을 내놨지만 경영권까지 던진 건 아니다. 2018년 매각으로 도시바의 키옥시아 지분율은 40.2%로 떨어졌다. 하지만 우호 지분으로 평가되는 일본 기업 '호야'가 9.9%를 보유 중이다. 일본계가 50.1%의 지분을 보유하며 경영에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 것이다.

더군다나 각 국이 '반도체 패권'을 향한 치열한 경쟁을 벌이고 있는 상황이다. 일본 정부 입장에서도 키옥시아 매각이 달갑지 않을 수 있다. 최근 일본 언론들은 "일본 정부가 TSMC 같은 해외 반도체기업 공장을 유치하는 데 그치지않고 반도체 산업 경쟁력 강화에 나서야한다"고 지적하고 있다. 일본 정부가 잃어버린 반도체 경쟁력을 되찾기 위해 자국 기업 육성에 적극 나서야한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WSJ 기사를 반박하는 보도에 좀 더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경제 전문 통신사 블룸버그는 정통한 소식통 4명을 인용해 "키옥시아가 해외 인수자와 협의하는 것보다 올 여름께 기업공개(IPO)를 추진하는 방향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보도했다. 또 "키옥시아는 IPO가 베인캐피탈 등을 포함한 주주들의 가치 실현을 위한 가장 유망한 경로라고 보고 있다"고 덧붙였다.

키옥시아 역시 "추측(WSJ의 보도에 대해)에 대해선 언급하지 않겠다. IPO를 위한 적절한 시기를 계속 모색할 것"이란 입장을 냈다.
낸드 업체간 합종연횡은 본격화 전망
미국 마이크론, 웨스턴디지털의 키옥시아 인수 보도는 '실현 가능성이 낮다'는 쪽으로 정리되는 분위기다. 하지만 반도체업계에선 "낸드플래시 산업 재편은 지속적으로 이어질 것"이란 전망이 우세하다.

삼성전자, SK하이닉스, 마이크론 등 '뚜렷한 3강 구도'가 형성된 D램 시장과 달리 낸드플래시는 '혼전' 양상을 보이고 있다. 삼성전자가 32.9%의 점유율로 1위를 지키고 있지만 2위 키옥시아(19.5%)부터 3위 WD(14.4%), 4위 SK하이닉스(11.6%), 5위 마이크론(11.2%), 6위 인텔(8.6%)이 치열하게 경쟁 중이다. 1위와 2위를 제외하고 3~6위는 매 분기 엎치락뒤치락하는 상황이다.

중국의 메모리반도체 업체 YMTC가 언젠가는 낸드플래시 시장의 주요 플레이어로 들어올 것으로 예상되는 것도 변수다. 현재는 코로나19와 미국의 반도체 수출 규제로 최근 중국의 반도체 굴기 전략이 주춤한 상황이다. 하지만 낸드플래시는 D램보다 기술 장벽이 비교적 낮기 때문에 YMTC가 중국 정부의 지원을 등에 업고 몇 년 안에 시장에 진입할 것으로 예상된다. YMTC는 지난해 "128단 낸드플래시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한 바 있다.

업체 간 경쟁이 치열한만큼 '낸드플래시 공급 과잉' 상황도 수 년 간 이어지고 있다. 제품 가격도 제자리걸음이다. 시장조사업체 디램익스체인지에 따르면 낸드플래시 범용 제품인 128Gb 16GX8 MLC 제품 가격은 3월 말 기준 4.2달러로 2020년 11월 이후 변동이 없다. 지난해 3월 4.68달러를 찍고 내리막을 걸은 가격이 좀처럼 반등에 성공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이 때문에 낸드플래시업체들도 내심 '산업 재편'을 원하는 분위기다. D램 시장처럼 경쟁업체 수가 3개 수준으로 압축돼야 수요에 맞춰 공급을 조절하며 제품 가격을 적정한 수준으로 유지하는 게 가능하기 때문이다. 움직임도 있다. SK하이닉스가 지난해 인텔 낸드플래시 사업부를 90억달러(약 10조원)에 인수하기로 한 게 대표적인 사례로 꼽힌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5G, AI(인공지능) 등의 기술 발전으로 낸드플래시 수요는 점점 커지고 있다"며 "규모의 경제를 원하는 낸드 업체간 합종연횡이 본격화할 것"이라고 전망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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