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당에서 대통령이 사라졌다…레임덕 징후인가 [여기는 논설실]

입력 2021-04-05 09:00   수정 2021-04-05 09:15


전두환 정권 때부터 임기 말 대통령과 여당 관계는 항상 껄끄러웠다. 껄끄러운 정도가 아니라 원수처럼 된 경우도 적지 않다.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임기 말만 되면 여권 여기 저기서 권력과 관련된 비리들이 터져 나오기 마련이었다. 정권 초·중반만 해도 장막 뒤에 있던 비리들이 권력의 힘이 빠지기 시작하면 여기 저기서 고개를 들이민 것이 되풀이됐다.

여론이 악화하고 민심이 돌아서면서 대통령 지지율이 떨어지는 것도 정권마다 반복됐다. 그렇게 해서 레임덕이 시작된다. 보통 대통령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지면 레임덕 신호로 본다. 20%대로 내려가면 완연한 레임덕이다. 공무원들의 복지부동과 차기 정권 줄대기 현상이 나타난다. 공직사회에서 정권 핵심부의 정책에 브레이크를 거는 일도 발생한다. 정권 끝난 다음 뒤탈이 겁나기 때문이다. 여당에서도 차기 대선 승리를 위해 대통령과 선을 그어야 한다는 목소리들이 터져나온다.

지지율이 10%대까지 떨어지면 정상적 국정 운영이 불가능할 정도가 된다. 노태우·김영삼·노무현·박근혜 전 대통령이 임기 말 10%대까지 추락했다. 이 정도되면 여당부터 공공연하게 대통령 지시를 거부하는 현상이 나타난다. 노골적으로 대통령에게 탈당을 요구한다. 그래서 민주화 이후 이명박 전 대통령을 제외한 다른 모든 대통령이 여당을 탈당했다.

1987년 민주화 이후 소속 정당 탈당의 첫 테이프를 끊은 사람은 노태우 전 대통령이다. 1987년 민주정의당 후보로 나서 대선에서 이긴 그는 민정·민주·공화 3당 합당을 성사시켜 민자당을 만들었다. 그러나 내각제 파동 문제로 노 전 대통령과 사이가 틀어진 김영삼 민자당 후보는 1992년 대선 때 노 전 대통령 사돈기업의 이동통신 허가 문제를 들고 나왔다. 또 그해 3월 총선에서 관권선거 논란에 휩싸이자 노 전 대통령에게 선거관리 중립내각과 탈당을 요구하면서 두 사람의 갈등은 극에 달했다. 결국 대선 직전 노 전 대통령은 민자당을 떠난 뒤 거국내각을 선포하고 현승종 한림대 총장을 총리로 임명했다.

5년 뒤 김 전 대통령도 노 전 대통령과 비슷한 전철을 밟았다. 아들 비리 문제로 임기 말 궁지에 몰렸다. 1997년 대선을 앞두고 이회창 신한국당 후보는 김 전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했다. 김 전 대통령의 이인제 후보 지원과 ‘김대중 비자금’ 수사유보 결정이 결정적 계기가 됐다. 결국 대선 한달을 앞둔 11월 김 전 대통령은 여당을 떠났다.

김대중 전 대통령도 임기 말 세 아들 비리 의혹과 ‘이용호 게이트’등으로 지지율이 급락했다. 2002년 5월 ‘동지’들의 탈당 요구를 받아들여 새천년민주당을 떠났다. 김영삼·김대중 전 대통령 모두 카리스마를 보유한 명실상부한 여당의 ‘오너’였지만 차기 대선을 앞두고 위기를 느낀 ‘미래권력’으로부터 가차없는 공격을 당했다. 직계 의원들로부터도 돌팔매를 맞고 배겨낼 재간이 없었다.

노무현 전 대통령도 2007년 2월 자신이 만든 열린우리당을 탈당했다. 2006년 지방선거에서 참패하는 등 각종 선거에서 연전연패하고, 지지율이 급락하자 열린우리당 친노무현계를 제외한 거의 모든 의원들이 탈당 요구를 했다. 노 전 대통령이 탈당한 이후 열린우리당은 대통합민주신당으로 흡수, 통합됐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예외였다. 이 전 대통령은 소속정당이던 한나라당 내 친박(친박근혜)계의 견제로 국정운영에 애를 먹었다. 세종시 수정안이 박근혜 전 대통령(당시 의원)의 반대로 무산된게 대표적이다. 그러나 미래 권력이었던 박 전 대통령은 대통령의 탈당을 요구하지는 않았다. 고비때 마다 이 전 대통령과 박 전 대통령이 만나 타협하면서 임기말 대통령 탈당 관행을 끊었다.

박 전 대통령은 2012년 2월 방송기자클럽 초청 토론회에서 이 전 대통령의 탈당 문제와 관련, “역대 정권 말기마다 대통령이 탈당하는 일이 반복돼 왔지만 과연 그게 해답이 됐는가”라며 “지금 국민들이 힘들어하는 부분에 대해 고치고 해결하는게 우선”이라고 말한 바 있다. 그러나 박 전 대통령은 ‘최순실 사태’로 여당을 탈당한 것은 물론 탄핵까지 당하는 불명예를 안았다.

‘4·7 재·보궐선거’전에서 여당에서 문재인 대통령과 거리를 두는 현상이 뚜렷하다. 1년 전 지난해 4월 총선때만 해도 후보들이 앞다퉈 ‘문재인 마케팅’에 나섰던 것과는 뚜렷하게 차이난다. 박영선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후보는 지난 1월 24일 문 대통령 생일때만 해도 “대한민국은 문재인 보유국”이라며 “벌써 대통령님과 국무회의에서 정책을 논하던 그 시간이 그립다”라고 한 바 있다.

그러나 대통령 지지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민심 이반 현상이 심화되자 선거 현장에선 ‘문’자도 나오지 않고 있다. 민주당 공동선거대책위원장인 노웅래 최고위원은 최근 YTN 라디오에 출연해 ‘유세 현장에서 민주당이 문 대통령을 언급하는 것이 사라졌다’는 물음에 “지금은 대통령 얘기를 할 때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뿐만 아니라 여당은 문재인 정부의 핵심 정책들 뒤집기에 나서고 있다. 박 후보는 TV토론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부동산 정책을 잘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며 재개발·재건축 규제 완화를 약속했다. 또 “9억원 이하 아파트의 공시지가 인상률이 10%를 넘지 않도록 조정제도를 마련하는 방안을 민주당에 건의하고 추진하겠다”고 강조했다. 홍익표 민주당 정책위원회 의장은 “장기 무주택자와 생애최초주택 구입자를 지원하기 위해 LTV(주택담보대출비율)·DTI(총부채상환비율)를 상향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선거가 다가오자 문재인 정부가 그간 강고하게 견지해오던 부동산 규제를 완화하겠다고 약속한 것이다.

민주당 지도부는 연일 반성문을 썼다. 이낙연 상임선대위원장은 “주거정책을 세밀히 만들지 못했다. 사죄드린다”고 했고, 김태년 당 대표 직무대행은 “분노와 실망이 크다는 것을 알고 있다”며 “그 원인이 무엇이든 민주당이 부족했다”고 머리를 조아렸다. 민주당은 뿐만 아니라 유세용 점퍼에 민주당 당명까지 뺐다.

여권의 이런 기류를 레임덕 징후로 볼 수 있을까. 레임덕로 갈 것이냐 여부는 이번 재·보선 결과에 달려있다는 것이 전문가들이 시각이다. 여당이 서울·부산시장 선거에서 모두 패배한다면 대통령과 여당은 ‘역(逆)밴드왜건(이길 가능성이 큰 정당이나 후보에 유권장의 지지가 쏠리는 현상이 거꾸로 나타나는 것)’으로 휩쓸려 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홍영식 논설위원 ysho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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