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악관 불려가는 삼성전자, 어떤 '청구서' 받게 될까 [황정수의 반도체 이슈 짚어보기]

입력 2021-04-11 08:53   수정 2021-05-11 00:02


삼성전자가 12일 오후(미국 현지시간, 한국 시간으론 12일 늦은 밤이나 13일 새벽) 백악관이 주최하는 '반도체 대란' 관련 긴급 화상 회의에 참석한다. 'CEO 서밋'으로 이름 붙여진 이 회의는 제이크 설리번 미국 국가안보보좌관과 브라이언 디스 미국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이 주재한다. 반도체를 국가 안보와 직결되는 전략 물자로 보는 미국 정부의 시각이 담겨 있는 것이다.
삼성전자에 "미국 기업들에 반도체 잘 공급해달라"
미국이 초청한 기업 명단을 보면 백악관의 노골적인 의도가 보인다. 지난 9일 백악관은 19개 초청 기업 명단을 공개했다. 이 중 11개 기업이 반도체가 부족하거나 제품을 생산할 때 꼭 필요한 '미국' 업체들이다. 구글 모회사 '알파벳', 통신사 'AT&T', 차량용 엔진업체 '커민스'와 차 부품 전문 '피스톤그룹', PC 전문 '델'과 'HP', 자동차 업체 '포드'와 'GM', 'PACCAR' 의료기기 전문 '메드트로닉', 방산업체 '노스럽 그러먼'이다. 반도체 수요 업체 중에 유일한 외국 업체는 네덜란드에 본사를 둔 자동차업체 스텔란티스(피아트크라이슬러와 푸조시트로엥의 합작사)다.

나머지는 반도체 생산업체들로 채워졌다. 한국의 삼성전자, 대만 파운드리업체 TSMC, 네덜란드 자동차 반도체 전문업체 NXP, 미국 파운드리업체 글로벌파운드리와 스카이워터테크놀로지, 종합반도체 업체 인텔과 메모리반도체 전문 마이크론이다.

반도체 품귀 사태가 심화되면서, 미국 정부가 삼성전자를 포함한 세계적인 반도체기업을 대상으로 '미국 기업에 대한 반도체 공급을 원활하게 해달라'고 요구하는 자리라는 게 전문가들의 분석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메이드 인 아메리카' 공약에 맞춰 미국에 '반도체 공장을 많이 지어야한다'는 압박도 받을 것으로 전망된다.
미국 공장 건설 '서둘러' 결정해야 할 수도
한국 기업으로서 유일하게 참석하는 삼성전자는 백악관으로부터 외면할 수 없는 '청구서'를 받게 될 전망이다. 일단 '미국 내 반도체 공장 건설'에 결정을 해야하는 시간이 앞당겨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현재 미국 텍사스주나 애리조나주, 뉴욕주 중 한 곳에 파운드리 공장을 짓는 방안을 추진 중이다. 투자 규모만 최소 170억달러(약 20조원)다.

현재 각 지방정부와 세제 등 인센티브를 놓고 치열한 샅바싸움을 벌이는 단계인데, 백악관이 나서면 삼성전자가 만족스럽지 못한 조건에도 '서둘러 투자 결정을 내려야하는' 상황이 올 수 있다.

백악관이 회의에 참석하는 GM, 포드 등을 위해 삼성전자에 '차량용 반도체' 생산을 늘려달라는 직접적인 요구를 할 경우 삼성전자의 입장은 난처해질 수 있다. 삼성전자는 수익성 등을 고려해 파운드리공장에서 차량용 반도체를 거의 생산하지 않고 있어서다. 자칫 미국에 지으려는 최첨단 파운드리공장에 수익성이 떨어지는 차량용 반도체 생산라인을 억지로 마련해야할 수 있다.


반도체업계 관계자는 "삼성전자가 당초 미국 공장을 추가로 건설하기로 한 건 미국 정부의 압박과 경쟁업체 대만 TSMC의 미국 공장 신설 결정 등의 영향"이라며 "경기 평택을 중심으로 파운드리 경쟁력을 키우려는 삼성전자의 전략에 엇박자가 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기회 요인도 있다. 미국 정부가 자국 반도체 생산시설 신축 등에 인센티브를 주는 방안을 추진 중이라서다. 미국 정부가 500억달러를 반도체 생산시설 투자와 연구개발(R&D)에 지원하는 계획을 지난달 31일 발표했다. 삼성전자 입장에선 공장을 짓기 전 최대한 많은 것을 얻어내야 하는 상황이다.
중국과의 관계 껄끄러워질 수 있어
삼성전자가 미국 손을 들어주는 모습을 보이면 주요 고객사는 물론 핵심 생산시설이 있는 중국과의 관계가 껄끄러워질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중국엔 샤오미, 오포. 비보 등 삼성전자 메모리반도체를 쓰는 스마트폰업체들이 있다. 중국 시안에 최신 낸드플래시 공장을 가동 중이다. 현재 짓고 있는 2공장은 증설투자가 마무리됐고 올 하반기부터 본격 가동될 전망이다.

중국 역시 미국처럼 자국내 반도체 공급망 추가 확충을 삼성전자에 요구할 가능성도 작지 않다. 반도체업체의 한 관계자는 "주요 시장과 생산시설이 있는 중국의 요청도 거절하기 어려울 것"이라며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상황으로 내몰릴 수 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의 경영진들은 우선 백악관의 요구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지 고심하고 있다. 백악관 회의엔 최시영 삼성전자 파운드리사업부장(사장)의 참석이 유력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가동 중인 미국 오스틴 공장이 파운드리시설이고 추가 투자를 고민 중인 공장도 파운드리 라인이란 이유에서다.
이제서야 기업 얘기 듣기 시작한 한국 정부
"기업이 알아서 할 일"이라며 뒷 짐 지고 있던 정부는 최근에서야 기업들의 목소리에 귀기울이기 시작했다. 지난 9일 오전 서울 소공동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정부와 반도체산업협회 회장단의 간담회가 열렸다.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과 이정배 협회장(삼성전자 메모리사업부장), 이석희 SK하이닉스 사장 등 주요 기업 경영진이 마주 앉았다. 주무부처 장관과 반도체 기업인들의 대면은 연초 반도체 대란이 본격화한 지 석 달 만이다.

행사 후 공개된 협회 명의의 대(對)정부 건의문엔 반도체 패권 전쟁에 내몰린 기업들의 절박함이 묻어났다. 협회는 반도체산업지원특별법 제정을 통한 투자 인센티브 확대 등 신속하고 실효성 있는 지원을 요청했다. 이날 크게 네 가지를 정부에 요청했다. 우선 국내 반도체 제조시설 구축 확대를 위해 전폭 지원해달라고 했다. 간담회의 주요 화두도 ‘반도체 시설투자에 대한 인센티브’ 방안이었다. 참석자들은 정부에 “연구개발(R&D) 및 제조설비 투자비용에 대해 50%까지 세액공제가 필요하다”며 “양산용 제조설비 투자비용도 세액공제 대상 범위에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다.

산업부는 ‘총력지원’ 의사를 밝혔다. 성 장관은 “업계의 건의사항을 반영해 종합정책을 수립하고 곧 발표할 것”이라고 말했다. 다만 반도체산업지원특별법 제정, 세제지원 등 업계의 건의 사항이 정책에 충분히 반영될지는 미지수다. 세제 지원은 기획재정부, 수도권 반도체학과 신설은 교육부 등이 주무부처인 만큼 범정부 차원의 협의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벌써부터 정치권과 정부 일각에선 반도체지원특별법 제정에 요구에 대해 '일부 기업에 특혜를 주는 것'이라는 반대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황정수 기자 hjs@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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