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비자 피해 '예상'만 돼도 단체소송 허용"

입력 2021-04-12 17:20   수정 2021-04-13 00:53

앞으로 소비자단체들은 소비자 권익이 침해됐을 때만 아니라 가까운 미래에 피해가 예상될 때도 단체소송을 청구할 수 있게 된다. 소송 제기 전에 반드시 법원으로부터 받도록 했던 소송허가 절차도 폐지된다.

공정거래위원회는 12일 이 같은 내용을 담은 소비자기본법 일부 개정안을 다음달 24일까지 입법예고한다고 발표했다. 2006년 도입 이후 유명무실했던 단체소송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조치라고 공정위는 설명했다. 하지만 산업계는 가뜩이나 코로나19 여파로 경영이 불확실한 상황에서 반(反)시장 정책으로 변질될 우려가 있다고 반발했다. 소비자 소송 남발로 기업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는 지적이다.
소비자 단체소송에 떠는 재계
개정안은 단체소송 활성화에 초점이 맞춰졌다. 단체소송은 공익을 위해 법에 정한 단체가 위법행위의 금지를 청구하도록 한 제도다. 피해 예방 차원에서 하는 소송으로, 사후 금전배상을 목적으로 하는 집단소송과는 다르다.

문제가 된 조항은 새로 도입된 ‘예방적 금지청구권’이다. 소비자 피해가 실제로 발생하지 않았어도 ‘소비자 권익의 현저한 침해가 예상되는 경우’에 단체소송을 청구할 수 있도록 했다. 공정위는 도입 배경으로 독일, 일본 등 선진국이 이미 이 조항을 시행하고 있다는 점을 들었다. 또 ‘예상되는 경우’라는 요건만으로는 청구 범위가 지나치게 확대될 우려가 있어 ‘현저성’ 요건을 추가해 제도를 보완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업계는 무분별한 소송으로 이어질 것이라며 일제히 반대 목소리를 냈다. 한 기업 관계자는 “피해를 예상하는 것도, 그 예상을 입증하는 것도 어려운 일”이라며 “이번 개정안은 소비자 단체를 세력화하는 도구로 기능할 것”이라고 우려했다.

학계와 법조계도 판례가 없는 상황에서 혼란이 가중될 수 있다며 신중론을 폈다. 권성은 변호사는 “예방적 금지청구권은 매우 급진적인 소비자 보호 정책”이라며 “소송 남발을 방지할 제도적 장치가 없으면 시장 혼란만 일어날 것”이라고 말했다. 권재열 경희대 법학전문대학원장은 “현저한 피해라는 것이 일반 피해와 얼마나 차이가 있는지 모호하다”며 “실효성이 떨어지는 법안”이라고 평가했다.
남발 방지책인 사전 허가제도 폐지
소비자 단체소송 제도는 2006년 도입됐지만 15년간 소송 제기는 6건에 그치는 등 성과가 저조했다. 공정위는 개정안에 예방적 금지청구권 외에 소송 허가제를 폐지하는 내용도 담았다. 현행 단체소송은 별도 절차를 통해 사전 소송 허가를 받아야 해 소송이 지연되는 원인으로 지목돼 왔다.

또 단체소송을 제기할 수 있는 단체에 기존 공정위 등록 소비자단체, 한국소비자원, 경제단체 외에 소비자단체의 협의체를 추가했다. 현재 협의체는 한국소비자단체협의회 한 곳이지만, 공정위 고시 절차를 거치면 다른 협의체도 소송을 낼 수 있는 지위를 갖게 된다. 공정위는 민간 차원의 소비자 권익 증진 사업을 맡을 소비자권익증진재단을 신설하고, 소비자정책위원회에 시장 실태조사 권한도 부여하기로 했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소송 허가제와 예방적 금지 청구권을 동시에 도입하는 것은 통신, 카드 등의 업종에 큰 충격을 줄 것”이라고 지적했다. 다른 관계자는 “재단을 새로 만드는 것이 공정위 퇴직자들 자리를 만들기 위한 꼼수가 아닌지 의심된다”고 말했다.

이지훈/이수빈 기자 lizi@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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