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시작부터 제동 걸린 '용진이형'의 청라 돔구장 [박동휘의 컨슈머 리포트]

입력 2021-04-15 08:08   수정 2021-04-15 11:39


SSG랜더스와 롯데 자이언츠의 프로야구 개막전이 예정돼 있던 지난 3일, 정용진 신세계 부회장은 청라 돔구장에 대한 의욕을 불태웠다고 한다. 그날 인천 지역엔 하루 종일 비가 내려 결국 신세계와 롯데의 자존심을 건 승부는 하루 순연됐다.

글로벌 10위(지난해 GDP 기준) 경제 강국이자, 올림픽 야구에서 금메달을 딸 정도로 스포츠 강국인 한국에서 우천 취소라니, 정 부회장은 후진적인 국내 스포츠 인프라에 실망을 금치 못했다. 하지만 현행 법규상 ‘용진이형’의 돔구장 건설 계획은 물거품이 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나온다. 체육시설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만이 지을 수 있다는 법규와 관행 탓이다.
시작부터 제동걸린 청라 돔구장
신세계그룹은 SK로부터 프로야구단을 인수하면서 청라 돔구장 건설 계획을 밝혔다. 신세계가 갖고 있는 16만5290㎡의 땅에 복합쇼핑몰과 함께 첨단 돔구장을 짓겠다는 것이다. 정 부회장은 지난달 초 SNS에서 “(청라 돔구장 건설에 관해) 현재 법령을 검토 중”이라고 말하는 등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이에 따라 신세계 프라퍼티 등 그룹 내 전문가들이 관계 법령을 분석 중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국내 프로 스포츠 역사상 민간이 소유한 땅에 체육시설을 짓는 일 자체가 처음”이라며 “인천시, KBO(한국프로야구협회) 등과도 협의가 필요한 사안”이라고 말했다.

청라 돔구장 건설에 관련되는 법률은 ‘도시ㆍ군계획시설의 결정ㆍ구조 및 설치기준에 관한 규칙’이다. 99조는 체육시설을 지을 수 있는 기관 및 근거를 열거하고 있다. 핵심 조항인 1항은 체육시설 설치 주체를 ‘국가 또는 지방자치단체’로 명시하고 있다. 신세계그룹 관계자는 “99조에 따르면 민간이 야구장 등 체육시설을 지을 수 있는 유일한 근거는 7항인데 사실상 기업이 수용하기 어려운 조건이 달려 있다”고 말했다.

7항에 따르면 ‘국민의 건강증진과 여가선용에 기여할 수 있는 종합운동장(관람석 1000석 이상)’을 체육시설에 포함시켰다. 공공의 목적에 필요하다면 민간이 지을 수 있도록 허용한 것으로 해석할 수 있는 조항이다. 하지만 단서 조항을 달았다. ‘국제경기종목으로 채택된 경기를 위한 시설 중 육상경기장과 한 종목 이상의 운동경기장을 함께 갖춘 시설 또는 3종목 이상의 운동경기장을 함께 갖춘 시설로 한정한다’는 것이다. 법조계 관계자는 “야구 전용 돔구장만 외에 추가 시설을 지어야 민간의 체육시설 소유 및 운영을 허용한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며 “7항의 요건을 못 맞춘다면 돔구장을 짓더라도 10~20년 운영 한 뒤 부지를 포함해 모든 시설을 지자체에 기부채납해야한다”고 지적했다.
"해법 찾겠다"는 신세계
신세계그룹은 법적인 제약에도 불구하고, 최대한 해법을 찾겠다는 입장이다. 그룹 관계자는 “돔구장은 건설에만 약 5000억원이 들어가고, 연간 유지 비용도 2000억원 안팎에 달한다”며 “민간 기업의 체육시설 소유와 운영이 허락된다면 투자 및 운영에 필요한 기본 비용을 제외한 이익금에 대해선 지역 사회에 환원하는 방안도 적극 검토 중”이라고 말했다.

법조계에선 신세계측이 ‘야구장=체육시설’이란 등식을 깨는데 주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신세계 관계자는 “현행법에 야구장이나 축구장을 반드시 체육시설에 지어야 한다는 규정은 없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미국 뉴욕에 있는 실내 경기장인 매디슨스퀘어가든 사례가 거론된다. NBA 뉴욕 닉스와 NHL 뉴욕 레인저스의 홈경기장으로 농구, 아이스하키, 프로레슬링, 복싱 등 스포츠 경기 뿐만 아니라 공연장으로도 활용되는 곳이다. 더 매디슨 스퀘어 가든 컴퍼니라는 민간기업이 소유하고 있고, 운영도 MSG엔터테인먼트가 맡고 있다. 법조계 관계자는 “아직 선례가 없긴 하지만 건축법상 문화 및 집회시설로 허가받아 야구장을 비롯해 복합문화공간으로 만드는 방안도 가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상황이 녹록치는 않다. 인천시는 당장 청라 돔구장이 지어질 경우 현재 SSG 랜더스가 사용하고 있는 문학 구장을 어떻게 할 지가 고민거리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인천시는 문학 구장이 유휴시설이 될 경우 수입이 대폭 줄 수 밖에 없어 돔구장 건설에 난색을 표하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청라 돔구장을 체육시설이 아닌 문화 공연 시설로 간주하는 사안도 전례가 없던 일이어서 인천시로선 용단이 필요하다.
스포츠 실력은 선진국, 시설은 후진국
체육계 및 재계에선 청라 돔구장 건설을 계기로 프로 스포츠 구장을 선진국 수준으로 끌어올릴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관(官)이 스포츠 경기장을 소유하고 운영하는 관행의 문제점은 지은 지 40년 된 잠실 야구장에서 고스란히 나타나고 있다.

최근 SSG랜더스 소속 추신수 선수는 잠실 구장에서의 첫 경험을 마친 뒤 “메이저리그의 야구장 시설과 비교하면 끝도 없을 것 같다”며 “국내 프로야구 선수들이 쓰는 락커룸은 미국 고교 야구 클럽의 락커룸보다 열악하다”고 말했다. 잠실구장은 원정팀을 위한 시설이 워낙 노후화돼 있어 악명이 높다. 개인물품을 둘 공간이 넓지 않아 덕아웃과 라커룸으로 이어지는 통로에 진열해놓는다.

롯데 자이언츠 소속 이대호 선수도 “미국은 엄청 오래된 야구장에 가봐도 원정팀이 준비할 수 있는 공간을 만들어 준다”며 “선거철만 되면 정치인들이 공약을 거시는데 지켜주면 좋겠다”고 추 선수를 지지했다. 부산 사직구장만 해도 총선 및 지방선거철만 되면 신축 공약이 쏟아진다. 하지만 약속이 지켜진 적은 없다. 문화체육관광부 관계자는 “서울시를 비롯해 지자체들이 예산을 프로구단이 사용하는 스포츠 시설을 개선하는데 쓸만큼의 여력이 없다”며 “지자체가 나서지 않는 한 정부 차원에서도 할 일이 마땅치 않다”고 말했다.

신세계의 청라 돔구장 건설 계획이 무산될 경우 정 부회장이 구상했던 스포츠 마케팅 전략에도 난관이 예상된다. 인천 문학 경기장만으로 스포츠 마케팅을 펼치기엔 한계가 뚜렷하다는 것이다. 신세계 관계자는 “문학 경기장에서 연중 경기가 열리는 날이 70여 일에 불과하다”며 “야구 경기장 최초로 스타벅스를 입점시키고, 노브랜드 버거 등 신세계가 갖고 있는 브랜드들을 선보이고는 있지만 대부분의 점포가 적자를 낼 수 밖에 없다”고 말했다.

박동휘 기자 donghuip@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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