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형순의 과학의 창] 쟁기날 프로젝트와 전문성의 장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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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력 2021-04-14 17:21   수정 2021-04-15 00:09

[최형순의 과학의 창] 쟁기날 프로젝트와 전문성의 장막

지난달 23일, 400m 전장의 컨테이너선박 에버기븐호가 수에즈 운하에 좌초하는 사고가 있었다. 수에즈 운하의 폭이 200m에 불과한지라 좌초한 에버기븐호는 수에즈 운하를 완전히 막아버렸다. 수에즈 운하는 지중해와 홍해를 연결해 북대서양과 인도양 사이 항로를 9000㎞가량 단축해주는 대단히 중요한 해양교역로다. 수에즈 운하가 막혀 있는 동안 경제적 손실이 하루 10조원 이상으로 추산된다고 하니 그 중요성을 짐작할 수 있다.

한편으로는 이렇게 중요한 수로가 막히는 상황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었다는 점도 의외라면 의외다. 수에즈 운하 주변 지형을 살펴보면 비교적 손쉬운 대안이 있을 법도 한데 말이다. 홍해의 북쪽 끝에는 토끼 귀처럼 두 개의 뾰족한 만이 있는데, 하나가 이집트 영토 안쪽으로 파고드는 수에즈만이고, 다른 하나는 그 끝이 이스라엘과 요르단을 향하고 있는 아카바만이다. 수에즈 운하보다 조금 더 길긴 하지만 아카바만에서 지중해로 건너갈 운하가 하나쯤 있었더라면 수에즈 운하가 막히는 게 그리 큰 문제는 아니었을 것이다. 지정학적 이유로 성사된 적은 없지만, 지중해와 아카바만을 잇는 운하를 개통하는 것에 대한 논의는 그간 간간이 있었다.

그중 오늘날의 상식으로는 도저히 납득할 수 없는 황당한 아이디어가 하나 있었는데, 1963년 미국 정부가 프로젝트 플라우셰어(쟁기날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이스라엘에 운하를 파는 계획을 검토한 게 그것이다. 프로젝트 플라우셰어가 도대체 뭐길래 이스라엘에 운하를 파는 일에 미국 기업도 아니고 정부가 나서 검토를 했을까?
과학도 개인적 욕망서 자유롭지 못해

세계 2차대전에서 핵에너지의 위력을 경험한 미국은 1953년 아이젠하워 대통령이 ‘평화를 위한 원자력 프로그램’을 제안한다. 문자 그대로 핵에너지를 평화적으로 이용하자는 프로그램이었고, 이는 자연스럽게 원자력 발전 개발로 이어졌다. 그렇지만 이 프로그램은 원자력 발전 정도에서 끝나지 않았고, 미국 정부는 핵폭발을 평화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방법도 모색했다.

당시 평화적 핵폭발의 선봉장은 수소폭탄의 아버지로 알려진 헝가리 태생 미국 물리학자 에드워드 텔러였다. 그리고 그의 주도하에 1957년 탄생한 것이 - 무기(칼)를 도구(쟁기날)로 만들라는 구약성경 이사야 편의 내용에서 그 이름을 따온 - 프로젝트 플라우셰어로, 텔러는 운하나 댐, 항만 건설 등의 대규모 토목 공사와 원전이나 광산 등의 천연자원 개발에서 핵폭탄의 평화적 활용이 얼마든지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이스라엘 네게브 사막을 통과하는 200㎞ 거리의 수로를 파기 위해 520개의 핵폭탄을 터뜨리자는, 막말로 미친 발상 역시 그중 하나였다.

도대체 어떻게 이런 발상이 진지하게 논의될 수 있었을까?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이 이 역시 다양하고 복잡한 원인과 이해관계가 얽혀 있었을 것이고, 후대인인 필자가 몇 권의 책과 보고서만으로 정확히 이해하기는 어렵겠지만 이런 생각은 해볼 수 있다.
'과학이란 포장지' 가려낼 수 있어야
텔러 입장에서는 아무리 시대적 필요가 있었다고 하더라도, 본인의 과학자로서 가장 중요한 업적이 전 인류를 소멸시킬 수 있는 무기의 발명이라면, 그 무기가 인류를 살상하는 데만 쓰여야 하는 것이 아니라는 사실을 보여주고 싶은 욕망이 있었을 것이다. 텔러처럼 - 본인의 천재성에 대한 자각이 다소 지나친 - 강한 에고의 소유자라면 더 그랬으리라. 또 한편 당대의 정치인과 관료들은 냉전시대 패권을 유지하기 위해 보다 강력한 핵무기 개발을 지속할 필요를 느꼈는데, 이들에게는 핵무기에 대한 대중의 심리적 저항과 공포를 줄이기 위해 핵폭탄의 평화적 사용법을 대대적으로 홍보할 동기 역시 충분했다. 개인의 욕망과 정치적 동기를 덮기 위해 수소폭탄을 발명한 장본인보다 그 가치와 부작용을 더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는 전문성의 장막을 씌우면 프로젝트 플라우셰어처럼 위험천만한 실험도 얼마든지 가능해진다.

우리는 과학이 지향하는 바는 정치의 지향점과 다르다고 여기지만, 과학적 활동과 정치적 활동 모두 ‘인간’이 행한다는 절대로 분리시킬 수 없는 공통점을 갖고 있다. 그래서 과학 역시 인간의 욕망과 편견, 그로 인한 과장이나 선전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그래야 방역정책과 백신의 효용처럼 과학적 해법이 동작할 법한 영역이 정치적 쟁점으로 떠오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는 과학자의 정치적 욕망과 정치인에게 필요한 과학이란 미명의 포장지를 과학으로 오해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점검해 볼 수 있게 된다.

최형순 < KAIST 물리학과 교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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