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담스러워도 반드시 가야할 길…'무늬만 ESG'는 가려내야"

입력 2021-04-15 17:54   수정 2021-04-16 01:06


은행과 증권사, 자산운용사 최고경영자(CEO)들은 15일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ESG 경영포럼’ 자문회의에서 금융에 ESG(환경·사회·지배구조) 원칙을 엄격하게 적용하겠다고 강조했다. 시대의 흐름으로 자리 잡은 ESG가 금융시장의 질서를 바꿀 것이란 주장도 내놨다.
“ESG는 MZ세대 시대정신”

황성택 트러스톤자산 사장은 “ESG는 환경, 인권, 공정성 세 단어로 요약할 수 있다”며 “공정성과 착한 소비에 민감한 ‘MZ세대(밀레니얼+Z세대)’가 사회를 주도하게 되면 ESG는 시대정신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ESG 경영평가에서 우수 사례뿐 아니라 부진한 기업 사례도 공개해 변화의 원동력으로 삼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자산운용사 역시 ‘ESG 시험대’에 오를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심종극 삼성자산운용 사장은 “작년 말을 기점으로 상품 개발부터 기업 투자 프로세스 등에 ESG 진행 상황을 점검하고 관련 조직을 확충했다”며 “국내 자본시장과 제조업계가 ESG 글로벌 물결에서 밀려나지 않도록 여기 계신 CEO들이 힘써달라”고 했다.

서유석 미래에셋자산운용 사장은 “ESG 관련 운용 자산이 2조원 수준”이라고 소개한 뒤 “ESG 우수 기업이 수익성까지 좋은지에 대한 의문이 해소되고 있는 만큼 관련 투자가 한층 활발해질 것”이라고 말했다.

‘무늬만 ESG’를 골라낼 수 있어야 한다는 지적도 나왔다. 박정림 KB증권 사장은 “자본시장에서 ESG 관련 상품이 우후죽순 나오고 있는데 명확한 평가로 자본시장의 자금이 진짜 ESG 상품에 흘러들어갈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ESG 채권 등에 대한 사후평가도 냉정하게 이뤄져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일문 한국투자증권 사장은 “외국의 실정에 맞춰진 전략적 프레임은 한계가 있을 수밖에 없다”며 “국내 지리적 특성, 산업계 특수성까지 감안한 진정한 한국만의 ESG 기준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은행이 ESG 수준 높일 수 있어”
금융권 CEO들은 금융 본연의 역할을 통해 산업계 전반의 ‘ESG 경영’ 수준을 높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우수 기업에 좋은 조건으로 자금을 빌려주는 등의 방법으로 ESG 경영을 확산시킬 수 있다는 지적이다.

권광석 우리은행장은 “국내 금융지주사와 은행들이 이사회 내에 ESG 기구를 갖추고, ESG 채권을 발행해 조달한 자금으로 소상공인을 지원하고 있다”며 “기업활동과 금융사의 금융 지원에서 ESG가 형식 차원에 머무르지 않고 실질적 활동으로 이어지는 게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윤종원 기업은행장은 “외부효과를 내부화하는 게 ESG의 핵심”이라며 “과거엔 (부정적인) 외부효과를 해결하려면 정부 규제가 필요했지만 이젠 기업의 자발적 행동이 정부 규제보다 낫다는 게 분명해졌다”고 말했다. 이어 “중소기업의 지속가능한 이익을 추구하는 기업은행은 존재 자체가 ESG”라고 소개하기도 했다. 박성호 하나은행장은 “ESG 문화를 확산시키려는 실질적 노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한 뒤 “지금 이 자리만 봐도 여성 CEO가 적은데 5~10년 후엔 바뀌어야 한다”고 지적했다.

진옥동 신한은행장은 “지난해 ‘적도원칙’(환경파괴를 일으키는 프로젝트파이낸싱에 참여하지 않겠다는 글로벌 금융회사들의 규약)에 한국 금융사로는 처음으로 가입하면서 포기한 대형 사업이 두세 건 정도 된다”며 “당시 이익이 줄어들 게 뻔해 고민이 컸다”고 했다. 이어 “ESG는 내가 속한 공동체를 유지시키기 위한 노력”이라며 “일시적인 이익을 포기할 수 있다는 각오와 공동체를 위한 실천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유명순 한국씨티은행장은 “씨티은행은 금융상품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한다”며 “상품을 내놓을 때마다 사회적 영향력에 대해 매우 깐깐한 평가를 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범석 S&P다우존스 한국대표는 “투자효과가 장기간에 걸쳐 나타나는 ESG 경영이 기업에 자리 잡으려면 연기금 등 장기투자자들의 시장 진입이 필수”라고 강조했다. 그는 “일본공적연금(GPIF)과 일본은행은 ESG 요소를 반영해 자산운용사를 선정하고 자금을 맡긴다”며 “한국 시장도 빠르게 달라질 것”이라고 했다.

김대훈/구은서 기자 daepu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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