島島한 맛!…섬 나물, 향기…혀끝으로 느끼는 봄의 절정

입력 2021-04-19 15:20   수정 2021-04-19 15:22


바야흐로 눈부신 봄이다. 코로나19가 아직도 기승을 부리고 있지만 봄의 향기마저 꺾지는 못할 것이다. 봄을 봄답게 느낄 수 있는 곳을 꼽으라면 단연 섬이 으뜸이다. 섬 여행을 하는 이유야 수도 없이 많지만 그중에서 자연 그대로의 맛을 간직한 섬 음식을 먹는 재미도 결코 빼놓을 수 없다. 봄의 절정에서 향긋한 섬 음식을 찾아 여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입이 행복하고 마음마저 푸근해질 테니까.

명이·울릉미역취…봄나물 천국 울릉도
육지 사람들은 섬이라면 해산물을 먼저 떠올린다. 하지만 섬은 산과 들에서 나는 ‘나물의 천국’이기도 하다. 특히 생동하는 봄기운이 가득한 봄나물을 맛보기에 섬보다 좋은 곳은 없다. 그중 으뜸은 울릉도다. 울릉도의 봄을 알리는 신호탄은 명이나물이다. 명이는 겨울에는 눈밭 속에서 찬바람을 피해 웅크리고 있다가 새봄에 눈이 녹자마자 푸릇푸릇 다시 자란다. 주민들은 눈 녹으면 명이부터 채취하기 시작한다. 명이의 본 이름은 산마늘이다.

조선시대 말까지 울릉도는 거주가 금지된 섬이었다. 물론 비공식적 거주민들도 많았다. 하지만 공식 개척령이 반포되면서 1883년 처음 입주한 이들을 개척민이라고 한다. 이들이 춘궁기에 명이나물을 뜯어다 먹고 목숨(命)을 이었다 해서 산마늘을 명이라 부르게 됐다고 전해진다. 목숨을 이어준 나물, 명이는 장아찌로 많이 알려져 있지만 울릉도에서는 다양한 방법으로 요리한다. 절임이나 김치, 물김치 등으로 조리해서 김치 대용으로 즐겨 먹는다.

명이나물뿐만 아니다. 이즈음 울릉도의 산과 들은 온통 툭툭 터지는 봄나물 향기로 진동한다. 울릉미역취, 부지갱이, 삼나물, 참고비 등 육지나 다른 섬에서는 보기 어려운 울릉도 특산 나물들이 여행자들을 한껏 유혹한다. 울릉미역취는 비타민A의 함량이 높아 피부미용과 감기에 대한 저항력, 시력을 좋게 하는 효능이 있다. 부지갱이는 섬쑥부쟁이의 울릉도 이름이다. 3월 말부터 5월 사이에 주로 채집하는데 4월 중순까지 뜯는 첫 번째 잎이 가장 맛있다고 한다. 쑥부쟁이는 전국 산야에 자생하지만 섬쑥부쟁이(부지갱이)는 울릉도에서만 자라는 나물이다. 참고비는 섬고사리(울릉고사리)의 울릉도 지역 이름인데 약간 쌉싸름한 향과 인삼 향 같은 것이 난다. 봄나물들이 울릉도로 육지 사람들을 유혹한다.
흑산도보다 더 실한 홍어 본고장 대청도
흑산 홍어가 유명하고, 홍어 요리가 전라도를 상징하는 음식이지만 실상 홍어가 가장 많이 잡히는 곳은 인천이다. 전남보다 홍어 어획고가 많은 인천의 대표적인 홍어 어장은 대청도 인근 해역. 그래서 대청도 선진포구 식당들에서는 홍어회와 찜, 탕 등의 메뉴를 내고 있다. 최근 대청도에서는 6.7t짜리 홍어잡이 어선 한 척이 하루에 400장(마리)의 홍어를 잡기도 했다. 대청도에서는 홍어나 팔랭이(간재미)의 단위를 마리가 아니라 장으로 쓴다. 납작한 생김새 때문일 것이다. 이렇게 잡힌 홍어들 중 5㎏ 이상 되는 상품은 전량 목포로 보낸다. 작은 것들은 대청도에서 소비되거나 인천 연안부두 어시장으로 나가 판매된다. 더러는 대청도에서 말려서 쓰기도 한다. 헐값에 목포로 팔려간 홍어는 삭힘 공정을 거쳐 고가의 홍어로 거듭난다. 삭히는 기술 하나만으로 10배 가까운 부가가치를 얻는 것이다.

대청도에는 아직 삭힌 홍어문화가 없다. 그냥 생홍어회나 탕, 아니면 말린 걸 쪄서 먹는 정도다. “삭힌 홍어가 더 맛있다” “생홍어가 맛있다”며 논쟁도 하지만 맛을 단순 비교할 수는 없다. 취향의 문제이기 때문이다. 조기와 굴비가 다르고 생태와 황태가 서로 다른 맛인 것처럼 삭힌 홍어는 삭힌 대로, 생홍어는 생홍어대로 서로 다른 맛을 뽐낸다. 생홍어는 특유의 찰지고 고소한 풍미가 일품이다. 인천 연안부두 어시장에서 국내산이라고 팔리는 홍어에는 생것도 삭힌 것도 다 있다. 어디보다 값도 싸다. 대청도 옥죽포는 홍어마을로 지정돼 홍어 판매장을 건설 중이다. 대청도 홍어문화가 꽃필 날도 머지않은 듯하다.
메밀 냉면·메밀 칼국수의 섬, 백령도
서울보다 평양이 가까운 섬, 백령도의 대표 음식은 해산물 요리가 아니라 국수다! 육지 사람들은 의아해하겠지만 사실이다. 메밀냉면, 메밀칼국수 등이 백령도 대표 음식이다. 육지 사람들은 섬사람들이 다들 어업에 종사하며 사는 줄 알지만 실상 농사가 주업인 섬이 더 많다. 섬 또한 농경 국가의 전통을 이어온 까닭이다. 백령도 또한 쌀농사가 주업인 섬이다. 농업인구가 70%, 어업 인구는 10%가 채 안 된다.

옛날 이 지역 속담에 ‘먹고 남는 백령도, 때고 남는 대청도, 쓰고 남는 소청도’란 말이 있었다. 백령도는 주민이 1만 명이 넘을 때에도 곡식이 부족하지 않을 정도로 농사가 많았다. 인근 대청도는 숲이 좋아 땔감에 부족함이 없었고 소청도는 작은 섬이라 농토나 산림이 부족하니 전적으로 어업의존도가 높았다. 그래서 섬은 작지만 어업으로 돈벌이가 좋았다. 속담은 섬의 특징을 정확히 담고 있다. 백령도는 논농사와 함께 밭농사도 많다. 백령도의 밭에서 나는 메밀은 유난히도 알이 튼실하다. 껍질이 터질 정도로 탱탱하다. 그래서 메밀 요리가 발달했다. 예부터 황해도 문화권이었던 백령도에서는 겨울이면 냉면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다.

메밀은 보리 타작이 끝나는 초여름에 심어 가을에 추수했다. 지금은 냉면이 여름 음식의 대명사로 통하고 사철 먹는 음식이 됐지만 과거 백령도에서 냉면은 겨울 음식이었다. 겨울냉면이 더 맛있어서가 아니었다. 냉면을 만들어 먹는 데 품이 많이 들었기 때문이다. 농번기에는 일손이 부족해 냉면을 먹고 싶어도 만들 시간이 없었다. 농한기인 겨울이라야 시간 여유가 생겼다. 냉면을 만들어 먹는 것은 큰 행사였다. 겨울이면 일가친척들이 다 모여서 냉면 만들기에 돌입했다. 일손이 많이 드는지라 한 가족의 힘만으로는 해먹을 수도 없었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부터 준비를 시작해 해 질 녘은 돼야 먹을 수 있었다고 한다.

메밀냉면은 동치미 국물이나 김장김치 국물에 말아서 먹었다. 냉면을 먹던 그 전통 덕에 지금은 냉면이 사철 맛볼 수 있는 백령도의 대표적 향토 음식이 됐다.

강제윤 < 시인(섬학교 교장) gilgu1@hanmail.net >

강제윤 시인은 사단법인 섬연구소 소장, 섬 답사 공동체 인문학습원인 섬학교 교장이다. 《당신에게 섬》 《섬택리지》 《통영은 맛있다》 등 여러 책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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